며칠전 <이로운넷> 대전 주재 기자가 서울 사무실로 대전 유명 제과점의 빵을 보냈다. 한 박스의 빵이 KTX를 타고 올라와 서울역에서 오토바이로 갈아탄 뒤 사무실에 도착했다. 덕분에 새벽에 만든 빵을 오전 11시에 맛볼 수 있었다.

자기전에 주문하면 새벽에 문 앞에 제품이 도착하고,  많은 제품들도 하루면 배송이 가능해졌다. 이를 위해 길거리에는 정말로 많은 라이더들이 오토바이 등을 타고 달리고 있다. 

그러나 라이더들의 안전과 보수가 이슈화된 것은 최근이다. 배달앱에는 '안전하게 배송해주세요'라는 문구도 생기는 등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뒤에는 라이더유니온의 노력이 있었다. 

라이더유니온은 지난 2019년 5월 1일 출범한 배달노동자의 노동조합이다. 11일은 설립 500일이 되는 날이다. 노조에 따르면 약 300명의 조합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입법활동과 제도개선 활동에 힘써왔다.

다양한 문제제기를 통해 배민, 쿠팡이츠, 근로복지공단 등 관계 기관의 전향적 변화를 이끌며 눈에 띄는 성과를 이뤘다. 최근에는 서울시 노조를 넘어 전국노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의 주요 활동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라이더유니온 설립의 계기간 된 박정훈 위원장의 1인 시위./사진=라이더유니온
라이더유니온 설립의 계기간 된 박정훈 위원장의 1인 시위./사진=라이더유니온

[D-279] 1인 시위 라이더유니온의 시작
시작은 2018년 7월 무더운 여름이었다. 당시 맥도날드 라이더로 일하던 박정훈 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100원의 폭염수당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폭염을 견디며 일하는 라이더를 존중해 달라는 의미의 시위였다. 같은해 7월 26일 한 언론사의 보도를 계기로 소식이 퍼져 나갔고 뜻에 공감한 배달노동자가 모이기 시작했다. 

[D-160] 공단 실수 바로잡아 배달노동자 구제
2018년 11월 22일, 라이더유니온은 서울 마포구 근로복지공단 서부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단의 잘못된 업무처리로 노동자가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배달 노동자 A 씨는 2018년 10월 16일 근무 중 다쳐 공단 홈페이지에 산재지정 의료기관으로 소개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이곳은 산재지정 의료기관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A 씨는 여전히 산재 인정을 못 받았다. 라이더유니온은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공단으로부터 “피해자에게 미안하다.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D-132] "우리는 화물이 아니고, 손님은 귀족이 아닙니다"
2018년 12월 20일, 서울 합정역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배달노동자의 주민용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지하고,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게 한 일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당시 라이더유니온은 “아파트에서 사용하도록 지정한 승강기가 거의 관리되지 않아 지저분하고 악취가 심했다. 이는 배달원을 화물 취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아파트 측은 “배달 음식 냄새기 심하다는 주민 의견을 수렴한 결정으로 배달원과 입주민을 동승하지 못하게 하려는 취지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2019년 5월 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창립총회가 열렸다./사진=라이더유니온
2019년 5월 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창립총회가 열렸다./사진=라이더유니온

[D-day] 5월 1일 노동절 노조창립 국회와 청와대 앞으로
2018년 9월부터 노조를 준비한 라이더유니온은 2019년 5월 1일 출범 총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당일 조합원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부터 청와대까지 행진을 펼쳤다. 행진을 통해 라이더유니온은 ▲유상운송보혐료 현실화 ▲안전배달료 도입과 최저임금 인상 ▲폭염, 한파, 미세먼지 등 날씨대책 마련 ▲플랫폼세를 통한 산재 보상과 유급휴일·휴업수당 보장 ▲정부·기업·라이더유니온 3자 단체교섭 등 5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D+70] 업계 첫 단체협상 통한 안전배달료 합의
2019년 7월 9일, 강서구 소재 배달대행 업계인 배달은형제들과 업계 첫 단체협상을 통해 안전배달료를 도입했다. 단체협상에 따라 노사는 건당 3천500원의 '안전 배달료' 지급에 합의했다. 배달 거리가 기준(500m)보다 멀거나 폭염, 비, 추위 등 악천후가 있을 때는 추가 요금도 받게 됐다.

[D+202] 서울시 합법노조 인정
2019년 11월 18일 서울시로부터 노조설립필증을 받아 합법노조가 됐다. 노조의 정식 명칭은 ’서울 라이더유니온‘이다. 당시 라이더유니온은 "고용노동부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하면 반려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며 ”이에 따라 대리운전 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노조 설립 신고 필증을 교부한 사례가 있는 서울시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D+212] 배달플랫폼 ‘부릉’ 공정거래위원회 조정
2019년 11월 28일, 부릉’과 지점장 사이의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조정 결과를 발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배달대행 플랫폼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가 배달수수료 삭감에 반발하는 지점장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은, 공정거래법의 ‘거래상 지위 남용’이라는 내용과 함께 ‘회사가 3000만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16일 오전 11시 쿠팡 본사 앞에서 라이더유니온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2020년 6월 16일 오전 11시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라이더유니온의 기자회견

[D+413] 꿈쩍않는 쿠팡이츠
2020년 6월 16일,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보험 가입, 배송시간 현실화, 소통 창구 개방 등 배달노동자 처우 개선에 대한 요구사항을 전달했다.이후 쿠팡이츠는 오히려 기존 앱을 배달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수정했다. 박 위원장은 “배달시간 현실화 요구에 쿠팡이츠는 배달기사에게 예상배달시간을 고지하지 않고, 소비자만 이를 알 수 있도록 앱을 바꿨다”면서 “고객의 평가에 따라 일을 잃을 수 있는 배달기사는 언제까지 도착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큰 불안과 속도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식입장 없이 앱을 간단히 수정하는 방법과 태도는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기자회견 당시 대화요청서를 받은 쿠팡이츠는 1주일 내로 관련한 답변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연락이 닿지 않았다.

[D+441] 배달플랫폼 공룡 ‘배민’ 전향적 변화 유도
2020년 7월 14일,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에 문제제기를 통해 배민커넥터의 근무 시간 제한을 없애는 성과를 이끌었다. 배민커넥터는 프리랜서(비전속) 라이더로, 300만원~400만원에 달하는 유상종합보험을 가입해야 일할 수 있는데, 배민은 배민커넥터 모집 당시 근무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전업으로 일할 생각으로 보험 가입비, 장비 구매비 등 많은 비용을 투자한 배달노동자들이 많았다. 배민은 서비스 시작 약 8개월 후 갑작스럽게 배민커넥터는 ‘부업’ 개념이라며 주 20시간의 근무 시간 제한을 둬 논란이 됐다. 라이더유니온은 이에 기자회견을 준비했고, 그 결과 배민으로부터 근무 시간 제한을 없애고, 신규 입직을 받겠다는 답을 받았다.

[D+500] 라이더유니온 전국노조 될 수 있을까?...기약 없는 기다림
2020년 9월 11일, 넘어야 할 산도 남았다. 현재 전국노조설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라이더유니온은 지난 7월 30일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에 노동조합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신고가 받아들여지면 전국 노조로 발돋움할 수 있지만, 결과는 안갯속이다. 노조설립필증은 보완, 반려 사유가 없는 경우 3일이 이내에 주어지는데, 라이더유니온은 노조설립필증 교부 대신 ‘출석’ 통보를 받았다. 배달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될 수 있는지 확인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출석 요구에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이 고용노동부를 방문한 모습./사진=라이더유니온

결국 박정훈 라이더 유니온 위원장과 조합원들은 지난 8월 13일 고용노동부에 출석해 4시간에 걸친 근로감독관의 조사를 받았다. 박 위원장은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면서 “우리나라는 노동자의 범위를 협소하게 인정하고 있어 전국 노조 설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가 끝난 뒤 약 3주의 시간이 흘렀지만, 별다른 소식은 없다. 유니온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노동부로부터 노조설립필증을 받은 ‘대리운전노조’는 1000일 넘는 시간이 걸렸다. 유니온도 설립필증을 받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라이더유니온의 전국 노조 인정을 검토 중인 노동부 관계자는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갖추고 있는지 면밀히 검토 중”이라며 “언제 결과가 나올지 말하기는 어려운 단계”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와 노동부의 노조 인정 절차와 시간에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서울시가 제대로 검토했다고 보기 힘들다”며 “노동자로 인정하기 어려운 라이더들도 많고, 쿠팡이츠, 배민, 요기요, 부릉 등 배달 플랫폼 업체와 근로 형태가 다양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이유로 대리운전기사의 전국 노조 설립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말도 덧붙였다.

라이더유니온은 노동부의 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 위원장은 “기본 전제가 잘못됐다”며 “현재의 조합 심사와 방식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는 건데, 신고제인 노조설립을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현재 행태는 위헌적이며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로, 이걸 전제하고 묻고, 답하는 시대인 것은 문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국 노조 설립이 된다고 해도, 당장 변화는 크지 않다. 지금처럼 조합원 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전국적인 활동은 어렵다. 다만, 전국 노조로 인정 받는다면, 특수고용직도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은 선례 중 하나가 될 수 있어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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