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고 했다. 당사자는 물론 부모 형제 자식까지 갖은 고초와 수난을 겪어야 했기에 나온 말이다. 그만큼 독립운동은 집안의 희생을 감수하고 나서야만 했던 험난한 길이었다. 그런데 가문 차원으로 독립운동을 벌인 경우가 있으니,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일가가 대표적이다.1910년 나라가 망하자 우당의 6형제들은 만 여석의 전 재산을 처분하고 50여 명의 가솔을 이끌고 만주 서간도로 망명했다. 그리고 경학사(耕學社)와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해외 독립군 기지를 개척했다. 잘 알려지듯이 신흥무관
크로포트킨, 동아시아에 진출하다제국주의가 동아시아를 지배하던 20세기 초, 격변하던 그곳은 각종 이념의 전쟁터였다. 유교사상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동아시아 3국은 각종 최첨단 무기와 신기술로 무장한 서양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철저하게 물리적으로 패배했고, 거대했던 중국의 몰락은 당시 지식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서양 제국주의 성공의 배후에 과학기술이 있다는 건 분명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전후로 과학기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과학기술에서 가장 앞서나갔다. 중국 또한 이미 오래전부터 서양과의 교역을 통해 과학기술 서적이 번
영국의 위대한 망명객, 크로포트킨크로포트킨은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러시아에서 태어난 생물지리학자였다. 그는 반체제운동으로 오랜 수감생활을 했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1876년 탈옥한 이후에는 영국으로 망명한 후, 프랑스와 스위스를 오가며 아나키즘 운동을 하다가 프랑스에서 다시 수감생활을 한 이후인 1886년부터는 줄곧 영국에 머물렀다. 당시 영국에서 아나키즘은 혐오의 대상이었지만, 크로포트킨은 귀족 출신이라는 그의 독특한 이력과 유명세 덕분에 영국사회에서 제법 알려진 명사가 될 수 있었다. 특히 19세기 후반 영국 사회는 과학에 대
아나키즘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종류의 사회적 운동이다. 아나키즘이 근대 일본에서 ‘무정부주의’로 번역되면서 아나키즘이 폭동, 암살, 테러 등의 폭력적 운동들로 연상되지만, 아나키즘이란 그저 지배(권위)가 없는 상태를 추구하는 사회적 운동일 뿐이다. 그러니까 아나키란 지배자가 없는 혹은 권위를 거부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나키즘이 거부하는 권위는 정부만을 특정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은 강압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종류의 권력에 저항하는 정신이다. 만약 누군가 거대한 폭압적 권력에 맞서고 있을때, 그는
“그러므로 금세기의 산업의 진보가 만인에 대한 각인의 싸움 덕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의 원인을 모르는 자가 진흙으로 만든 우상 앞에 바친 희생의 덕분으로 비가 내린다고 하는 것과 흡사하다. 자연에 대한 정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산업의 진보의 경우도, 상호부조와 긴밀한 교류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확실히 상호투쟁 이상으로 유익한 것이다.” 크로포트킨, 중에서약산 김원봉, 여전히 계속되는 아나키즘의 오해우리는 여전히 약산 김원봉을 독립운동가로 서훈하지 못한 국가적 이데올로기에 갇혀있다. 대통령의 입에서 “광
“○○씨 별세, △△ 교수 모친상=□일 A병원 발인 ◎일 오전. 연락처 02-1234-5678”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