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잠실 사옥
삼성생명 잠실 사옥

이로운넷 = 이화종 기자

15년이나 묵은 삼성생명 잠실사옥과 관련한 수사가 재개되 관심이 쏠린다.

29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용성진)는 최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를 받는 이만규 아난티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은 지난달 21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를 받는 삼성생명 출신 황모 씨도 소환했다.

검찰은 삼성생명의 전직 임원들이 서울 송파구 일대 토지를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해 삼성생명에 수백억 원의 손해를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일요신문의 29일 보도에 따르면 애초 해당 수사는 2023년 8월쯤 마무리가 예상됐다. 검찰이 혐의 입증을 자신했기에 이때 단행된 검사장급 인사 이전에 끝날 것이란 분석이 컸다. 하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이홍규 전 아난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기소한 게 현재 유일한 성과인 것이라고 알려졌다.

지난 2009년 4월 3일 故(고)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 개인이 보유해온 토지를 아난티가 500억원에 매입했다. 그리고 2개월 뒤인 6월 22일 삼성생명에 '건물준공'을 조건으로 1000억원 수준의 판매계약을 체결했다.

결국 970억원에 매입한 이 땅은 건축비를 고려하면 전혀 납득 못할 가격차는 아니지만 검찰이 주목하는 부분은 왜 아난티를 거쳐 이 땅을 매입했는가이다. 

대한 방직의 옛 관계자들이 검찰에 참고인조사를 받으며 "삼성생명이 아난티보다 비싸게 땅을 매입할 의사를 타진했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매체는 '설 전회장이 아난티와 다운계약서를 쓰고 남은 금액을 따로 챙겼을 가능성이 있지만 설전 회장이 이미 고인이 됐기 때문에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대한방직 측도 "옛날 일이고 설 전 회장 개인 땅이었으므로 잘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 삼성과 아난티가 故(고)설원식 전회장의 고민 해결···백억단위 다운계약서 의혹

지난해 기소한 이홍규 CFO의 2차 공판도 검찰의 연기신청으로 진행되지 않는 가운데 지난 2월 이만규 아난티 대표를 배임 등의 혐의로 조사하고 삼성생명의 전직 부동산 사업부장 이 모씨도 최근 소환했다.

해당 보도를 전한 매체는 검찰이 삼성, 아난티, 대한방직 등의 전직 임원들을 불러들여 조사를 하며 애초에 삼성 측이 600원대의 더 높은 가격에 토지를 매입할 의사를 적극 타진했음에도 아난티에 훨씬 더 싼 가격에 팔았다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전했다.

故설 전 회장은 2009년부터 양도소득세를 포함해 5건의 세금 총 156억200만원을 체납해 국세청이 공개하는 상습 고액 체납자 명단에 올랐으며 2015년 사망할 때까지도 납부하지 않았다. 유족은 상속 포기로 세금을 털었다.

매체는 故설 전 회장의 최측근인 임원이 "삼성이 액면상으로는 비싸게 사겠다지만, 아난티에 파는 쪽이 회장님께 도움이 된다"고 하자 다른 인사가 "무슨 말이냐. 싸게 파는 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하버드 경제학 박사를 주겠다"고 맞받아친 일까지 있었다고 전했다.

안형열 대한방직 감사도 이번 수사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는 1985년부터 2001년까지 고 설원식 대한방직 회장의 최측근 비서로서 재산 관리도 맡아 왔다. 자신이 직접 설 전 회장의 차명 주식을 만들고 관리했다는 사실을 2021년 폭로하고 감사로 선임돼 관심을 모은 인물이다.

안 감사는 "신천동 부지의 아난티 매각 과정에서 각종 잡음이 있었던 사실은 익히 들었지만 이제라도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지 관심 있게 보고 있다"며 "여러 정황상 차명 주식이 더 존재한다는 합리적 의심도 여전한 만큼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대한방직 관계자는 "신천동 부지 매각이 워낙 오래된 일인 데다 오너 개인의 땅이라 알고 있는 사람이 현재로선 없다"며 "차명 주식 문제의 경우 2019년 대법원 확정 판결 후 사법적으로 문제가 된 적이 없고 이미 정리가 끝난 사안"이라고 밝혔다. 

무슨 의리가 있어 삼성생명과 아난티의 전·현직 임원들이 수백억원대의 비용을 회사에 안기며 故설 전 회장의 고민을 해결해줬는지는 알 수가 없다.

◆ 그림이라도 받은 걸까?···출처불명의 자금으로 마련한 설원식 콜렉션

대한방직은 3대인 설범 회장 승계 이후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계열사의 부도에 이어 오너일가에 대한 세무당국과 검찰의 조사가 이어졌다.

1990년대 말 5000억원 수준의 회사 자산은 2019년 기준 20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 들었다. 30년간의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10분의1도 안되게 줄어들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뉴스타파의 지난 2021년 4월 1일자 보도 <'어느 재벌 재산관리인의 고백③ 여전히 잘 산다'>에 따르면 수원, 대구 공장 부지와 여의도 본사 건물을 처분한데 이어 2017년에는 남은 전주공장 부지까지 매각해 부동산이 모두 처분됐다.

설범 회장은 아세아종금 부도 직전 이혼을 했고, 故 설 전회장의 장충동 자택은 故이건희 회장에게 팔렸고 설범 회장의 성북동 자택도 재산분할로 전 배우자가 가져갔다.

매체는 표면상 이들은 몰락해버렸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혼한 설범 회장 부부는 SNS에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등장하고, 딸은 홍콩에 회사를 차리고 사업가로 살고 있다.

뉴스타파는 서류상 설범 회장은 20년전 이혼해 가족과 떨어져 창고 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 재산압류를 피하기 위해 위장 이혼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설원식 전회장의 재산관리인 비서 안형열 씨는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에 차명 부동산이 있었다"라며 "굉장히 넓은 땅이었으며, 당시 개발 호재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여주 땅은 故박준규 국회의장과 故설원식 전회장이 함께 사들인 땅이다. 땅값은 설원식 회장이 대고 명의는 여럿으로 나눴다. 두 사람은 미국 콜롬비아 대학 유학시절 만나 평생 친분을 유지했다. 

박준규 전의장은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5·16 이후 민주공화당에 영입되고 1988년에는 민주정의당에 영입돼 정치행보를 이어갔고 1995년에는 자민련으로 옮겨가 총 9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13대·14대 국회 의장을 맡았다.

당시 뉴스타파는 설원식 전회장의 미술품 컬렉션에 주목했다. 

조선의고갱이라 불리던 이인성 화백의 '가을의 어느 날' / 사진 = 온라인커뮤니티
조선의고갱이라 불리던 이인성 화백의 '가을의 어느 날' / 사진 = 온라인커뮤니티

안씨는 "설원식의 컬렉션 가운데 화가 이인성의 작품이 많았다"라고 증언했다. 

매체 취재진은 미술품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인성 화가의 아들 이채원 씨를 만났다고 전했다.

이씨는 20여년 째 대한방직을 비롯한 재계에 흘러들어간 부친의 작품들을 환수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2012년 이인성 전시회 당시 설원식 소유의 이인성 작품이 성북동 설범 회장의 집에서 나왔다"라며 "장충동 설원식의 집, 서울 모처의 아파트에 보관되어 있던 작품들이 어느새 아들 설범의 손으로 넘어가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설범 회장 자택에 보관돼 있던 미술품 이송에 입회하겠다고 요청했지만 설범 측은 허락하지 않았다. 나중에 전시회에 나온 작품을 살피다 보니 일부 작품이 훼손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작품이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하자 이씨는 체계적 관리를 위해 설범 회장을 상대로 미술품환수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는 이 미술품들을 사들인 비용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뉴스타파는 "회사의 비자금으로 사들인 작품이다 보니 소유관계가 명확치 않다"고 추정했다.

안 씨에 따르면 작품구입 자금은 회사 자금부나 차명주식 계좌 잔고에서 나왔으며 별도의 영수증 처리는 없었다. 공식적으로 설원식 전회장의 소유도, 대한방직의 소유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인성 화백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시작했으며 1935년 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창덕궁상을 받은 화가로 '조선의 고갱'이라고도 불린다.

1930년 일본 다이헤이요 미술학교에 입학해 일본 수채화 연맹의 회원이 됐으며 문부성미술전람회와 제국미술전람회에서도 여러차례 입선했다. '가을의 어느 날' '경주의 산곡에서' 등이 잘 알려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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