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리뷰= 땡삐 리뷰어]

사진=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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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국내 개봉 2021. 2. 24) 일본 120분

감독 : 이와이 슌지

출연 : 마츠 다카코, 히로세 스즈, 모리나나, 후쿠야마 마사하루, 나카야마 미호 등

줄거리 :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언니를 대신해 동창회에 간 동생 유리. 그곳에서 언니를 줄곧 사랑해왔다는 소설가 쿄시로를 만나고 유리는 언니인 척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닿을 수 없는 편지가 오가며 20여 년 전 미사키와 쿄시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꼭 꼭 숨겨뒀던 러브레터를 꺼내는 두근거림으로 그 동안 미뤄왔던 이와이 슌지의 최신작을 감상했다. <러브 레터>나 <4월이 이야기>가 들려줬던 그 시절 첫사랑의 아련함을 기대하고 말이다. 물론 최신작이라고 해야 6년전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와이 슌지만의 첫사랑 찾기 프로젝트는 여전히 ing인 것 같아 반가웠다.

역시나 그의 편지는 필자의 시간을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돌아갈 수 없는, 어쩌면 내게는 없었을 지도 모르는 그 시절일지도 모르는데... 마치 나의 시간인양 이와이 슌지는 내게 설레는 첫사랑을 선물해줬다. 

더구나 과거 일본 로맨스의 여주인공 마츠 다카코를 다시 만나는 행운까지. 그녀의 목소리, 발음을 참 좋아했었는데, 그 경쾌함까지. 세월을 살짝 비껴간 듯한 그녀의 모습이 중년스럽지 않게 상큼했다. 러브 레터의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가 선배와 부부가 되어 24년만에 만난 장면 역시, 내용 상의 흠결을 뛰어넘어 시간을 거스르는 추억 한다발이었다.

사진=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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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했던 언니 미사키의 삶이 자발적으로 막을 내렸을 때야 동생 유리는 언니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언니의 부고 소식을 알리러 참석한 동창회에서 언니로 오해 받게 되는 장면은 살짝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극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무척이나 닮았고 세월의 힘이 작용했다고 백번 양보할 수 있었다. 더구나 25년간 언니를 사랑해 왔던 동창 쿄시로는 그 사실을 처음부터 알아차렸다고 고백하기도 했으니… (물론 미사키의 삶이 왜 그리 고달팠고, 다른 선택지에 대한 왈가왈부는 일단 차치하고...)

유리는 그 시절 본인의 첫사랑이었던 쿄시로에게 언니인 척 편지를 보내고, 미사키의 소식이 궁금했던 쿄시로는 학창시절 부모님의 주소로 편지를 보내면서 이야기는 <러브레터>의 시퀀스를 닮아가게 되고 추억도 소환한다. 마침 미사키의 딸이 편지를 받게 되고 엄마인 척 다시 교시로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사진=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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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이나 문자, SNS가 한창인 요즘, 아날로그 감성의 손편지에는 애써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세 사람의 이야기와 삶이 펼쳐진다. 하얀 편지지에 정성스레 써 넣은 한 글자 한 글자를 봉투에 넣고 풀칠을 하고 다시 빨간 우체통에 넣는 순간부터 며칠이 걸려 받게 될 답장을 기다리는 긴 여정을 이 영화는 느리게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리의 그 시절과 첫사랑의 시간이 그렇게 흐르기를 바라는 것처럼.

고등학교 3학년, 쿄시로를 처음 만난 건 유리였지만 쿄시로는 언니인 미사키를 본 순간부터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쿄시로는 마시키를 향한 러브레터를 유리에게 전달해주기를 부탁하고, 답장이 없어 궁금하던 차에 우연히 만난 미사키로부터 편지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듯한 반응을 접한다.

유리는 쿄시로의 다그침을 받기 전날 편지를 전해주었다고 하고, 언니는 그녀에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하면서 자신이 쓴 첫 러브레터를 쿄시로에게 전달한다. 그 순간, 유리는 자신의 마음이 닿을 곳이 없음을 알게 되고 짝사랑을 끝내게 된다. 때로 고백은 상대에게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용기인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사진=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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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시로와 시미코의 가장 빛나던 순간, 고등학교 졸업식. 미사키는 쿄시로에게 졸업답사문 작성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며, 글 솜씨가 뛰어나다는 칭찬과 함께 소설가가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한 마디가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인생의 줄기를 채우기도 하는데, 코시로가 지금의 소설가로 있는 것은 그녀의 덕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쿄시로는 대학 때 미사키와 사귄 후 <미사키>라는 책을 써서 작은 상도 받았으니, 그녀가 코시로의 뮤즈이자 삶의 원동력이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헤어짐의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미사키는 급하게 다른 이와 결혼을 하고 성급한 선택은 미사키 자신뿐 아니라 딸 아유미에게도 폭력적인 가장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 쿄시로는 첫 만남부터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사키만 생각하며, 차기작도 쓸 수 없는 오랜 슬럼프를 겪고 있다.

사진=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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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첫사랑의 추억을 가슴에 묻고 살다간 미사키의 고난한 시간은 그녀를 쏙 닮은 딸 아유미와 몇 십년이 지나도록 그녀를 더듬고 있는 쿄시로의 만남으로 인해 비로소 활짝 피어난다. 쿄시로 역시 자신의 러브레터와 책이 미사키의 삶을 위로하고 불빛이 되어 줬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의 상처도 치료하고 진심으로 그녀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이와이 슌지의 영상은 봄, 여름, 겨울을 너무도 그 계절답게 그려내고 뇌리에 자리잡게 해 준다. 4월을 온통 벚꽃으로 수놓기도 하고, <오 갱끼데스까>를 연발하게 하던 눈 덮인 산도 그렇고, 이번에는 푸르고 푸르러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여름 산과 물소리가 그렇다.

학창시절 첫사랑에 대한 기억(러브레터는 중학생, 라스트레터는 고등학생),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장면, 첫사랑의 죽음, 감기에 걸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여자주인공, 장례식 장면, 인물들 사이의 오고 가는 편지와 나레이션, 편지를 통해 그 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스토리 등등… 감독의 자가복제라는 비판도 있지만, <러브레터>가 첫사랑이 스며들던 살아온 날에 좀더 포커스 했다면, <라스트 레터>는 멈췄던 삶에 방향키를 넣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미사키> 중에서

이른 봄바람이 등을 떠밀 듯

신기하고도 들뜬 감정을 느꼈다.

바람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라, 하고

꿈을 이루라, 하고

유리의 시어머니가 못다했던 영어 공부에 매진하며 기쁨을 느끼는 것, 유리의 남편이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는 것, 쿄시로가 다시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 아유미가 엄마의 마지막 편지를 꺼내 읽는 것. 유리의 딸이 학교에 가겠다고 하는 장면 등이 모두 다시 삶의 꽃을 피우려는 모습이니까.

사진=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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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고, 그 사람의 지극히 정성스러운 염원으로 오늘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감독은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유리의 당부처럼 살면서 그 첫사랑을 가끔 꺼내어 보고 되새김하며 기억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건 상대를 위함이기도 하고 나 자신을 위함이기도 하다. 불안한 삶 속에서 나를 잡아주고 이끄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언제나 옳다.

“누군가가 그 사람을 계속 기억해 준다면, 죽은 뒤에도 계속 사는 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와이 슌지가 보내주는 첫사랑의 전갈은 언제나 '힐링'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는 리뷰타임스와의 콘텐츠 제휴로 국민리뷰어가 직접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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