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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로댕의 대표적인 작품 < 칼레의 시민>. 로댕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어원이 된 프랑스 칼레시의 6 영웅에게 닥친 운명적 고뇌를 조각상으로 표현했다. 사진출처: flickr, by lilas59

기부의 역사는 오래다. 길고 긴 기부의 역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과 그 궤적을 같이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귀족들은 신분에 따르는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본래 그러한 특권을 향유하는 것에 상당하는 도덕적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용어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의 2천 년 역사를 지탱해준 힘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로마의 귀족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전장의 선봉에 서서 용감하게 적과 싸웠다고 한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사회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 헌납 등의 전통이 강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재임 중 국가가 어렵거나 재정이 부족할 때 개인재산으로 국고를 네 번이나 지원했다고 한다. 로마의 귀족들 또한 공공시설의 복구나 건축을 위해 개인재산을 희사하는 것은 다반사였으며 빈곤 퇴치나 차세대육성을 위한 기부도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런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지성은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은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은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다던 로마인들로 하여금 커다란 문명권을 형성하고 무려 천년동안이나 강한 국가를 유지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자리 잡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 뿌리를 내렸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사회들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최근 과도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에 시달리는 프랑스와 벨기에, 독일의 부호들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라고 정치권에 촉구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전통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시작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신흥국가인 미국으로 건너와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처음부터 봉건적 계급제도 없이 만인이 평등한 민주국가로 시작한 미국에는 유럽과 같은 귀족계급이 없었다. 따라서 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특정계급인 귀족의 책무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책무로 형성되었다. 또 미국에서 찬란한 자본주의의 역사가 꽃을 피우게 되면서 귀족의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기업가들이 들어서게 된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는 1902년 1월 29일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액수인 2천5백만 달러를 기부하여 공공도서관 건립을 지원하는 워싱턴 카네기협회를 설립했다. 사진 출처: wikipedia
미국 기부문화의 시발점에는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있다.?카네기는 65세가 되던 1900년 “부자인 채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던 자신의 철강회사를 5억 달러에 처분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막대한 자금으로 자선활동을 시작하여 여생을 ‘위대한 기부자’로 보내게 된다. 미국에는 카네기 이후 록펠러(3억 5천만 달러, 1913년), 포드(5억 달러, 1936년) 등이 이어서 부의 사회 환원을 위해 재단을 설립했고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테드 터너 등에 의해 면면히 계승되어 현재는 5만 6천여 개의 재단이 활동 중에 있다.

미국의 부자들은 막대한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데 경쟁적이다. 세계최고의 부호이며 최대의 기부자인 빌 게이츠는 “부의 사회 환원은 부자의 의무”라고 말한다. 미국 부자들의 이러한 선행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쳐 이제 미국인들은 기부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전체 미국인들의 98%가 어떤 형태로든지 기부에 참여하고 있으며 소액기부자들의 기부가 총 기부액의 77%에 이르고 있다는 최근의 통계가 그러한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카네기 이후 한 세기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기부의 전통이 부자들의 미덕이자 미국의 힘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미국의 부자들은 이러한 나눔을 통해 과거 유럽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를 미국 사회에 새로운 형태로 정착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부시 정부가 추진한 바 있는 상속세 폐지 시도에 대해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 조지 소로스, 데이비드 록펠러 같은 거부들이 “상속세 폐지는 혐오스러운 일”이고 “유산보다는 능력에 의해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책임 있는 부자’라는 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은 그들이 하고 있는 기부의 진정성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문화는 미국사회의 갈등을 봉합하고 미국인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기부의 역사는 면면히 흐르고 있다.?우리 민족의 수난의 역사 곳곳에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신의 안위를 생각지 않고 온몸을 던져 나라를 구한 훌륭한 선조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들의 애국심과 의기는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설명하는 서구 노블레스들의 강력한 도덕적 권위의 원천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근대사에서만도 그런 인물들은 쉽게 만날 수 있다.

우선 사회에 공헌하는 부자의 전범으로 경주 최부자 가문을 꼽을 수 있다. 경주 최부자 가문은 무려 10대, 300년에 걸쳐 만석꾼의 재산을 유지하면서 수 없이 많은 선행과 독립운동의 후원자 역할을 통하여 부자로서는 드물게 존경과 칭송을 받는 집안이다. 최부자 집안은 권력을 멀리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였으며,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고, 검소하게 살며 자선을 베푼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항일운동과 교육 사업에 전 재산을 바치는 것으로 기나긴 부의 세습을 마무리했다. 최부자 집안이 칭송을 받는 것은 부를 많이 축적했고 그것을 오랫동안 유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자선 활동과 사회공헌으로 지도층의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최부자 가문의 모범은 한, 두 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집안의 전통으로 전해내려 온다는 점에서 음미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은 1906년 10월, 만주에 서전서숙을 세우고 무력항쟁 기지를 설립할 구상을 하여 전 재산을 처분하였다. 사진 출처: wikipedia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일가 역시 우리나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역사를 논하는 데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집안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회영과 그의 형제들은 만주에 무력항쟁 기지를 설립할 구상을 하고 전 재산을 처분한 뒤 1910년 12월의 추운 겨울날 60명에 달하는 대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떠났다. 그때 처분한 재산이 사료에 따라 조금씩 추정치가 다르나 요즘 가치로 환산하면 600억 원에 이르는 거금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때 만주로 간 우당 6형제는 그 자금으로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의 중추기관으로 성장시켰다. 우당의 6형제 중 훗날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을 제외한 5명이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조국의 해방도 보지 못한 채 옥사하거나 고문후유증, 굶주림으로 타국 땅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명문가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전 재산을 헌납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이회영 일가의 일화는 사회적, 도덕적 책무를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인으로서 귀감이 되는 인물은 유일한이 우뚝하다. 유일한 만큼 인생의 편차가 큰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는 한 세기 전 불과 10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생에서 경영자로 성장하였고,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고국에 돌아와 민족기업을 일으키고는 항일투쟁을 위해 미 육군 전략정보처(OSS)의 특수요원으로 변신하였다. 해방 후에는 다시 기업을 키운 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그는 독립운동가로, 참된 기업가이자 기부문화의 선구자로 우리의 근대와 현대를 잇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자라 할 만한 인생을 살았다. 그에게 기업은 목적이 아니라 나눔을 위한 수단이었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는 그의 어록에서 남다른 기업관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우리 사회에는 과거에 존재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나눔의 철학으로 승화되어 계승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라거나 가족이기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고 있기엔 우리 사회의 삶의 질 양극화현상은 너무나 심화되고 있고 기부문화의 토양은 척박하기만 하다. 근자에 와서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우리사회의 기부주역은 김밥할머니, 삯바느질할머니라는 사실이 그러한 현실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아직도 우리의 기부현실은 개인기부보다 기업의 기부가 많고 그 기업기부의 상당부분은 준조세적 성격의 비자발적 기부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 기업가들의 기부는 아직도 많은 경우 회사의 자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처럼 개인의 재산을 자선사업에 쾌척하는 경우는 드물다. 비중이 낮은 개인 기부조차 여전히 일부 계층에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일회성이고 충동적인 기부에 그치고 있다.

이제 우리도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안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기부는 정부의 개입 영역이 아니거나 정부의 역할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문제의 해결에 기여한다. 또 자선적 기부는 사회의 균형 발전을 가능하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한다. 우리 사회에 건강한 기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자선적 기부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확대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의 기부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도 이제 우리가 갖고 있는 행복을 조금씩 소외된 이웃과 나눌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전한 기부문화의 정착이 시급하다. 기부문화가 우리사회를 움직이는 시대정신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가 기업중심에서 개인중심으로, 일회성 기부에서 정기기부로, 비자발적 기부에서 자발적 기부로, 다액소수의 기부에서 소액다수의 기부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사회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의 대표적인 기업인들이 개인재산을 쾌척하기 시작하고 중산층들이 기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풍조는 대단히 희망적인 조짐이 아닐 수 없다.

기고: 예종석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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