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나이프크루 사업에 참여한 팀들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가 변화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신청한 것이거든요. 근데 사업이 중단되니 함께 하기로 했던 팀들이 ‘우리의 시도조차 물거품이 되는 것 같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지난해 7월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이 갑자기 중단되며 논란이 일었다. 2019년부터 3년간 이어져 온 버터나이프크루는 성평등의 중요성을 알리고, 정책을 제안하고, 실생활에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업이다. 

빠띠는 여성가족부와 2022년 12월 10일까지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운영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5월~6월에는 추진단을 모집해 17개 프로젝트팀을 선발했다. 6월 30일에는 추진단 출범식도 진행했는데 이 자리에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7월 24일 갑작스럽게 사업이 전면 중단됐다.

7월 초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화 개선은 프로젝트로 가능하지 않다" "명분을 내걸고 지원금을 받아가는 기존 시민단체와 같이 유사한 점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사업의 지원 대상이 페미니즘에 경도되었다" "남녀갈등을 완화한다면서,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한 뒤 벌어진 일이었다. 이후 사업 운영 주체였던 빠띠는 물론 프로젝트팀들도 모두 혼란에 빠졌다.

'변화의 월담' 팀의 활동모습. 변화의 월담은 '몸이 살아있는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의 신체감수성을 높이고 사회적 연대와 협력을 만들어내는 워크숍을 진행했다./출처=사회적협동조합 빠띠
'변화의 월담' 팀의 활동모습. 변화의 월담은 '몸이 살아있는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의 신체감수성을 높이고 사회적 연대와 협력을 만들어내는 워크숍을 진행했다./출처=사회적협동조합 빠띠

빠띠가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중단을 안타까워 했던 이유는 단순히 추진하던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업이 진행되던 3년동안 시민들이 직접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성평등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지평을 만드는 등의 성과를 내 왔기 때문이다. 

2022년 진행될 예정이었던 버터나이프크루 4기는 ▲성평등 ▲젠더갈등완화 ▲공정한 일자리 ▲마을돌봄 등 4개 분야에서 활동할 팀을 모집했다. 특히 젠더갈등완화 분야를 신설해 갈등 완화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 진행될 예정이었다. 

운영 주체인 빠띠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만들어 보는 이전 사업과 달리 '시민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디지털 민주주의를 혁신하는 활동가들의 사회적 협동조합' 이라는 빠띠의 정체성에 걸맞은 시도다. 이를 위해 청년 팀들이 성평등을 주도하고, 동료 청년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프로젝트팀들이 사업을 수행하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시민참여 활동을 필수적으로 지정해서 서로 연계를 통해 확장하고 이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시민들이 경험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을 통해 성평등 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려는 목표도 있었다.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빠띠는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목표는 분명했다. '청년들이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구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함께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게 빠띠가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운영에 참여한 이유였다. 의욕적인 기획은 일방적인 사업 중단 사태로 벽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민들의 힘 모아 계속했다 

멈출 수는 없었다. 빠띠는 커뮤니티 공모를 통해 기존 ‘버터나이프크루’였던 사업명을 ‘액션크루 그럼에도 우리는(이하 그럼에도 우리는)’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 빠띠 이사로 활동 중인 황현숙 이사(닉네임 단디)는 “사업을 일방적으로 폐지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도 굉장히 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못하겠다면 우리끼리라도 잘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버터나이프크루 4기로 선발됐던 팀들의 의견도 중요했다. 각 팀들에게 시민들의 힘을 모아 빠띠와 함께 사업이 종료될 때까지 함께하며 프로젝트를 수행 할 것인지를 제안했고, 17개 팀 중 13개 팀이 프로젝트를 예정대로 진행했다. 각 팀들은 진행할 예정이었던 프로젝트의 일정을 조정하며, 12월 말까지 활동을 무사히 마쳤다.

'스여일삶' 팀이 진행한 스타트업 여성들을 위한 '찾아가는 노무 상담소'. 이 프로젝트를 통해 스타트업 여성들의 고충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과 해결책을 만들어나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출처=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스여일삶' 팀이 진행한 스타트업 여성들을 위한 '찾아가는 노무 상담소'. 이 프로젝트를 통해 스타트업 여성들의 고충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과 해결책을 만들어나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출처=사회적협동조합 빠띠

“당초 (계획했던)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예산 규모가 작은 게 아니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도 해보기로 했죠. 우리는 사회적협동조합이고, 이건 원래 시민주도 프로젝트니까요. 우리는 지역이건 사회건, 개인이건 단체건 상관없이 시민들이 자신의 일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지원하고 도구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을 하는 곳이니까. 우리가 잘하는 방식대로 재미있게 해보기로 한거죠. 그리고 ‘후원을 받아보자’고 결정했고요.”

후원을 받기로 했지만 엄청난 규모의 후원금이 모인 건 아니었다. 기존 예산 규모가 보장됐다면 예정대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첨예하기만 한 '젠더이슈'에 대해 건강한 대화의 장을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사업이 중단 되면서 이를 시도해 볼 기회 조차 사라진 것이다. 

물론 사업이 계속 진행 된 배경에는 프로젝트팀들과 약간의 운영을 할 수 있는 비용이 모인 덕이다. 이같은 시민들의 참여는 앞으로 사업이 계속되고, 사회에 올바른 성평등 문화를 만드는데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예산 규모에 따라 '그럼에도 우리는' 사업은 프로젝트를 온전히 수행하는 것에 우선 집중했다. 빠띠의 장하은 활동가는(닉네임 이레)는 “단순히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청년들의 활동을 더 많은 시민들과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과 같은 여러 가지 활동들이 결합돼 있었는데, (아쉽지만) 그런 여러 부분을 축소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뿌리탐사 팀이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의 마음돌봄과 연대를 위한 티타임 등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출처=사회적협동조합 빠띠
뿌리탐사 팀이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의 마음돌봄과 연대를 위한 티타임 등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출처=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이달 14일 성평등 페스타 개최

지난해 말 여러 사람의 관심으로 ‘그럼에도 우리는’ 사업은 잘 마무리됐다. 그리고 오는 14일 서울 종로구에 소재한 노무현시민센터에서는 ‘2023 성평등 페스타:우리는 멈추지 않아(이하 성평등 페스타)’가 열린다. 성평등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대화, 네트워크가 있는 축제의 자리다. 성평등 페스타는 ▲세바크: 세상을 바꾸는 크루들의 스피치 ▲토크콘서트: 백래시의 시간, 존버하는 우리를 위해 ▲워크숍: 청년 성평등 프로젝트 직접 참여하기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그럼에도 우리는’ 13개 팀의 활동 전시 부스와 네트워킹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된다.

장하은 활동가는 이번 페스타에 대해 “함께 활동했던 13개 팀들의 프로젝트 수행 과정과 의미뿐만 아니라 일상의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지지하고 연대하는 장”이라고 설명했다. 

빠띠는 이번 성평등 페스타를 진행하기 위한 소규모 후원도 진행하고 있다. 장 활동가는 “성평등 페스타를 앞두고 펀딩 페이지를 만들었다. 빠띠에서도 이 같은 펀딩 페이지를 열게된 건 처음 시도해 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한 13개 팀의 목소리를 담은 굿즈(티셔츠) 등 함께 한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을 만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2023 성평등 페스타:우리는 멈추지 않아'에 대한 후원참가 신청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할 수 있다.

빠띠는 14일 노무현시민센터에서 ‘2023 성평등 페스타:우리는 멈추지 않아'를 진행한다./출처=사회적협동조합 빠띠 
빠띠는 14일 노무현시민센터에서 ‘2023 성평등 페스타:우리는 멈추지 않아'를 진행한다./출처=사회적협동조합 빠띠 

‘기록’은 모든 일의 기본이 된다

사업이 추진되던 중 갑자기 중단되는건 흔한 일이 아니다. 빠띠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의 어느 조직에서든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게 드러났다.

그대로 빠띠는 당황하며 좌절만 하지 않고 사태 유발자들에게 차분히 대응하고 다음을 고민했다. 빠띠 활동가들에게 위기에 잘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한참을 고민하던 황 이사는 “이번에 겪었던 위기에 이 정도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긴 하지만) 모든 논의를 기록하고 아카이빙 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건 빠띠가 일하는 방식인데, 우리는 주로 원격으로 일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논의는 전부 기록으로 남겨둔다. 특히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하던 시기에는 온라인 회의도 여러번 진행됐기 때문에 회의 내용도 기록으로 남겨뒀다”고 말했다. 일하는 과정에서 아주 기본적인 사항 중 하나인 ‘기록’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사실 기록하는 게 특별한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일을 할 때 누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기록하고 정리하고 공유하는 것. 이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저희는 그 당연한 일을 계속하고 있었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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