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김영권 선수가 동점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는 대표선수들./출처=대한축구협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김영권 선수가 동점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는 대표선수들./출처=대한축구협회

비록 우리 대표팀이 브라질과의 16강에서 탈락하기는 했지만 이번 월드컵에서의 선전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이 마무리만 남겨놓은 시점인데 총결산하는 의미에서 개최국 선정을 둘러싼 논란을 다시 짚어보고자 한다.

모두의 예상을 깬 2022 월드컵 개최국 선정

2022년도 월드컵 개최지는 지난 2010년에 결정됐는데 2018년도 개최지와 함께 발표됐다. 더 많은 개최 희망국이 참여하도록 월드컵을 주관하는 FIFA(국제 축구 연맹)가 2개 대회 개최국을 한꺼번에 선정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2018년 월드컵 개최지에는 영국, 스페인 & 포르투갈, 벨기에 & 네덜란드, 러시아가 도전했고 러시아로 결정되었다. 비유럽 국가 차례였던 2022년 월드컵은 한국, 일본, 호주, 미국, 카타르가 신청했고 FIFA는 카타르의 손을 들어줬다.

카타르가 개최국이 된 것을 두고 잡음이 상당히 많았다. 오일 머니로 세계적인 부국이기는 하지만 월드컵 본선에 한 번도 진출한 적이 없을 정도로 축구 인프라가 부족하고, 낮에는 기온이 40~50도까지 치솟아 격렬한 축구 경기를 할 조건이 아니다. 게다가 월드컵 경기를 치를만한 메이저 도시가 수도인 도하 하나뿐이고 대형 스타디움은 그곳에 딱 하나 있다. 제반 여건과 상황을 고려할 때 다른 경쟁국에 비해 카타르가 최종 개최지가 될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카타르의 독자적 정체성이 만들어지다 

카타르 인구는 약 280만 명, 면적은 경기도 정도다. 국토 대부분이 사막 지대라 해안가에 위치한 수도에 전체 인구 90% 정도가 몰려 있다. 아무리 돈이 많은 나라라고 하지만 왜 그렇게 월드컵 개최에 목을 맸을까? 해답을 찾으려면 이 작은 나라가 걸어온 길을 살펴봐야 한다.

1930년대까지 카타르의 주력 산업은 진주조개에서 진주를 채취해 파는 것이었다. 1940년대에는 대공황 여파와 양식 진주로 인해 진주 무역이 쇠퇴하면서 큰 타격을 입는데 1950년대에 석유가 대량으로 매장된 것이 밝혀지면서 산유국으로 화려하게 탈바꿈한다. 19세기 중반부터 영국은 아라비아반도에 진출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바레인을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1971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카타르에게는 아랍에미리트 또는 바레인과 합치거나 독자적으로 국가를 세우는 두 갈래 선택이 있었다. 카타르의 선택은 후자였다. 

독립된 토후국이 되었지만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라는 두 지역 강자 사이에 낀 신세였다. 워낙 작은 나라다 보니 언제든 주변에 의해 평지풍파에 휩쓸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상존했다. 자신을 지킬 힘을 길러야 했고 오일 머니는 카타르의 경제적 자립을 가능케했다. 다른 산유국들과의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늦은 출발을 했던 터라 서둘러 선두주자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마인드셋이 있었다.  

석유뿐만 아니라 천연가스도 국부의 원천으로, 다른 길을 가게 된 카타르

출처=Getty Images Bank
출처=Getty Images Bank

그런 카타르가 빠르게 선두로 치고 나갈 계기가 마련된다. 카타르 영해에 천연가스가 엄청나게 매장된 것이 밝혀진다. 러시아, 이란에 이어 세계 3위의 매장량이었다. 석유를 팔아서 벌어들인 돈은 천연가스 채취와 액화천연가스 가공 설비를 갖추는 데 대거 투입했다. 그 결과 카타르의 천연가스 수출량은 현재 세계 2위다.

카타르의 국가 수입 78%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얻어진다. 사실상 다른 산업은 전무하다. ‘산유국의 저주’라는 말이 있는데 석유만 퍼내서 팔면 돈이 되니 다른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다. 고생스럽게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세계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할 필요가 없으니 오일 달러를 펑펑 쓰는 것에 만족하고 만다. 

석유와 천연가스로 벌어들인 돈은 걸프만의 소국을 엄청난 부국으로 만들었다. 1인당 명목 GDP 세계 9위, 성인 1명당 평균 수입은 중동 국가 중 1위다. 다른 산유국과 마찬가지로 산유국의 저주에 빠질 수 있었는데 걸출한 통치자에 의해 다른 루트를 밟게 된다.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 전 국왕이 그 주인공이다. 

계몽군주가 총지휘한 카타르의 현대화 

하마드 왕은 1995년에 불과 41살의 나이로 무혈 쿠데타에 성공해 집권했다. 왕좌에 앉은 시기는 카타르가 본격적으로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시작한 때와 겹친다. 그는 국가 차원에서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현대화를 적극 추진했다. 중동 지역 다른 국가의 왕들과는 구별되는 행보였다. 

BBC가 사우디 아라비아 국영TV와 공동으로 추진하던 아랍어 전용 뉴스 채널 설립이 좌절되자 장비와 인력을 통째로 인수해 유명한 알 자지라 방송을 만든다. 도하에 본부를 둔 알 자지라는 미국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침공, 아랍의 봄 운동 등을 아랍의 시각으로 보도하면서 BBC, CNN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방송사로 급속히 성장했다. 하마드 왕이 그 다음으로 손댄 것은 교육과 문화 부문이었다. 외국 유명 대학의 캠퍼스를 도하에 유치했고 각종 미술관, 박물관 같은 문화시설을 다수 만들었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빼면 아무것도 아닌 카타르의 소프트 파워를 키우려는 프로젝트를 곳곳에서 가동했다.

카타르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강력한 한 방, 월드컵 유치

카타르 월드컵 공인구 알 리흘라./출처=카타르월드컵 조직위원회
카타르 월드컵 준결승에서부터 사용하는 결승구 알 힐름./출처=FIFA

집권 3년 만에 전제왕정을 입헌군주제로 바꾸고 여성의 정계 진출을 장려하는 정치적 개혁도 시도하는 등 카타르를 중동 지역의 다른 국가와 차별성이 있는 나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자기 동네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세계 무대에서도 선진적인 국가로 인정받아야 했다. 카타르에는 그럴 돈도 충분했다. 문제는 마땅한 계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단일 종목으로 올림픽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 결승전을 전 세계 인구의 10% 이상이 시청하는 월드컵이었다. 

사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세계 축구의 변방 중에서도 변방인 카타르가 월드컵 개최국이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당시 경쟁자는 한국, 일본, 호주, 미국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돈독이 오를 대로 오른 제프 블라터 FIFA 회장과 집행위원들은 카타르의 손을 들어주었다. 

FIFA는 1904년에 출범했는데 초기에는 몇몇 축구 애호국의 모임에 불과했다. 3대 회장이던 쥘 리메가 유럽과 남미 국가들이 자웅을 겨루는 제1회 월드컵을 우루과이에서 개최하면서 명실상부한 국제 스포츠 기구가 되었다. FIFA 월드컵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TV 중계가 본격화되면서다. 축구라는 원초적인 스포츠에 국가 대 국가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모두를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매스미디어에는 이만한 돈벌이 수단이 없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TV 중계권료, 광고료, 스폰서 비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FIFA는 돈방석에 앉았다. 

국가 이미지 업그레이드에는 월드컵만 한 것이 없다

월드컵 개최는 단순히 스포츠 경기를 치르는 것이 아니었다. 개최국의 대외적 이미지를 대폭 업그레이드했다. 경기장을 새로 짓고, 교통 인프라를 깔고, 숙박 및 각종 부대 시설을 만들면서 국가 재건의 역할도 했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함께 개최한 2002 월드컵을 떠올려보자.

비용은 많이 들지만 국가 이미지 제고 측면에는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개최 희망국이 갈수록 늘어났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문제는 개최국 선정이 극소수의 FIFA 집행위원을 통해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원래 개최국 선정은 144명의 회원이 있는 FIFA 평의회가 했다. 1964년에 각 대륙별 연맹 회장, 부회장으로 구성된 24명의 집행위원회에게 결정권이 이양된다. 이때부터 문제의 시작이었다. 

FIFA 집행위원 매수는 개최국이 되기 위한 지름길

4강 진출국이 확정된 가운데, 모로코가 아프리카 국가 중 처음으로 월드컵 4강에 올랐다./출처=FIFA
4강 진출국이 확정된 가운데, 모로코가 아프리카 국가 중 처음으로 월드컵 4강에 올랐다./출처=FIFA

24명의 과반인 13명의 표만 얻으면 되니 개최국 결정 투표에 참석하는 FIFA 집행위원을 돈으로 매수하려는 시도가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2010년에는 2018년, 2022년 양 대회 개최국을 한꺼번에 결정했다. 각각 4:1, 5:1의 경쟁이었는데 2018 월드컵은 러시아가 2022 월드컵은 카타르가 개최국이 되었다. 개최 희망국은 모두 장단점이 있어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후보자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도 러시아와 카타르가 결정된 것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의심이 많다.

러시아의 경우 개최권을 따낸 목적은 푸틴의 정권 안정이었고, 막대한 올리가르히 자금이 동원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카타르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산유국에서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세우고 정부 차원에서 천문학적 액수의 오일 머니를 투입했다. 목표가 분명한 만큼 반드시 개최국이 되어야 했고, 목표 달성을 위해 FIFA 집행위원을 뇌물로 매수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무리 뇌물을 먹어도 절대 손대지 못할 것 같았던 FIFA 집행위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운 것은 미국 FBI였다. 2010년에 있었던 개최국 선정 때 뇌물수수 혐의로 본부가 있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집행위원들을 체포했고 이 모든 스캔들의 정점에 있었던 제프 블라터 회장은 몇 달 가지 않아 불명예 퇴진했다. FIFA는 결국 211명의 회원이 있는 평의회에 개최국 결정권을 이관하게 된다.

카타르의 도박은 성공할 것인가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중동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도 플레이어 역할을 하고자 하는 카타르 집권 세력의 야심과 무엇보다 경제적 이윤을 우선시한 FIFA의 합작품이다. 카타르는 이번 월드컵 개최에 3000억 달러를 쓴 것으로 추산된다. 원화로 약 392조 원이다. 한편 FIFA가 거둘 예상 수익은 약 3조 원이다. 그간 월드컵 개최국이 지출하는 비용은 지속해서 증가했고 그에 비례해서 FIFA의 수익 또한 늘어났다. 그런데 카타르 월드컵은 주최국의 지출액과 FIFA 수익액 측면에서 역대 최고다. 국제무대에서 가진 돈에 걸맞은 외교적, 문화적 영향력을 얻고자 하는 카타르의 거대한 도박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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