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수도권 집중 현상이 지속되고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지역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인구가 줄면 인프라가 줄어들고, 남아있던 사람들도 지역을 떠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지원금을 지급하는 등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은 일회성에 불과해 지속가능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소멸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 취재팀은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소멸에 대응하고 있는 해외 사례를 연재해, 국내 실정에 맞는 지역소멸 대응 방법을 소개한다.

아침 기온이 8℃까지 내려가며 쌀쌀했던 지난 11월 15일, 일본 히로시마(広島)현의 조용한 산골 마을 진세키코겐(神石高原)정을 찾았다. 히가시히로시마(東広島)시의 숙소를 떠나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린 후에, 절정을 이룬 단풍 사이로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40분 정도 더 올라가니 넓은 공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진세키코겐 티어가르텐(神石高原ティアガルテン, 독일어로 '동물원'을 의미)이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현장은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축사를 관리하는 직원들로 분주했다. 해발 700여 미터 고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동물들과 어울리며 자연과 논다'는 컨셉을 내건 생태공원이다. 강아지와 뛰어놀고 염소에게 먹이를 주며 산림욕을 즐기다가, 유기농 채소로 만든 음식을 맛보고 통나무집에서 캠핑을 하며 밤에는 별을 볼 수 있다.

피스윈즈재팬이 진세키고원에서 운영하는 유기견 보호소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 사진=정진영 취재총괄
피스윈즈재팬이 진세키고원에서 운영하는 유기견 보호소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 사진=정진영 취재총괄

언뜻 아이가 있는 부모들이 좋아할만한 평범한 관광지 같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무분별한 유기견 살처분을 줄이며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관광객을 유치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소멸위기 지역을 살리고 ▲지역정부가 세수를 확보해 각종 대민 정책을 펼치도록 돕는 등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회혁신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혁신의 중심에 일본이 지난 2008년부터 시행한 고향납세(ふるさと納税)제도가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고향납세는 시민들이 관심 있는 지역에 기부를 하면 세액 공제를 통해 이를 대부분 돌려받는 방식으로 지역을 활성화시키는 제도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모델을 참고해서 2023년 1월부터 고향사랑기부제를 시작할 예정이다.

산골의 소멸위기지역, 사회혁신가를 만나고 되살아나다

정(町)은 우리나라 기준으로 읍에 해당하는 일본의 행정구역이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인구 5000명 이상을 요건으로 삼는다. 이보다 작으면 촌(村)이다. 진세키코겐정에는 12월 1일 현재 3284세대 8283명이 살고 있다. 2000년 1만2512명이었던 인구가 매년 줄어들고 평균 연령도 60세에 이르는 소멸위기지역이다.(출처: 일본 총무성)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몇년새 진세키코겐정의 인구 감소세가 완만하다는 것이다. 2015년 9217명에서 2020년 8250명으로 인구가 줄어들었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는 8283명으로 비슷하다. 이는 비영리단체(NPO) 피스윈즈재팬(Peace Winds Japan)이 진세키코겐에서 펼쳐온 '유기견 살처분 제로' 프로젝트, 일명 피스완코재팬(Peace Wanko Japan: 완코는 강아지를 귀엽게 부르는 일본어)를 본격화한 시기와 일치한다.

피스윈즈재팬은 재해·분쟁·빈곤 등의 문제 해결을 목표로 1996년 설립한 NPO법인이다. 주로 해외에서 구호 활동을 많이 해왔지만, 2010년 오니시 겐스케(大西 健丞) 대표가 히로시마현의 동물보호소 가스실에서 살처분되는 유기견의 현실에 충격을 받고 문제 해결에 나서면서 진세키코겐과도 인연을 맺었다. 피스윈즈재팬은 산중턱 넓은 공터에 유기견보호소를 세우고 살처분 위기의 유기견을 구조하고 치료와 교육을 거쳐 재난구호견으로 활용하거나 입양을 보낸다.

도살되기 직전 극적으로 구조돼 훈련을 받은 유메노스케(夢之丞)가 2014년 히로시마 산사태를 시작으로 네팔 지진, 대만 태풍 재해 현장 등에서 많은 생명을 구한 구호견이 된 이야기는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에도 소개되는 등 유명세를 떨쳤다.

유기견을 씻기는 모습 / 제공=피스윈즈재팬
유기견을 씻기는 모습 / 제공=피스윈즈재팬

유메노스케의 활약 이후 피스윈즈재팬의 유기견 보호 활동은 더욱 확장했다. 현재 진세키코겐을 비롯해 일본 전역에 8개의 보호소 및 양도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12년부터 지난 11월까지 보호해온 7500여마리의 개 가운데 3578마리를 입양시켰다. 2440일(6년 7개월)동안 히로시마현의 개 살처분 횟수는 제로(0)를 기록중이다. 눈부신 성과다.

피스윈즈재팬은 유기견 보호라는 목적 달성에 그치지 않고 진세키코겐 보호소 옆에 티어가르텐이라는 이름의 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지역 활성화에도 나섰다.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반려견을 데리고 와서 뛰어놀고 자연을 체험하는 관광지가 되면서, 고령인구 중심으로 조용하던 동네가 사람들로 북적였다. 피스완코 사업부에 100여명의 청년이 근무하는 등 지역의 고용창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쿠니타 히로시(國田 博史) 피스윈즈재팬 국내사업부장은 "유기견 보호라는 의미를 갖춘 공간이기 때문에 일반 관광객은 물론이고 연예인과 정치인들의 방문도 크게 늘었다"며 "일본에도 인구가 줄어드는 소멸위기지역이 많지만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내면 지역을 다시 활성화시킬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세키고원 티어가르텐 생태공원은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 제공=피스윈즈재팬
진세키코겐 티어가르텐 생태공원은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 제공=피스윈즈재팬

사업 초기 든든한 버팀목 된 고향납세제도

피스완코의 시작은 힘들었다. 특히, 구조한 유기견의 숫자가 초기자금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많아 어려움을 겪었다. 오니시 대표는 "은행과 지인 등에게 15억엔(약 150억원)을 빌려서 시설과 인력을 갖춰나갔다"며 "유기견을 위해서 이만큼의 돈을 투자한다는게 쉽지 않았음에도 지인들이 많이 도와줘서 책임감을 더 느끼고 성공할 수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유기견을 돌보고 훈련시키려면 공간과 인력 등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한 마리당 연간 약 46만엔(약 441만원)이 소요된다. 그외에 시설 유지비, 인건비 등을 모두 포함하면 2021년 기준으로 피스완코 프로젝트가 지출하는 연간 비용은 약 11억 7200만엔, 우리 돈으로 113억원에 이른다.

오니시 대표는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2013년 10월 피스윈즈재팬 본사를 진세키코겐으로 옮기고 본사의 자금을 피스완코 프로젝트에 끌어다쓰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워낙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보니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어려웠던 사업이 탄력을 받은건 2014년 부터 고향납세제도를 활용하면서다. 내년 1월 시행하는 우리나라의 고향사랑기부제와 일본의 고향납세제도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지역에 기부하고 그곳의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받는 단순한 방식의 우리나라 제도와 달리, 일본에서는 답례품을 받는 방식 외에 해당 지역에서 진행하는 문제 해결 프로젝트에 기부하는 방식도 선택할 수 있다. 단순히 어떤 지역을 도와주려고 기부하는 것보다 '유기견 보호' 같은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기부할 때 사람들은 더 애정과 관심을 쏟게 된다.

실제로 피스완코는 2015년에 고향납세교부금으로만 3억 3900만엔(32억여원)을 자금으로 확보한걸 시작으로 매년 4억~5억엔에 이르는 자금을 고향납세교부금으로 충당해왔다. 2022년 현재 시점에서도 고향납세교부금은 전체 예산의 40%를 차지한다.

고향납세제도를 통해 확보한 재원이 탄탄하게 버텨주는 동안 피스윈즈재팬은 유기견 보호 사업의 성과를 내면서 그 의미와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데 주력했고, 뜻에 공감하는 월정액 회원의 숫자가 점차 늘어났다. 2021년에는 드디어 월정액 회원의 기부금 액수가 고향납세교부금 액수를 넘어서며 사업이 크게 안정화됐다. 

쿠니타 부장은 "이제 전국에 5만2000명의 월정액 회원을 확보하면서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게 됐다"며 "하지만, 사업 초기에 고향납세제도가 없었다면 정말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스완코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확보한 수입의 연도별 구성 그래프 / 제공=피스윈즈재팬
피스완코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확보한 수입의 연도별 비중 구성 / 제공=피스윈즈재팬

물론,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실행되지 않으면 소용 없다. 공무원들은 태생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펼치는데 부담을 느낀다. 쿠니타 부장은 "고향납세제도를 활용해 사업을 하겠다고 진세키코겐정 청장에게 요청했을 때 처음에는 반응이 싸늘했다"며 "다행히 일본 사가(佐賀)현에서 고향납세제도를 프로젝트에 활용해 성공한 사례가 있어서 잘 설명했고, 지역의 고령화에 대해 고민하던 청장이 곧바로 조례를 개정하고 틀을 갖춰줬다"고 말했다. 현재 진세키코겐정이 거두는 고향납세의 약 90%는 피스윈즈재팬과 협업에서 나온다.

쿠니타 부장은 "우리가 시작할 때 다른 지역 사례가 크게 도움이 됐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지역에서 궁금해하면 최대한 알려준다"고 말했다.

피스윈즈재팬이 진세키코겐정 정부와 MOU를 맺는 모습. 왼쪽에서 두 번째가 오니시 겐스케 대표 / 제공=피스윈즈재팬
피스윈즈재팬이 진세키코겐정 정부와 MOU를 맺는 모습. 왼쪽에서 두 번째가 오니시 겐스케 대표 / 제공=피스윈즈재팬

민간이 기획·운영하고 공공이 지원한다... 일본의 고향납세 성공방정식

시행 14년째를 맞이한 일본의 고향납세제도는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고향세 플랫폼 외에도 라쿠텐후루사토납세(楽天ふるさと納税)와 후루사토초이스(ふるさとチョイス)처럼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크게 활성화됐다. 민간 사업자의 마케팅 전략이 빛을 발한 것이다.

특히, 진세키코겐정과 피스윈즈재팬이 협업한 사례처럼 지역에서 펼쳐지는 문제 해결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더욱 발전해왔다. 기부하고 답례품을 받는 단편적인 방식을 넘어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기여하도록 함으로써 시민들의 참여율은 크게 높아졌다.

출처=후루사토초이스 페이지 캡쳐 및 편집
후루사토초이스에서는 2000개 가까운 지역 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만날 수 있다. / 출처=웹사이트 캡쳐 및 편집

2012년 시작한 후루사토초이스에는 지금까지 1940개 프로젝트가 개설됐고, 참여한 지방자치단체는 550개, 누적 기부실적은 약 130억엔(1240억원)에 이른다(12월 6일 기준). 기부하고 답례품을 받는 평범한 형태의 고향납세서비스 참여 지자체까지 모두 포함했을 때 1650개인 것을 감안하면, 후루사토초이스에 입점한 지자체 3곳 중의 1곳은 프로젝트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고향납세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자금조달 방식을 정부크라우드펀딩(GCF)이라고 부른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 후투사토초이스에서 진행했던 피스완코 프로젝트 펀딩 결과들. 각각의 펀딩은 짧게는 81일부터 길게는 453일까지 진행했으며 최다모금액은 8억3800만엔(80억여원)에 이른다. / 출처=후루사토초이스 웹사이트 편집
2014년부터 최근까지 후투사토초이스에서 진행했던 피스완코 프로젝트 펀딩 결과들. 각각의 펀딩은 짧게는 81일부터 길게는 453일까지 진행했으며 최다모금액은 8억3800만엔(80억여원)에 이른다. / 출처=후루사토초이스 웹사이트 편집

후루사토초이스에는 꾸준히 새로운 프로젝트가 등록되며 인기 프로젝트는 목표치의 두 배를 달성하는 경우도 많다. 피스윈즈재팬의 피스완코 프로젝트 역시 후루사토초이스에서 한 번에 최대 8억3800만엔(약 80억원)의 모금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후루사토초이스를 운영하는 트러스트뱅크의 카와무라 켄이치(川村 憲一)  대표는 지난 11월 29일 한국에서 개최된 '2022 고향사랑기부제 국제포럼'에 참석해 “답례품을 이용한 고향납세도 중요하지만 GCF의 사용처를 명확히 밝혀 기부를 유도하는 게 의의가 매우 크다"며 "이 방식을 어떻게 더 확산해 나가느냐가 향후 과제”라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쿠니타 히로시(國田 博史) 피스윈즈재팬 국내사업부장

쿠니타 히로시 피스윈즈재팬 국내사업부장
쿠니타 히로시 피스윈즈재팬 국내사업부장 / 사진=정진영 취재총괄

Q. 피스완코 프로젝트가 성공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인가.

아직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분명 성공으로 가는 과정에는 있다. '유기견 살처분을 줄인다'는 목표를 설정하는 대신 처음부터 '유기견 살처분 제로'를 천명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1000일 만에 살처분을 없애겠다"고 발표하자 무리한 목표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결국 이러한 원대한 목표 설정과 실행이 고향납세를 통한 기부와 월정액 회원 증가로 이어졌다고 본다.

Q. 피스완코는 유기견 문제 해결 솔루션이지만, 동시에 지역 활성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거둔 성과를 말해달라.

우선, 지역 활성화 관점에서 봐라봐줘서 정말 고맙다. 진세키코겐 지역의 인구는 여전히 줄어드는 추세이고 고령화율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지역의 이름조차 몰랐던 사람들이 개를 인연으로 방문하는 일이 많아졌다. 오늘처럼 미디어의 취재가 이루어지는 것도 지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는걸 보여준다.

무엇보다 현재 피스완코 프로젝트에는 100여명의 청년들이 근무하고 있다. 진세키코겐에서 길을 가다가 젊은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피스윈즈재팬 직원이라고 보면 된다. 청년들이 동네에서 생활하고 지역 활동에도 참여하면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게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Q. 민간이 지역 정부와 협업을 잘 하는 방법은?

무엇보다 진심을 다하는 것이다. 지역에 공헌한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곳에서 시작한 단체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피스완코 사업 초기 본사를 도쿄에서 이곳으로 옮긴 이유도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내부 구성원들이 지역 공헌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Q. 피스윈즈재팬에서 일하는 장점은 무엇인가.

일본의 많은 단체들이 보통 하나의 분야에 전문적으로 임하는 것과 달리 피스윈즈재팬은 틀에 갖히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한다.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보다 많은 지원자와 기부자를 획득할 수 있다. 또 '일단 시작해보자'는 식의 도전 정신이 매우 중요하게 자리잡았다. 피스완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혁신이 일어난다. 피스윈즈재팬의 아이덴티티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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