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5일, LH 오리 사옥 대강당의 좌석이 빈틈없이 채워졌다. 자리를 채운 인파는 모두 'LH 테마형 임대주택(이하 테마형 임대주택)'의 설명회를 듣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LH와 국토부는 지난해 시범사업을 거치며 본격적인 준비가 끝났다는 인상을 주는 듯했고, 초반 흥행 차원에서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LH는 테마형 임대주택에 대해 ‘신축 매입약정방식을 활용한 테마가 있는 임대주택으로 저렴한 임대료, 장기간의 안정적 거주라는 공공임대의 장점과 다양한 유형의 주거 서비스, 입주자 맞춤형 주거 및 공유공간이라는 민간주택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공공임대주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난 8월 16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매년 2000호의 공급이 예정돼있다. 시세 30%~50%라는 낮은 임대료가 핵심인 ‘매입임대주택’이지만, 천편일률적인 설계, 부실한 시공 및 운영관리는 매번 골칫거리였다. 이러한 한계를 사회적경제 주체를 참여시킴으로써 장점은 유지하고 단점은 보완하고자 새롭게 시도하는 것이다.

테마형 임대주택의 가능성은 시범사업의 주요 테마였던 ‘발달 장애인 지원주택’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난 9월 8일, 발달장애인 지원주택을 전문으로 운영하는 복지법인 ‘프리웰’과 LH 사이에 매입약정이 성사됐다. 탈시설의 필요성이 한국 사회에서 지속해서 제기되면서 이에 맞게 복지 정책이 정비되고 있지만 ‘집’이라는 장벽에 막혀 최종 성과에서는 난항을 겪고 있었다. 기존의 매입임대주택은 장애인이 입주하기 어려운 설계상의 한계가 존재했으며 주택 임대인인 LH는 탈시설에 특화된 세입자 관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시 지원주택을 운영하며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던 프리웰이 대표 사업자로 참여하며 수요자에 특화된 설계와 운영 프로그램을 매입임대주택에 접목할 수 있었다. 답보상태였던 탈시설 정책의 새로운 활로가 뚫리면서 공공임대주택의 다채로운 색깔까지 더해진 것이다. 비단 발달 장애인 지원주택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가, 청년 창업, 연구자, 기후 대응, (시설)보호종료 청년, 지방소멸 등 사회적경제 주체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무궁무진하기에, 테마형 임대주택의 보여줄 확장성은 충분해 보였다.

다만 테마형 임대주택이 애초 취지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우선 매입약정가격의 리스크를 충분히 낮춰야 한다. 테마형 임대주택은 기존 매입임대주택과는 달리 커뮤니티 시설이 큰 규모로 포함되어 있으며 개별 세대의 설계도 입주자의 특성을 반영하다 보니 높은 단가를 요구할 수 밖에 없다. 사업비가 대폭 증가하는 데 비해 약정 금액 책정 방식은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손해를 감수하지 않고는 선뜻 사업에 뛰어들 수 없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연 2000호라는 목표가 현행 시스템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수익성은 차지하더라도 테마를 위해 추가된 비용의 원가라도 보전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상시로 운영되는 기존 매입임대주택 약정 프로세스와 달리, 테마형 임대주택은 공모 사업이기 때문에 특정 시간에 국한되어 3단계의 심사를 거쳐야만 한다. 부동산 시장의 빠른 시계를 고려했을 때, 토지 물색 이후 사업 약정까지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토지를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애써 설계까지 해서 공모사업에 도전했는데 토지확보에 실패한다면 그 매몰 비용도 상당하기에 사업 자체를 검토하지 않을 수 있다. 우수한 사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심사의 일부를 상시로 전환하여 토지를 확보해두고 나머지 과정의 속도감을 높여 매입약정까지의 도달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

기존 사업보다 훨씬 더 어려운 조건에서 더 우수한 결과를 내야 하는 모순이 테마형 임대주택의 성과를 낮추고 좋은 취지의 정책까지 무색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은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여러 시행착오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적어도 시범사업의 사이클이 종료되어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기도 하다. 다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번 기회에 LH라는 공기업이 기존의 틀에 대한 과감한 혁신을 통해 임대주택의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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