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짝사랑하다가 차인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너무나 절망적이고 슬픈 시간을 보내면서도 다시 기운을 내기 위한 조롱이랄까. 현 정부에 관한 이야기이다. 짝사랑의 대상은, 당연히 전 정부다. 정권을 잡은 뒤 하고 싶은 정책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세계적인 변동이나 경제 및 사회적인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전 정부 정책의 반대로만 달린다.

지난 정부 때 여성정책이 과도하게 강조되었다며 아무 대책 없이 여성가족부를 보건복지부 산하로 밀어 넣으려 하고, 일터에서 하루에 7명씩 여전히 산재 사망사고로 퇴근하지 못하더라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할 방법만 찾는다. 폭우로 인한 침수 때문에 반지하 세입자들이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임대주택은 곧 죽어도 못한다는 식이다. 최상위 국가권력이 제대로 된 철학 없이 ‘안티테제’로만 국정을 운영하니, 결국 새우 등 터지는 사람들은 일반 국민이자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150명이 넘는 사람이 거리에서 세상을 떠난 오늘날, 대체 무슨 대책을 들고나올지 무섭기만 하다.

아니나 다를까. 윤석열 정부는 첫 번째 예산안부터 끔찍한 행보를 보였다. 2023년 예산안에서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무려 27%, 5조 7000억원이 감액 편성되었다. 공공임대주택 축소를 통해 아낀 예산은 분양주택과 민간임대주택 지원에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세부적으로 보자면, 매입임대(융자) 예산은 44.3%(2조 5723억원), 전세임대(융자) 예산은 22.5%(1조 208억원)가 감액되었으며, 건설임대 역시 통합공공임대로 전환되는 유형까지 종합했을 때 약 8000억원이 감액될 것으로 보인다. 삭감 수준이 믿기지 않을 정도인지라, 주거권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모여 국회 앞에 ‘내놔라, 공공임대’라는 농성장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삭감 저지를 위한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이 지난 
공공임대주택 예산삭감 저지를 위한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이 지난 10월 국회 앞에서 공공임대주택 및 주거복지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사진=참여연대

농성 단체들이 예산 삭감의 근거를 요구하니, ‘문재인 정부 시절 과도하게 증액한 것을 다시 되돌렸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또 문재인 정부이다. 당시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증액된 직접적인 이유는 전 정권의 대단한 의지 때문이 아니라 공급 단가의 상승 때문이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속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고, 코로나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건축 자재 가격이 많게는 두 배까지 뛰었다. 10억원 정도로 지을 수 있던 주택 원가가 15억원으로 오른다면, 국민과 약속한 물량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자연스럽게 예산도 증액되어야 한다. 반대로 국회에서 27%의 삭감안이 통과된다면, 공공임대주택은 올해의 절반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이 시기에 분양주택과 민간임대주택 지원을 강조한다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배가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시장은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부추긴 금융 리스크는 가뜩이나 움츠리고 있던 건설 자금 유동성을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공공 자원 투입에 있어서 다시 없을 기회이기도 하다. 아무리 불황이더라도 돈은 일정 수준이라도 반드시 돌아야 하기에, 가격 리스크가 불확실한 민간 간의 거래보다는 공공과의 거래가 선호되는 경향을 보인다. 공공 입장에서는 높은 협상력을 가지고 민간과 수월하게 협의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자이언트 스텝을 밟고 국내는 부동산 거품이 꺼져가는 와중에 LTV 완화를 외친 지난 부동산 대책의 데자뷔가 느껴진다. 전 정권과 반대로 가겠다는 의지의 결과물이 아니라면, 내년 예산안의 취지와 근거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지경이다.

반지하 침수 참사가 발생한 지 불과 3개월이 지났다. 대한민국의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얼마 전의 약속을 벌써 잊지는 않았을 테다. 공공이 개입해서 반지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책의 유일한 수단인 공공임대주택의 자원은 반 토막을 냈다. 정치인의 위선이야 새삼스럽지 않지만, 국민적 트라우마는 여전하고 폭우가 들이치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끔찍한 현실을 두고 어떻게 방치 수준의 예산안을 책정할 수 있을지 백번 양보해도 납득할 수가 없다. 내년에는 부디 폭우가 내리지 않길 바라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절망스럽다.

마지막 희망은 국회 앞에 있는 세입자들의 농성이다. 쌀쌀해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이자 우리 사회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이들이 국회를 움직일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나가야 한다. 예산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한은 국회에 있기에, 윤석열 정부의 무책임한 예산안은 국회에서 면밀하게 검토되고 복구되어야 할 것이다. 당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국민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정치를 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제발 좀 보고 싶다.

더불어, 지금, 이 순간에도, 국회 앞에서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을 세입자들이, 수많은 시민의 응원 속에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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