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지원 정책이 성행하다 보니) 공무원들이 지역 청년을 창업가로만 봐요. 그렇게 창업을 위한 보조금을 받은 청년 중 다수가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예비사회적기업-사회적기업을 거쳐 그 플랫폼을 갖고 서울로 가죠. 결국 정착하는 청년은 없어요.”

지난 23일 온라인으로 열린 넥스트SE 첫 번째 정기세미나 현장. 첫 발제를 맡은 정재영 충남 홍성YMCA 사무총장은 지역의 청년 창업 지원 현실을 털어놨다. 이번 세미나는 다음세대 사회적경제를 고민하는 모임 '넥스트SE'와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이 공동으로 주최·주관하고, 두레생협연합회가 후원했다. 화상회의 플랫폼에는 약 20명의 참가자가 접속해 발표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의견을 나눴다.

‘사회적경제 리더에게서 찾는 미래 리더십: 원주와 홍성의 과거·현재로 보는 사회적경제의 미래’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날 행사에는 최혁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관리이사(전 청와대 사회적경제 비서관)도 발제했다. 최 이사는 “원주에도 자원은 많은데 다 분산돼있는 상황”이라며 “이 자원을 결합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공적 자금 목적으로 만든 공동체는 와해되기 마련

정재영 충남 홍성 YMCA 사무총장이 발표 중이다./사진=줌 화면 캡처
정재영 충남 홍성 YMCA 사무총장이 발표 중이다./사진=줌 화면 캡처

이날 두 발제자는 각 지역 내 사회적경제 사안도 짚었다. 홍성에는 협동조합과 유기농을 기본 정신으로 가진 ‘홍동마을’이 있다. 의료, 주거, 교육 등 다양한 사회서비스가 협동조합 형식으로 진행되며, 덕분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정 사무총장은 홍동마을이 유명세 때문에 ‘마을의 딜레마’를 겪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홍동이 너무 유명해져서 관광지가 돼버렸다”며 마을 주민들이 많이 지친다”고 설명했다. 방문의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졌다. “1박 2일 코스로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사업에 명분을 주는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고, 이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가버린다”며 “잘 된 것만 골라서 보고, 이게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재생산되는 환상’이라 표현했다.

특히 홍동마을 내 대안학교인 ‘풀무학교’는 외부에서 학생들이 너무 많이 와서 교육 취지가 퇴색될 위기에 처했다. 정 사무총장은 “유명한 대안학교라는 이미지가 생겨 외부 학생들이 많이 유입되는데, 이들은 졸업하면 그대로 마을 밖으로 나가버린다”고 털어놨다. 그는 “수능 안 본다고 면접 때 이야기해놓고서 3학년 때 수능을 본다. 또, 풀무공동체의 핵심사상과 정신보다 농사일을 훈련받는다”며 “공동체 정신을 배운 학생들을 마을에 정착시키려는 목적이 있는 학교인데, 교육이 목적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정착하는 청년이 없다보니 자신이 홍성YMCA에서 8년째 막내를 맡고 있다고도 말했다.

정 사무총장은 공동체에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것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공적 자금을 만들기 위해 공동체를 꾸리면 안 되고, 이미 꾸려진 공동체가 공적 자금을 받아야 부작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홍성군의 도시재생 뉴딜 사례를 들었다. 그는 “도시재생 사업을 위해 정부가 공사하고 도시가스를 공급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보상을 두고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며 “사업은 종료됐지만, 마을 사람들은 싸울 만큼 다 싸워서 얼굴도 못 보는 사이가 됐다”고 전했다. ‘신뢰’가 아닌 ‘자원’을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는 “사업이 끝난 날 홍성군은 해당 지역에 20층짜리 아파트 5동을 짓겠다고 발표했고, 마을 사람들은 토지 보상을 받게 돼 좋아하는 거로 마무리됐다”며 아쉬워했다.

홍성YMCA는 '공적 자금에 앞선 공동체의 모델'로 최근 지역 예술인들과 함께 '콩콩콩 종합예술협동조합'을 창립했다. 주민 주도로 원데이클래스, 공예, 강의 등 해보고 싶은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든 것. 정 사무총장은 "사회적 자본을 미리 쌓아놓고 공동체의 목적을 단단히 해놓으면 나중에 공적 자금이 아무리 많이 쏟아져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정 사무총장은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오래 일하려면 ‘느슨한 존버정신(버틴다는 뜻의 신조어)’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사회적경제라는 틀 안에서는 노력에 대한 결실이 늦게 맺어진다. 그러다 보니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지치고, 결국 남을 원망하게 된다"며 "나 자신을 지키면서 내가 하는 일이 맺는 결실을 보고 싶다면, ‘열심히’보다 ‘꾸준히’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섹터 간 융복합이 새로운 방향...정치 개입도 필요

최혁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관리이사는 내년 원주시장으로 출마한다./사진=줌 화면 캡처
최혁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관리이사는 내년 원주시장으로 출마한다./사진=줌 화면 캡처

최 이사는 1970년대에 원주에서 협동조합 정신으로 이어져 왔던 리더십이 그 이후에 재생산되는 데 실패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민주화 운동 등 한국사적 특수성을 이유로 들며 “원주도 민주화의 성지라 굉장히 심한 정치적인 탄압을 받았던 곳이라 사회적경제 리더들이 원주를 많이 떠나면서 후배 세대와 연결이 잘 안 됐고, 지역에서 양성된 주민 지도자가 지역에 남은 조직을 경영적으로 유지하는 선에서 20년 가까이 흘렀다”고 설명했다. “개별 조직은 종류도 많아지고 잘 성장했지만, 하나의 협력 체계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지는 못한 문제가 남아있다”고 전했다.

섹터를 넘나드는 협력과 융합은 현장을 키울 시대적 트렌드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청와대 사회적경제비서관 재직 시절, 국무조정실 출신 행정관을 중소벤처기업부로 보냈다”며 “중소기업 정책과 사회적경제 정책이 융합돼야 한다는 생각에 중기부에서 사회적경제 지원 정책을 만들어보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경제 섹터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뭉칠 게 아니라, 공공부문과 중소기업, 소상공인, 사회복지 섹터와 사업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현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최 이사는 사회적경제 영역에 있는 관계자들이 정치를 너무 과대하게 여기지 말고 삶의 일부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상임이사는 “정치는 합의·토론·논쟁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실현해볼 기회를 얻는 것”이라며 “필요한 법·제도를 제·개정하고, 강력한 견제 장치로서 역할 하려면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고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 이사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원주시장 출마를 준비 중이다.

정치를 문제 해결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고도 전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영업 제한 시간을 몇 시로 할 건지 정하는 일도 정치의 중요한 테마가 되는 시대”라며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 참가자들은 왜 자신이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공유했다. 강민수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장은 "사회적경제는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데 중요한 쓰임이 있다고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그는 "물론 현실의 사회적경제가 모두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며 "그래서 이렇게 계속 같이 토론하고 바꿔나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주리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사무총장은 "가치적인 이유도 있지만,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며 "특히 사람들과 함께 재밌게 일할 수 있고, 수평하게 맺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게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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