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웸블리로 간다! (We're going to Wembley!)”

축구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표현이다. 잉글랜드 축구협회 주관 FA컵 결승전이 매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웸블리에 간다’는 말은 곧 결승전에 진출했다는 말. 1923년 4월 첫 웸블리 결승전 이래 100년을 앞둔 전통이다. 잉글랜드만이 아니다. 각국 축구협회는 자국의 특정 경기장(저마다의 웸블리)에서 FA컵 결승전을 개최하고 있다. 베를린올림픽스타디움(독일), 보두앵국왕경기장(벨기에), 스타드프랑스(프랑스), 스타디오올림피코(이탈리아), 국립경기장(일본) 등을 사례로 들 수 있다.

해외국가와 달리 대한축구협회의 FA컵은 (대진에 따라) 매해 다른 장소에서 결승전을 개최 중이다. 올해는 전남드래곤즈와 대구FC가 결승전에 진출, 광양과 대구에서 한 번씩 경기할 예정이다. 우리는 한국의 웸블리, K웸블리가 없는 걸까? 앞서 언급한 해외 경기장은 모두 자국 수도인 런던(웸블리), 베를린, 브뤼셀, 파리, 로마, 도쿄에 있다. 왜 한국축구의 FA컵 결승전 운영은 해외와 다른지 확인하기 위해 서울의 운동장을 훑어봐야 한다. 맥락을 짚어보면, 용산구 효창운동장과 만나게 된다.

서울의 운동장 역사는 동대문운동장, 지금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자리에서 시작한다. 1925년 10월 15일 문을 열 당시 이름은 동궁전하어성혼기념 경성운동장(東宮殿下御成婚記念 京城運動場)이었다. 일제 침략전쟁의 주범 히로히토 일왕 결혼을 기념한다는 뜻이다. 남산에서 경성(서울)을 내려다보던 식민지배의 상징 조선신궁과 같은 날 문을 연다. 개장 첫 공식 행사로 조선신궁경기대회를 개최한 배경이다. 대한민국 서울(경성)의 운동장에서 열린 첫 번째 문화체육 행사였다. 이에 조선체육회(대한체육회)는 기간을 같이 해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제6회 전조선야구대회(1925년 10월 15~17일)를 개최한다. 운동장을 애써 외면한 것이다. 일제가 일왕결혼을 기념하며, 조선신궁 개장을 축하하며, 우리는 이를 못 본 체하며, 대한민국의 운동장 역사가 출발했다.

동대문에 이어 효창운동장이 지어졌다. 이번에는 독립운동가 묘역이 있는 효창원에 지어져 사회갈등을 야기했다. 효창원에는 삼의사 묘역, 임시정부요인 묘역, 백범 김구 묘역이 있다. 이 중 삼의사 묘역(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이 1946년 처음으로 조성됐고 이때 국가 차원의 장례도 해방 후 처음으로 열렸으니, 효창원은 식민지배를 벗어난 독립국가의 정통을 상징했다. 이런 장소에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1960 아시안컵) 개최를 위해 필요하다며 느닷없이 지어진 운동장. 일제잔재를 제때, 제대로 청산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축구가, 운동장이 독립운동가 묘역을 폄훼하는 도구로 악용된 굴곡진 역사가 효창운동장에 배어있다.

독립운동가 묘역 앞에 지어진 효창운동장. 일대가 휑하다. 1965년 전경./출처=심산김창숙기념관 홍소연 전시실장
독립운동가 묘역 앞에 지어진 효창운동장. 일대가 휑하다. 1965년 전경./출처=심산김창숙기념관 홍소연 전시실장

운동장에 얽힌 과도한 해석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도 영국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이 참전한 1차 세계대전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고 영국에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안겼다. 전쟁 이전 38년 치에 달하는 전비(戰費)가 단 4년 만에 쓰였고 미국에서 전쟁물자를 조달하는 데만 30억 달러를 집행했다. (애초 책정한 예산은 5000만 달러였다.) 전쟁이 끝난 후 뉴욕 월스트리트는 세계금융의 중심이던 런던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미국과 일본이 영국의 군사력을 따라잡으며 신흥 패권국가로 떠오른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주도의 패권질서에 파열음이 났다.

이런 와중에 영국 웸블리에서 대영제국 박람회가 열린다. 박람회를 개최하며 대영제국 경기장(British Empire Stadium)이 함께 지어졌다. 웸블리 스타디움의 첫 번째 이름이었다. 국왕 조지 5세가 경기장에서 박람회 개막연설을 가졌고 국왕의 연설은 처음으로 라디오를 통해 영국 전역에 중계됐다. “우리 아직 건재하다!”는 외침이랄까. 애초 박람회가 끝난 후 철거할 예정이었던 운동장은 존치해 오늘에 이른다. 축구성지, 나아가 문화체육의 성지로 꼽히는 웸블리 스타디움 탄생 이면에 전후 영국의 사회적 맥락이, 패권국가의 자존심이 배어있다.

대영제국 박람회가 열린 웸블리 일대. 박람회장 너머로 대영제국경기장(웸블리 스타디움)이 보인다./출처=위키미디어커먼스
대영제국 박람회가 열린 웸블리 일대. 박람회장 너머로 대영제국경기장(웸블리 스타디움)이 보인다./출처=위키미디어커먼스

제1회 FIFA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우루과이의 경기장 이름이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Estadio Centenario)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루과이 제헌 100주년(1930.7.18.)을 기념하며 지었기 때문이다. 센테나리오는 숫자 100을 뜻한다. 벨기에의 보두앵국왕경기장(헤이젤 스타디움) 역시 벨기에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지어졌다. 1964·2020 하계올림픽이 열린 도쿄의 국립경기장은 메이지일왕을 기리는 메이지신궁외원에 자리함으로써 국가적 상징성을 갖췄다. 이처럼 운동장 내지 경기장이라 부르는 문화체육시설 스타디움에는 각 나라의 맥락이 담기기 마련이다. 이중 국가적 상징성을 갖는 곳이 있고 여기서 각국 축구협회의 FA컵 결승전 개최가 가능하다.

물론 FA컵 결승전을 반드시 특정 경기장에서 단판으로 개최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토너먼트 대회 특성상 위상강화, 흥행 등에 있어 단판개최가 가지는 이점이 크다. 도시국가의 역사가 길어 국가보다 연고도시에 더 강한 정체성을 가지는 이탈리아 역시 2008년부터 결승전 장소를 로마로 못 박은 바 있다.

해서 대한축구협회의 FA컵 결승전 운영이 석연치 않다. 한국은 전 국민이 거리응원을 펼칠 만큼 축구에 국가 정체성을 크게 투영하는 사회 아닌가. 이런 축구토양을 가진 한국에서 FA컵 결승전을 개최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K웸블리가 없다는 말은, 지금의 운동장 현황 및 맥락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를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올림픽은 잠실, 월드컵은 상암’이라는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선진국을 우러러만 보다 개최한 국제대회 기억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일까? 우리 사회는 으레 ‘올림픽은 잠실, 월드컵은 상암’이라며 국제대회와 운동장을 동일시한다. 하지만 런던, 로마, 베를린, 파리에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모두 개최한 운동장이 있다. 국제대회는 운동장에서 가지는 잠깐의 경험일 뿐 운동장의 본질이 될 수 없고 국가적 상징성을 담보하지도 못한다. 올림픽스타디움이, 월드컵스타디움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상암과 잠실은 매머드급 국제대회를 개최한 이력이 있는, 마포구와 송파구에 신도시를 조성하며 지은 로컬 경기장일 뿐이다.

올 9월 1일 개통한 월드컵대교. 농구, 사격, 럭비 등 다른 종목도 월드컵 대회가 있지만 우리사회는 월드컵을 곧 축구대회로 인식한다. 다리 이름에도 사회의 고정관념이 반영돼 있다. 지금 방식이라면 FIFA 월드컵 대교라 해야 옳다./출처=서울시
올 9월 1일 개통한 월드컵대교. 농구, 사격, 럭비 등 다른 종목도 월드컵 대회가 있지만 우리사회는 월드컵을 곧 축구대회로 인식한다. 다리 이름에도 사회의 고정관념이 반영돼 있다. 지금 방식이라면 FIFA 월드컵 대교라 해야 옳다./출처=서울시

하계 올림픽과 FIFA 월드컵을 모두 개최한 유일한 아시아 도시, 세계적 문화도시 서울이 있음에도 FA컵 결승전을 해외처럼 개최하지 못하는 이유가, 축구에 어느 종목보다 국가적 정체성을 많이 투영하는 대한민국이 FA컵 결승전을 해외처럼 개최하지 못하는 이유가, 용산구 효창원에서 60년 넘게 이어져 온 ‘효창운동장 입지’ 문제에 있다. 

그러므로 축구(1960 아시안컵)와 운동장이 악용된 굴곡진 역사를 ‘발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때, 한국축구도 K웸블리를 가질 수 있다. 효창원의 김구,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 등은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힐 정도로 상징성이 크지 않은가. 이들의 묘역에 얽힌 사회갈등을 완전히 매듭짓는 운동장이 국가적 상징성을 갖지 못하면, 어느 운동장이 상징성을 가질 수 있을까?

1925년 동대문, 1940년대 전쟁기(일제침략전쟁), 1960년 효창, 1984년 잠실, 2001년 상암. 대한민국 서울의 운동장은 매 짝수 년대 마다 지어진 독특한 이력이 있다. 짝수 년대가 정말로 운동장 건축주기라면, 이번 2020년대는 다시 맞이한 운동장 건축주기다. 현재 잠실운동장과 효창운동장 재건축 논의가 각각 진행 중이다.

우리는 ‘올림픽은 잠실, 월드컵은 상암’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할 수 있을 것인가. ‘효창운동장 입지’라는 60년 묵은 사회갈등을 발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해서 한국축구도 해외처럼 국가적 상징성을 갖는 K웸블리를 가져볼 수 있을 것인가. 2020년대 건축주기의 지금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는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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