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히 불순한 의도가 담겨있었다. "장애인을 고용하면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것이 많다기에 인건비 좀 아껴볼 생각도 있었죠." 처음애 배준혁 대표의 솔직한 고백이다.

처음애는 100% 나무를 원료로 친환경 포장 완충제 ‘우드쵸핑(wood chopping)’을 생산하는 소셜벤처다. 3년이 지난 지금 그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장애인 채용이 단지 남 보기에 ‘선의’로 비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일명 뽁뽁이라 불리는 에어캡을 대체할 친환경 포장완충제 우드쵸핑

직원의 숫자가 그 말을 입증한다. 직원 7명 가운데 5명이 장애인 근로자다. 그것도 장애인들 가운데 가장 취업이 어렵다는 발달장애인들이다.

“쉽진 않았죠. 다 가르쳤다고 생각했는데 긴 연휴를 끝내고 출근하면 다시 처음 상태로 돌아가곤 해요. 발달 장애인 직원들에게 교육이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함께 부대끼다 보니 그들만의 강점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새활용 플라자 에서 진행한 체험교실에서 배준혁 처음애 대표를 만났다.

 

 

“일반인들 보다 교육 시간이 더 걸리고 힘이 드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일단 학습이 되면 한 눈 팔지 않고 잘해 냅니다. 대부분 술, 담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근태도 좋고 무엇보다 마음이 순수합니다.

지금 그의 생각은 “장애의 정도에 따라 적합한 일을 찾아주면 얼마든지 일반인 못지않은, 어떤 면에선 그 이상의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로 바뀌었다.

2014년 배 대표는 ‘구로여성회’의 요청으로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목공예 수업을 진행했다. ‘참 힘들겠다’라는 우려와 달리 장애인들은 집중력이 높고 잘 따라와 줬다. 그중 유달리 한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오리기 수업 시간 현장

“선생님, 이것 팔면 얼마에요?”

당시 18살이었던 박현민(가명) 씨가 그에게 물었다.

이건 파는 게 아니지만 네가 원한다면 함께 일해서 돈을 벌 수 있어.

그리고 1년 뒤, 바리스타가 꿈이라던 현민 씨는 여러 곳을 전전하다 2015년 배 대표를 찾아왔다. 이곳에서 박 씨는 목재를 나르고 기계를 작동하며 완성된 우드쵸핑을 박스에 담는 일을 한다.

배 대표는 “자동화 설비가 돼 있어 바리스타보다 더 안전한 근무 환경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오지랖 또한 넓다. 거래처를 다니며 장애인 채용의 장점을 열심히 홍보했고 제재소 2곳에서 그를 믿고 최근 장애인 2명을 채용했다.

처음애와 함께 하는 사람들. 직원 7명 가운데 5명이 발달장애인이다.

창업 3년 차. 그는 “장애인 근로자들의 팍팍했던 삶에 조금씩 변화가 생길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근무 3년 차가 된 현민 씨의 한 달 월급은 세후 180만 원이다.

“그 친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돈벌이에 관심이 많았어요. 부모님도 지적장애가 있다 보니 형편이 어려웠죠. 단칸방에 세 식구가 살면서 공동 화장실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주거 환경이 열악했으니까요. ”

배 대표는 그를 위해 주택청약통장 만드는 법을 가르쳐줬다. 함께 가서 만들면 일사천리겠지만 일부러 정보만 제공해주고 스스로 하게끔 했다. 지금 그의 월급통장에는 2000여 만 원이란 숫자가 찍혀있다.

또 다른 직원 한경호(가명 24)씨는 자신이 좋아했지만 가정 형편상 그만두었던 태권도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서 입사 당시 뚱뚱했던 몸매가 13kg이나 빠져 홀쭉해졌다. 배 대표는 “그렇게 몸이 좋아질 줄 알았더라면 전후 사진이라도 찍어 놓을 걸 그랬다”며 웃었다.

배 대표는 2011년 통신 관련 사업을 하다 경영난으로 회생불능 상태를 겪었다. 술로 화를 달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편백나무가 스트레스 해소와 힐링 효과가 높다는 광고를 보곤 대뜸 생각했다.

 

“나도 편백나무를 만지작거리면 상처가 치유되려나..”

그는 목공예를 배우며 마음의 응어리를 풀었고 조교가 돼 궂은 일도 마다 않고 일했다. 어느 날 그는 쓰레기통을 비우다 목공예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에 눈이 갔다.

 

 

마치 국수 가락처럼 긴 것이 제 눈에는 참 예쁘게 보였어요. 어떻게 하면 이런 모양이 나올까 연구를 했고 상품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우드쵸핑의 원료가 되는 피죽

처음애의 대표 상품인 포장 완충재 우드쵸핑은 이렇게 탄생했다. 우드쵸핑의 원료는 피죽이다. 피죽은 통나무 표면에서 잘라낸 널조각을 말한다. 겨울철엔 땔감으로 사용되고 이를 파쇄해 본드를 섞어 만든 것이 가구 소재인 MDF다.

우드쵸핑은 환경에 유해한 일명 ‘뽁뽁이’라 불리는 에어캡을 대체할 수 있는 포장 완충재다. 100% 나무로 만들어져 자연친화적이다. 특히 몸에 좋은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편백나무로만 만들었다. 벌집 구조를 가져 에어캡보다 19%나 높은 완충효과가 있는 것으로 한 실험 결과 드러났다.

 

100% 나무로 만들어진 우드쵸핑은 인테리어와 선물 포장에 재활용되고 버려지더라도 쉽게 분해된다.

두께도 0.01.mm로 얇아 토양에서 빨리 썩는다. 화분에 깔아 인테리어 효과도 누리고 보관했다가 선물 포장에 재활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월평균 20피트 컨테이너 1대 분량을 생산하는데 거의 전량을 중국에 수출합니다.”

배 대표는 사회적기업가 육성과정 6기로 선정되면서 사회연대은행과 LG 소셜캠퍼스의 도움으로 자동화 설비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장애인들을 채용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처음애는 서울새활용플라자 4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공장의 주소지는 김포다. 구로에 거주하는 배 대표는 매일 자신의 차량으로 같은 구에 사는 장애인 3명의 출퇴근을 책임진다.

 

 

“ 제 목표는 하루빨리 서울 인근에 땅을 사서 공장을 짓고 기숙사를 마련해 보다 많은 장애인들을 채용하는 겁니다. 적어도 제가 몸담고 있는 이 직종에서는 장애인들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으니까요.”

처음애는 그 꿈에 다가서기 위해 우드쵸핑을 비롯해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친환경 원목 생활용품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원목 칫솔, 원목 장난감 그리고 치매 예방을 위한 헬스케어 퍼즐 등이다. 이를 위해 연마기술도 익혔다.

자투리 나무를 활용해 만든 원목 퍼즐

 

 

“용돈과 보호 차원에서 몇 십만 원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만들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을 가장 많이 고용하는 기업이 되고 싶어요.”

편백나무를 켜면서 심신을 달랬던 배 대표는 나무를 통해 또 한 번의 기적을 바라고 있다. 힘든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 누군가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진제공. 처음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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