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은 선동의 성격을 갖는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혐오표현 리포트’에 따르면 혐오표현은 혐오·폭력적 선동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표현이다. 선동은 물리적·구체적 폭력을 유도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에서 “혐오표현이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졌던 역사가 있다. 규제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또한 “혐오표현을 내버려두면 직접적인 학살·학대로 나아갈 것”이라 말했다.

박한희 변호사가 혐오표현의 양상과 해악에 대하 발표했다./출처=오픈넷.
박한희 변호사가 혐오표현의 양상과 해악에 대하 발표했다./출처=오픈넷.

지난 2013년에는 형법일부개정법률안, 2018년에는 혐오표현규제법안이 발의되며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가 논의됐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우려와 함께, 형사처벌과정을 거칠 경우 오히려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이 있었다. 박한희 변호사는 “만일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저런 혐오표현은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라고 언급했다. 

때문에 혐오표현의 선동을 막는 효과적 방법으로 ‘대항표현’이 거론된다. 대항표현은 혐오표현에 맞대응하는 발화를 뜻한다. 오픈넷과 진보네트워크센터는 24일 ‘혐오에 맞서는 대항표현’ 온라인 토론회를 열었다. 대항표현의 방식, 대항표현을 위한 효과적 전략과 선결조건 등이 발표됐다. 

집단적, 국가적 대항표현...'이것이 혐오'라는 문제제기 분명히해 

유민석 씨(서울시립대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는 대항표현을 개인·집단·국가 별로 분류했다. 개인적 대항표현에는 사실이 아닌 부분을 교정하거나 진정성에 호소하는 방법이 있다. 가령 “야이 바보, 멍청아”라는 표현에 “지난 시험에서 A+ 받았는데?”라고 하고, “니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라고 응수하는 식이다. 

그러나 개인적 대항표현은 혐오표현을 듣는 순간 말해야하기에 쉽지않다. 피해자에게 ‘전면에 나서 맞대응 하라’는 부담도 준다. 효과 역시 미미하다. 유민석 씨는 “혐오표현은 구조적 문제인데, 개인의 사적실천으로 해결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말했다.

유민석 씨는 집단적·국가적 대항표현의 효과가 더 크다고 설명한다. 집단적 대항표현은 장기간에 걸쳐 다수에 의해 이뤄지기에 ‘이것이 혐오’라는 문제제기를 분명히 할 수 있다. 성명서, 리플렛, 집회. 칼럼 등 다양한 형식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국가 중심 대항표현의 효과는 더 강력하다. 권위 있는 공직자가 나서서 대항표현을 말하면 피해자에게 ‘국가는 당신 편이다’라는 인식을 주기 때문이다. 유민석 박사는 “국가중심 대항표현은 혐오표현의 해악을 막고 시민사회의 대항표현이 갖는 한계를 최소화한다”고 밝혔다.

유민석씨가 대항표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웨비나에는 /출처=오픈넷
유민석씨가 대항표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웨비나에는 유민석씨(서울시립대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캐시버거 혐오표현 프로젝트 연구팀장, 박지현 랜덤웍스 테크 디렉터가 발표했다. /출처=오픈넷.

캐시버거(Cathy Burger) 혐오표현 프로젝트 연구 팀장 또한 사회적으로 ‘주류’라고 불려지는 계층이 대항표현을 말하면 전달력이 더 높아진다고 했다. 그는 케빈 멍거(Munger.K)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교수가 진행한 실험을 사례로 들었다. 연구자는 인종, 팔로워 수를 다르게 책정한 트위터 가계정 4개를 만들고, 인종비하적 트윗에 대항하는 답글을 달도록 했다. 가장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계정은 팔로워수가 많은 백인 남성 계정이었다. 캐시 버거 팀장은 “권위 있는 주류집단 속 개인이 대항표현을 말 할 때 제일 효과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항표현은 응원 메시지 심어 주는 것

혐오표현 포스팅에 ‘네가 틀렸다’는 대항만으로 당사자에게 망신을 주거나 반성을 이끌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캐시 버거 팀장은 “우리가 정보를 받아 들일 때 기존 앎과 반대되는 것은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항표현이 피해자의 상처를 위로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때 더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축구경기에서 유색인종 선수에게 바나나를 던지는 관행이 있었다. 이는 유색인종을 비인간화하는 행위다. 네이마르(Neymar), 다니엘 알베스(Daniel Alves)등 유명 축구선수는 바나나를 먹는 사진을 게재하는 방식으로 대항했다. 캠페인을 열어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미디어도 조명해 규모가 커졌다. 캠페인으로 인해 불특정 다수가 그 같은 행위가 ‘인종차별적 행위’임을 확인한 것이다. 캐시 버거 팀장은 “이런 대항표현은 혐오표현 당사자를 직접 겨냥하는 대신 인종차별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 

네이마르와 다니엘 알베스가 점화한 대항표현 캠페인./출처=오픈넷.
네이마르와 다니엘 알베스가 점화한 대항표현 캠페인./출처=오픈넷.

"차별금지법 제정 및 교육, 홍보 동반돼야"

혐오표현의 표적이 되는 소수자는 사회의 중심 세력이 아니기에 대항표현을 말해도 들리지 않는다. 박한희 변호사는 “때문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며 “무엇이 차별인지에 대한 법적 정의가 있다면 대항표현은 더 많이 발화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차별금지법은 국가가 더 이상 차별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법 제정 이외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본 외무성은 재일 조선인에 대한 혐오표현을 해결하기 위해 ‘용서하지 않는다’는 웹 페이지를 운영한다. 박한희 변호사는 “이렇게 국가가 혐오표현에 직접 개입하거나 혐오표현의 해악을 알리는 교육, 홍보가 동반되면 소수자의 말이 들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 밝혔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