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앤씨재단의 '너와 내가 만든 세상' 전시회 3층에 위치한 앵무새 형상.
티앤씨재단의 '너와 내가 만든 세상' 전시회 3층에 위치한 앵무새 형상.

장막을 걷으면 앵무새 얼굴이 나온다. 앵무새는 우리 얼굴이다. 차별과 혐오, 편견의 언어를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복제하는 우리 모습과 닮아서다. 복제의 결과는 제노사이드·홀로코스트 등 참혹한 비극이다. 

재단법인 티앤씨(T&C) 재단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오는 16일까지 혐오사회를 주제로 ‘너와 내가 만드는 세상’ 전시회를 연다. 재단이 진행하는 공감 프로젝트 ‘APoV’의 일환이다. 차별과 혐오를 형상화한 예술작품을 배치해 공감 없는 세상의 모습을 마주하고 비극적인 인류사를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전시는 3층부터 시작해 1층으로 내려오는 구조다. 3층은 ‘균열의 시작’, 2층은 ‘왜곡의 심연’ 1층은 ‘혐오의 파편’이란 주제로 구성됐다. 강애란, 권용주, 성립, 이용백, 최수진, 쿠와쿠보 료타 등 국내외 작가 6명이 참여했다. 

3층에 위치한 '소문의 벽' 복도.
3층에 위치한 '소문의 벽' 복도.
성립 작가의 '익명의 사람들'.
성립 작가의 '익명의 사람들'.

3층 균열의 시작은 혐오가 공동체를 어떻게 분리하는지 포착한다. 앵무새 형상을 지나면 ‘소문의 벽’ 복도를 통과한다. 역사속 권력집단·대중매체가 유포했던 가짜 뉴스와 편견을 수집해 벽으로 만들었다. 유리 너머를 들여다보면 문장 하나 하나를 볼 수 있다. 이후 이용백 작가의 ‘브로큰 미러’로 이어진다. 관람객을 비추는 거울에 총알이 박히고 이내 거울은 조각난다. 개인의 자아가 혐오발화에 노출돼 부서지는 현상을 표현했다. 2층 계단을 내려가기 이전엔 성립 작가의 ’익명의 사람들’이 있다. 공동체는 파괴됐고 개인은 고립된다. 성립 작가는 익명으로서만 존재하는 개인의 얼굴을 조명한다.

권용주 작가의 '굴뚝-사람들'.
권용주 작가의 '굴뚝-사람들'.

2층 왜곡의 심연은 혐오가 정착된 풍경을 담았다. ‘패닉부스’로 들어가면 인류사 속 테러와 전쟁, 제노사이드 영상이 반복해서 송출된다. 관객으로 하여금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고 싶냐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권용주 작가는 머리가 굴뚝이돼 연기를 내뿜는 사람, 찢어진 입을 공유하는 사람 등 일그러진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말하며 신체의 일부가 뒤틀리는 현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이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최수진 작가의 '벌레먹은 드로잉'.
최수진 작가의 '벌레먹은 드로잉'.
강애란 작가의 '숙고의 서재'
강애란 작가의 '숙고의 서재'

1층 혐오의 파편은 혐오가 휩쓸고 간 자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최수진 작가의 ‘벌레먹은 드로잉’은 벌레가 갉아먹어 곳곳에 구멍이 뚫린 사람 조형물이다. ‘-충’이란 언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우리는 사람을 벌레에 비유하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혐오표현의 사용이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새기는지 나타냈다. 강애란 작가의 ‘숙고의 서재’엔 열지 못하는 책이 가득하다. 관객들이 들춰볼 수는 없지만 관용으로 세상을 바꾸려했던 이들의 모습이 책 표지에 담겼다. 차별에 맞서 자기 삶을 투신한 이들을 보며 아직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티앤씨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관람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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