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넘어야 할 2가지 산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회적 가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 하나는 사회공헌 맥락에서 벗어나 비즈니스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19일 전라남도 남원시 산내면 '마을카페 토닥'에서 진행된 지리산 포럼 세션에서 서진석 행복나눔재단 그룹장은 기업들이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우리 기업을 얼마나 알리고, 차별화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창출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션은 '로컬과 사회적경제: 관계와 연결성에서 시작하는 로컬 기반 비즈니스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패널로는 서진석 행복나눔재단 그룹장,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사무처장,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 대표 등이 참석했다. 

올해 6회를 맞이하는 지리산포럼은 코로나19 사태를 감안해 오프라인 참가 규모를 줄이고 개최 시간과 장소를 분산했다. 17일 시작해 24일 끝난다. ‘로컬라이프’를 주제로 7개의 주제 섹션을 유튜브로 실시간 송출하고, 지리산 5개 지역(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에서 로컬섹션을 진행하며, 산내면에서 민주주의기술학교 특별섹션을 운영한다.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주최한다. 19일 세션은 전국사회적경제활성화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열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후원했다.

19일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서는 '로컬과 사회적경제'를 주제로 지리산포럼 주제 세션이 열렸다. 사진=바라봄 사진관
19일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서는 '로컬과 사회적경제'를 주제로 지리산포럼 주제 세션이 열렸다. 사진=바라봄 사진관

미션 위해 대통령과도 맞서는 '행동주의 기업' 

서진석 그룹장은 비즈니스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들을 ‘행동주의 기업(Activism Company)’으로 분류했다. 그는 해외에서 이를 가장 잘 실천하는 행동주의 기업으로 ▲닥터 브로노스 ▲러쉬 ▲파타고니아 3개사를 들었다. 이 기업들은 모두 사회적 가치 창출에 자사의 자원을 활용했다. 

닥터 브로노스는 친환경 유기농 스킨케어 제품의 대명사다. 서 그룹장은 이날 닥터 브로노스가 2011년부터 앞장섰던 GMO(유전자변형 농산물) 라벨 표시 의무화 운동을 예로 들었다. GMO 농산물 생산 1위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워싱턴 주 선거에 GMO 표시제가 투표 안건으로 상정됐을 때, 닥터 브로노스는 각종 NGO와 협력해 표시제 찬성 캠페인을 벌였다. 직접 제품 표면에 GMO 표시제에 찬성하는 내용을 써붙였다. 반대측에는 GMO를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몬산토, 펩시뿐 아니라, CSR 선두 기업이라고도 불리는 네슬레, 유니레버 등이 있었다. 선거 과정에서 대기업들이 반대측에 막대한 기부금을 던져 투표에서는 결국 졌지만, 닥터 브로노스는 여전히 이 문제에 맞서 싸우는 중이다. 

러쉬는 환경, 인권, 동물 3가지 분야에서 캠페인을 주재한다. 서 그룹장은 2008년 '관타나모 수감자 석방 캠페인'을 예로 들었다. 알 자지라 뉴스 카메라맨 사미 알 하지와 에티오피아에 거주 중인 영국인 반얌 모하메드는 관타나모 만 미군기지에 수감돼 고문과 학대를 받았다. 러쉬는 이 수용소 수감자들에게 법적 지원을 하는 영국 단체 '레프리브'에 기부하기 위해 '관타나모 정원'이라는 입욕제를 만들었다. 물에 녹으면 사미 알 하지와 반얌 모하메드의 사진, 수감 정보와 함께 레프리브 웹사이트를 적은 종이가 떠오르게 했다. 매장 직원들이 직접 석방을 위한 단식 투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미와 반얌은 각각 2008년, 2009년에 석방됐다. 

파타고니아는 자연 보호를 위해 대통령에도 맞섰다. 미국 유타 주 내 국립보호구역인 '베어스 이어스(Bears Ears)'의 지정 면적 축소를 계획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를 대상으로 2017년 행정명령 저지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광물 채굴, 벌목 확대, 서비스 산업 활성화 등을 위해 27개 보호구역 축소 검토를 지시했다. 파타고니아는 솔트레이크시티 매장에서 환경운동가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해제 반대 캠페인을 벌였지만, 정부는 베어스 이어스 지역에 대해 85%를 해제하기로 발표했다. 직후 파타고니아는 회사 홈페이지 화면에 "대통령이 당신의 땅을 훔쳤다(The President Stole Your Land)"라는 문구를 내세워 화제가 됐다. 이어 환경단체들과 함께 트럼프 정부를 대상으로 5건의 소송을 제기했으며, 3년이 지난 지금도 싸우는 중이다. 

서진석 행복나눔재단 그룹장. 사진=바라봄 사진관
서진석 행복나눔재단 그룹장. 사진=바라봄 사진관

서 그룹장은 우리나라에는 사회적 가치 중심의 시대가 열리지 않았다며, 이렇다 할 행동주의 기업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대부분의 기업들이 '사회적 가치 근육'보다 '사회공헌 근육'을 더 많이 사용한다"며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내 밥상 위 음식, 제값을 받았을까?"

힌수정 사무처장은 싸고 좋은 음식이 밥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당연시되는 불공정한 관행들을 설명했다. 한 사무처장은 "과거에는 커피, 카카오, 설탕 등은 모두 높은 계급에게만 제공되는 고급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지위와 상관없이 먹을 수 있어 식생활의 진보가 이뤄졌다"면서도 "고급 식단을 저렴하게 유지하기 위해 뒤에서는 불합리한 가격 조정, 노동력 착취 등 정당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식품 가격 체계를 지탱하는 '모래시계'도 소개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220만개의 농장이 있는데, 이 농장에서 나온 제품은 2만5천개의 식품가공 및 제조업체, 3만2500개의 도매업체를 거쳐 11만2600개의 소매업체를 지나야 3억명 이상의 소비자를 만날 수 있다.

한 사무처장은 "결국 월마트 등 소매업체가 매대에 어떤 상품을 올려놓느냐에 따라 소비가 결정되는 것"이라며 "소비의 주체가 소비자가 아닌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제품의 가격, 조건 등의 기준을 유통업체들이 쥐고 있는 현실에서 생산자들은 '가격 후려치기'와 노동력 착취에 직면한다. 

미국 먹거리체계의 '모래시계.' 사진=한수정 사무처장 발표 자료
미국 먹거리체계의 '모래시계.' 사진=한수정 사무처장 발표 자료

공정무역은 이 가치 사슬을 벗어난 형태다.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고, 올바른 환경에서 만든 커피를 팔자는 거다. 아름다운커피는 커피 생산지에서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할 리더를 양성하고, 이익을 지켜줄 협동조합을 만드는 등 정당한 거래를 위한 현지 역량을 키워준다.

한 사무처장은 "제품을 제값보다 싸게 들여오는 기업이 잘 하는 거라는 인식이 있는데, 사실은 제값을 주는 게 정상"이라며 "아름다운커피가 공정무역 회사 자체로 크는 것과 동시에 불공정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모으고, 농부들과 연대해 기존 관행을 무너뜨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사무처장. 사진=바라봄 사진관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사무처장. 사진=바라봄 사진관

지역 인구는 꼭 늘어야 하나요? 새로운 패러다임 '로컬리티' 

임경수 대표는 '지방소멸'이라는 표현에 문제제기를 했다. 지방이 소멸된다는 건 인구가 줄어 지방정부가 합병되는 걸 걱정하는 거고, 이는 지역을 도시와 대비해 개발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나왔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역 인구를 무조건 늘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경제 성장은 인구 증가에 기반했던 것"이라며 "이제는 성장주의 논리에서 벗어나, 지역의 다양성을 인정, 촉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새로운 지역발전의 기초로 '로컬리티'를 제안했다. '로컬리티'란 '삶의 터로서의 로컬(공간)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역사적 경험(시간)을 통해 만들어가는 다양한 관계성의 총체'를 의미한다.

임경주 협동조합 이장 대표. 사진=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
임경주 협동조합 이장 대표. 사진=바라봄 사진관

완주군 고산면에서 지역 공동체 만들기에 한창인 임 대표. 그는 코로나19 시기에 고산 주민들이 보여준 '로컬리티'를 소개했다. 등교 지연으로 급식이 불가했던 상황. 고산에서는 주민들이 지역 아이들을 위해 반찬을 만들어 140가구에 무상으로 지급했다. 완주 내 사회적경제조직들이 현금, 농산물 기부 등으로 참여했고, 완주시니어클럽에서 반찬을 만들었다. 이 반찬을 학부모들이 두 차례 손수 배달한 거다. 

"국가와 개인 사이에 공동체가 있다고 하죠. 이 일을 계기로 주민 한 분이 '우리 동네는 재난이 닥쳐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이를 가능케 하는 개념을 '로컬리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는 또한 "'로컬'을 행정구역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며 "로컬은 수도권과 그 외 지역을 비교하는 개념이 아니라, 이웃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의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수도권에도 로컬리티가 존재하고, 로컬리티가 존재하지 않는 수도권 외 지역도 있다는 것. 임 대표는 로컬리티를 퍼트리려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로컬리티를 강화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다른 지역과 연대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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