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기업이 성장하려면 투자가 필수입니다. 하지만 영세한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지요.?특히 이윤과 사회적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사회적 기업들이 그러합니다. 동작신용협동조합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 사회투자기금과 매칭해 복지, 환경,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과제를 풀어가는 기업들에게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쑥쑥 성장해 가는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마을기업들의 이야기를 이로운넷이 전합니다.

서울시 최초 장애인 주치의제를 도입한

함께걸음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장애인이 건강해야 모두가 건강할 수 있어요."



전주 한옥마을로 1박2일 여행을 떠난 함께걸음 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들

“우리는 모두 흥분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지요.”


강봉심 함께걸음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함께걸음) 상임 이사는 그날의 일을 상기된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2017년 4월. 함께걸음 장애인 조합원 29명을 포함해 50여 명이 전주한옥마을로 1박2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을 위해선 준비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전동버스, 중증 장애인을 밀착해서 도와줄 자원봉사자 그리고 침대가 있는 숙소 등입니다. 여행 경비 1000여만 원 중 300만 원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금에서 충당했고 나머지 700만 원은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모아주었지요.

떠나기 전 모두가 ‘힘들 거야’라고 했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었습니다. 해보니 ‘가능한 일’이었고 그래서 올해도 또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군요.

함께걸음은 보건복지부 인가 서울시 제1호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입니다. 노원구 상계로 1길. 핵심 상권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치과와 한의원 그리고 요양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원구 상계 1로에 위치한 마을 치과와 마을 한의원. 한 층에 나란히 붙어있다.

“ 아무리 돈이 없고 가난해도 장애인이 올 수 없는 곳에 거점을 만들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이곳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 강봉심 상임 이사


치과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출자한 조합원들의 명패가 빼곡히 붙어있습니다. 복도와 대기실, 진료실 의자 간격도 일반 병원에 비해 널찍합니다. 왜 그럴까요?

공간이 널찍해 휠체어로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 장애인들이 오려면 엘리베이터가 있고 턱이 없어야 합니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데 불편함이 없어야 하지요. 함께 한다는 건 배려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곧 비용과 연결되지만 우리의 사명이니까요.”


조합원은 총 1627세대. 이 가운데 150여 명 이상이 장애가 있는 조합원입니다. 의료진 역시 모두 조합원입니다. 진료가 끝나면 조합원으로서 회의도 참석하고 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엔간한 마음가짐 없이는 병행이 힘든 상황이지요. 개원 초기 때부터 4년째 일하고 있는 이소정 치위생사는 함께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 면접 과정에서 취지가 맘에 들었어요.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때론 환자를 돈 버는 수단으로 봐야 할 때가 있는데 이곳에선 그런 느낌이 덜해요. 인간 대 인간으로 의료윤리 부문에서 만족도가 높습니다.”


치과병원을 찾는 환자는 하루 평균 20여 명. 그중 절반이 비조합원일 정도로 지역에서 주민들이 안심하고 찾는 병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의료진들도 모두 조합원이다.

한의원은 치과 바로 옆에 붙어있습니다. 작업치료사 자격증을 동시에 보유한 한의사분이 진료를 보는 덕분에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지요.

마을 한의원 진료실

휠체어 생활을 하는 조합원 양혜련 씨는 무엇보다 이 병원의 장점으로 혼자 다닐 수 있다는 점을 듭니다.

양 씨가 혼자 힘으로 휠체어에서 내려 침대에 오르고 있다.

“ 이 병원의 침대는 높이가 낮아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휠체어에서 바로 침대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다른 병원들은 침대가 높아서 혼자서는 불가능하거든요. 선생님도 가족처럼 대해줘 편안하게 다닙니다.“


한약재는 최고 품질의 친환경 인증 약재를 생산하는 ‘옴니허브’ 한약재를 사용해 중금속이나 농약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습니다. 또 농민과 계약 재배한 국산 한약재를 우선 사용하고 한약재의 원산지를 투명하게 공개해 환자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함께걸음은 2년 전부터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산하의 9개 의료협동조합과 함께 장애인 주치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아이쿱생협의 씨앗기금이 기반이 됐지요. 현재 등록된 주치의 대상자 인원은 140여 명입니다. 진료과목은 한의원과 치과뿐이지만 개원 중인 조합원 의사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어요.

주치의 방문 진료 현장

“ 가정의학과 의사분이 자원봉사자로 협진이나 전화 상담을 해주고 때론 집으로 왕진도 갑니다. 지역에는 선한 마음을 가진 의사 분들이 많습니다. 조합 네트워크 안에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의사 3~4분이 도움을 청하면 달려와 주십니다.”


함께걸음은 주치의 제도 안에 단순한 질병 치료뿐 아니라 생활건강권, 정신적, 문화적인 것도 진료 범위에 포함시켰습니다.

“장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영화 보고 싶다’, ‘가족과 함께 여행 한번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런 행위들이 실은 건강을 지키는 범주에 다 들어가는 것이죠. 장애인은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나들이 가는 것도 환기가 되고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런 변화는 비단 장애인들에게서만 오는 건 아닙니다. ”

장애인과 어울려 친구 혹은 언니 동생처럼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 조합원들 중에는 장애인을 ‘떼쟁이’로 봤다고 하는 분도 있어요. 늘 달라고만 하는 사람들, 요구만 하는 사람들이란 뜻이죠. 하지만 이제 그들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고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인식의 변화가 온 거죠.”



동네에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건강해집니다.”


여성장애인들은 혼자 임대 아파트에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예전엔 아프면 전화할 때도 없었는데 요즘은 든든한 이웃이 생겼다고 좋아합니다.

서대문 안산자락길 등반에 함께 나선 조합원들

“ 장애인분들은 장애인들끼리만 어울리는 경우가 많아요. 아팠을 때 신체적으로 큰 도움을 주기가 어렵죠. 우리는 동네에서 아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건강해진다고 믿습니다. 눈에 보이는 병원도 의미가 있지만 함께 어울려 가며 얻게 되는 심리적 안정감도 중요합니다. 협동조합의 장점은 바로 다양한 사람들과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관계를 맺게 된다는 점입니다.”

함께걸음의 출발은 장애우권익연구소의 의료센터가 그 효시입니다. 25년 전부터 장애인중심재활사업이란 이름으로 뜻있는 의료인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중증 장애인들의 방문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의료진들은 봉사를 마치고 나면 뿌듯하고 보람을 느꼈는데 어느 순간 장애인분들에게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말벗을 해주고 필요한 업무를 도와주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산책을 해주는 그런 이웃과 서비스가 말이죠.

‘우리 좋자고 하는 활동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장애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다 당시 의료생협이란 형태의 협동조합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곤 숱한 어려움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 아무리 누적 적자가 많고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장애인을 포기하면 함께걸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의 이유가 장애인의 건강권 수호에 있기 때문에 그걸 버리면 우린 문을 닫아야 할 거예요. ”

함께걸음의 믿음은 ‘장애인이 건강한 조건이 되면 누구나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이 된다’ 는 겁니다. 강 이사는 그 근거로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들었습니다.

강봉심 함께걸음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상임 이사

“ 지금의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우리도 지하철을 타고 싶다’는 장애인들의 외침이 큰 몫을 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아스팔트 위에서 목청껏 소리쳤고 그때 다수의 일반인들은 침묵을 지켰지요. 하지만 보세요, 누가 혜택을 보는지요. 유모차를 끄는 엄마와 짐을 많이 든 일반 시민들 그리고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어르신들이 모두 이용합니다. 그 이야기는 장애인이 접근하기 편안하면 모든 사람들한테 좋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장애인의 건강권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강 이사에게 함께걸음은 첫 직장이었습니다. 월급을 못 받을 때도 많았고 가슴 아픈 시간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텨내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절 많이 가르쳐준 곳입니다. 이기적인 인간이었는데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아이 셋을 키우는 전업주부였는데 의료협동조합 취지와 방향에 매료당해 만나는 사람한테 푹 빠지고 관계를 맺으며 내 노후를 여기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바라는 노후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웠습니다.

“ 마을 요양원을 만들어 조합원이 조합원을 돌봐주고 장례식도 같이 치러주고 그런 걸 함께 하고 싶어요. 그런 꿈을 혼자 꾸지 않고 같이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특히 장애인분들은 더 힘들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여기서 말이죠. “

함께걸음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healthcoop.or.kr

글. 백선기 이로운넷 책임에디터

사진. 이우기(사진가)


이 콘텐츠는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사업의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