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세원(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사진 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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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출입구에서 가까운 위치의 1층, 볕이 잘 들고 넉넉한 공간, 새로 단장한 티가 나는 실내 인테리어와 설비, 말끔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 좌석마다 앉은 손님들….
‘언젠가 내 가게를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눈여겨 볼만한, 문 연지 한 달 남짓 된 식당이 하나 있다.
‘이런 식당 내려면 얼마나 들까? 지금처럼 돈 모아서는 어림도 없겠지?’
보통의 경우라면 이렇게 생각을 털어 버리고 주문이나 하겠지만, 이 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저도 이런 식당 할 수 있을까요?”하고 일단 물어보는 게 좋다.
“저는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고, 경험도 없어요”라고 말하면서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저도 얼마 전까지 그랬어요”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 서울 지하철 5호선 명일역 근처, ‘홈메이드 스타일 버거 전문점’을 표방하는 식당 ‘더 파이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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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연구·개발의 첫 결실, ‘더파이브’ 명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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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7개 브랜드, 400여개 가맹점을 가진 프랜차이즈 회사 ‘해피브릿지’가 3년여의 연구·개발과 1년간의 모델 점포(서울 건대점) 운영을 거쳐 지난 3월 18일 정식으로 문을 연 신규 브랜드 더 파이브 직영점이다.
더 파이브의 특징은 ‘노동자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데 적합하도록 메뉴부터 조리 매뉴얼, 업무 프로세스까지 모든 것이 맞춤 설계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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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일점의 경우, 현재 일하는 사람은 시간대에 따라 5~7명. 점장과 부점장, 주방 직원까지 3명은 해피브릿지 자회사인 (주)MCFC의 정직원이고 나머지는 시간제(아르바이트) 직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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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직영 후 노동자협동조합 소유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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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서는 본사 투자금이 회수돼야 하는데, 해피브릿지는 투자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설과 인테리어비는 2년간 영업 이익으로 회수하거나 감가상각 처리하고, 임대보증금과 권리금 등 보장성 투자금만 남긴 채로 협동조합에 넘긴다는 원칙을 세워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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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 식당 하나의 오픈 비용이 대략 3억 원이므로(명일점은 10%쯤 더 들었다), 현재의 직원들이 조합을 구성하면 2~3년 후 1억5000만원에 가게를 넘겨받을 수 있다. 조합원이 5명이면 각 3000만원의 출자금으로 이 식당의 공동 소유자이자 직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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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강도 낮추도록 설계된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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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햄버거 식당일까? 문길환(44) 해피브릿지 신사업개발센터 부장은 “노동 강도를 낮추는 데 가장 중점을 두고 브랜드를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식 메뉴의 경우 조리 매뉴얼이 복잡할뿐더러 불 조절과 조리실 온도에도 맛이 좌우되는 등 숙련된 경험이 중요하지만 햄버거, 파스타 등은 매뉴얼만 잘 개발하면 같은 맛을 내기가 비교적 쉽다고. 햄버거 식당은 카운터에 와서 주문하고 식기를 퇴식구에 반납하는 형태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5명 안팎의 직원들이 주5일 근무를 하며 적정 수입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갖기에도 용이하다.
주력 브랜드가 국수(국수나무), 냉면(화평동왕냉면) 등 한식류였던 해피브릿지가 햄버거를 비롯한 양식 메뉴 개발에 나섰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2년 여 동안 신사업개발센터가 꼬박 전념한 끝에 2000~4000원대의, 대형 프랜차이즈와 가격 경쟁을 해 봄 직한 햄버거 레시피를 만들어 냈다. 스테이크, 파스타 등 메뉴들도 무항생제 돼지고기, 무안 양파 등 좋은 재료를 넉넉히 사용하면서도 적정한 가격 수준을 맞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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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일해도 엄두조차 낼 수 없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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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일점의 김기철(39) 점장은 개발 시작 단계였던 3년 전부터 MCFC 직원으로 일했고, 지난해 5월부터 건대점에서 점장 교육을 받은 뒤 명일점을 맡아 운영하게 됐다.
인터뷰를 위해 둘러앉은 자리에서 문 부장이 “어떤 가게로 만들어가고 싶은지 얘기해 보라”고 권하자 김 점장은 묘한 표정으로 웃기만 하다가 그간의 경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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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업계에서 10년 일했어요. 이름 들으면 알 만한 패밀리 레스토랑,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에서도 일했죠. 그러는 동안 월 2회 이상 쉰 적이 없어요. 내 가게를 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죠. 월 수천만 원 순이익을 혼자 가져가는 사장님들을 봐 왔으니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꿈일 뿐이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도 벌이가 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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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가장 힘든 일, 숙련자만 할 수 있는 일을 해도 월 200만원 이상을 못 버는 것이 식당업계 현실이다. 돈을 모아 식당을 낸다는 건 보통 사람에게는 언감생심이고, 빚을 내고 무리해서 가게를 차려도 성공률은 10% 미만. 그 실패의 책임은 오롯이 혼자 져야 하니 섣불리 용기를 낼 수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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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해피브릿지를 만나 ‘같이 벌면서 같이 행복한 노동자협동조합 식당’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됐다는 김 점장. 그럼에도 아직 많은 숙제를 앞에 둔 듯한 표정이던 그는 "카운터 좀 봐 달라"는 직원들의 부름에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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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결책 찾는 구조가 능률 높여”
주문이 계속 들어오는 바람에 주방에서 못 나오던 이은희(48) 부점장도 얘기를 나눠 보니 레스토랑 매니저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명일점에서 정식 교육과 인턴 과정까지 거친 예비 조합원은 아직 김 점장까지 둘 뿐이지만 이 부점장은 “다른 직원이나 주위 분들도 노동자협동조합의 장점과 가능성에 공감하고 있어 구성이 어렵지 않을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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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협동조합처럼 작은 일 하나도 구성원 모두가 논의해 가면서 정해 가고 있다고 전하는 이 부점장에게 “그런 점이 의사 결정을 더디게 하지는 않나?”라고 묻자 “그런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도 함께 찾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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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구조가 장점인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는데, 위계를 내세우지 않아도 대화하며 일을 처리할 수 있고 그러다보니 바쁠 때는 모두 달려들어 힘을 합치는 등 책임감도 높아지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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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맞춤 식당=성공하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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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맹점 관리 경험으로 보면, 성공하는 식당의 비결은 딱 하나입니다. ‘사람’이죠. 아무리 입소문이 나도 주방장이 바뀌면 손님은 바로 떨어집니다. 서빙 직원들이 계속 들고나면 서비스도 엉망일 수밖에 없고요. 우수사원 포상제, 근무 환경 개선, 복지 제도 등 어떤 동기 부여보다 확실한 것은 ‘내 가게’라는 의식입니다. 내 가게라면 최선을 다해 일할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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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 좋은 일 하느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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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궁금증이 인다. 왜 해피브릿지는 노동자협동조합 맞춤 브랜드 같은 것을 개발하고, 기껏 애써서 터 닦아 놓은 직영점을 좋은 조건에 넘겨주겠다는 원칙 같은 것을 세워 놓은 것일까?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고, 남의 것을 하나라도 빼앗아야 수지가 맞는 이 시대 대한민국 서울에서 이런 소리를 들으면 “혹시 사기 아닐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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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답을 듣기 위해 동대문구 장한로에 위치한 해피브릿지 본사로 자리를 옮겨 송인창(47) 이사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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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해피브릿지는 이미 협동조합계에서 유명한 회사다. 회사를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2013년 2월 협동조합 전환을 결정했고, 1년간 제도적 문제를 모두 해결한 뒤 2014년 2월 정식으로 설립신고를 마친, 조합원 77명의 노동자협동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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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연매출 320억, 2013년 연매출 350억 원에 매년 15억 원 가량의 순이익을 내는 ‘잘 나가는’ 회사가 이처럼 과감하게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사례는 협동조합 역사가 더 오랜 유럽에서도 찾기 어렵다.
이럴 수 있었던 것은, 신입사원과 최고경영자의 연봉 차이가 3~4배에 불과하고, 5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많으며 ‘자본보다 사람’이라는 목표를 강조해 온 점 등 이 회사 고유의 특징들과 관계가 깊다.
이미 2010년부터 협동조합의 가치와 가능성에 주목해 경영진과 직원들은 이탈리아 볼로냐, 스페인 몬드라곤, 프랑스와 영국 노동자협동조합 등을 탐방하며 공부해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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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창립멤버를 비롯한 주주들은 지분을 내놓고 ‘조합원’이 되는 데 흔쾌히 동의했고 직원들도 1인당 1000만원의 출자금을 내면서 조합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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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식당 협동조합 프로젝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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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 이사장에게 들어보니 ‘더파이브’ 프로젝트의 목표는 노동자협동조합 맞춤형 브랜드를 운영하는 데까지가 아니었다.
서울 동북부 등 지역 별로 ‘더 파이브’ 매장들이 연대해 ‘지역 식당 협동조합 연합회’ 단위로 돌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그럴 경우 매장들이 서로를 지탱해 줄 수도 있고, 그 중 하나가 문을 닫을 경우 그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다른 매장에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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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계획의 이유는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노동할 수 있는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또 그러면서도 이 모델이 경영 측면에서도 더 유리하다는 게 송 이사장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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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업은 위기를 맞는데, 다른 기업이 망할 때 살아남으면 더 큰 시장을 맞이하게 됩니다. 협동조합은 어렵다고 손발을 잘라내는 게 아니라 함께 견디면서 똘똘 뭉치기 때문에 위기에 강합니다. 불안정성이 큰 외식업계일수록 노동자협동조합, 그리고 지역별 협동조합 연합체 모델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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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은 매출 내야 살아남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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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이사장은 이 프로젝트를 기업사회공헌(CSR)의 하나로 보는 시각에는 반대했다. “기부하려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프랜차이즈 회사 고유의 사업이죠. 협동조합도 기업이기 때문에 이익이 안 나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모여도 매출을 올리지 못하면 그 가맹점은 문을 닫게 될 겁니다.”
다만 보통 프랜차이즈 가맹점 교육이 14일 과정인 데 비하면 더 파이브는 2년 교육(유료)과 1년 인턴십 등 3년간의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본사의 공이 특별히 더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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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청년들이 이 과정을 통해 노동자협동조합을 만들기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에 이런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겼다는 데서 희망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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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시작된 꿈, 오래 찾아 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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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궁금증은 해결됐을까? 사실 해피브릿지의 행보를 이해하게 해 주는 핵심 열쇠는 더 파이브 매장에서 문 부장에게 들었던 설명 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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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비롯해서 창립 멤버들은 청소년, 청년 시절인 1980~1990년대에 성북구에서 카톨릭청년회를 같이 했던 사람들이에요. 다들 가난하게 자랐죠. ‘잘 살고 싶다’는 꿈은 있었지만 노동운동에 몸담은 선배들과 늘 교류해서인지 남을 착취하면서까지 돈 벌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늘 ‘일하기 좋은 회사’,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회사’를 우리끼리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를 했었죠. 그렇게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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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하기도 하고 아직 어렵기도 하지만 해피브릿지의 행보가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이렇게 오래 전 시작된 꿈, 오랜 시간 찾아온 길 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방향을 지키며 걸어간다면 우리가 지금껏 못한 세계를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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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나무 홈페이지: ?http://www.namuy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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