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rt style="green"] "윤리적 소비가 뭐에요? 말이 너무 어려워요." "소비가 어떻게 윤리적일 수 있어요?"?일상 속 모든 선택에는 윤리적 갈등, 비윤리적 유혹이 숨어 있습니다. 주인 없는 가게에서 물건을 그냥 가지고 나오고 싶은 유혹부터 내가 관리하는 공공자금을 사적으로 급한 일에 살짝 넣었다 빼고 싶은 유혹까지. 윤리적 소비란 그런 유혹을 이겨내는 소비, 나 자신뿐 아니라 사회와 환경 등 타자를 배려하는 소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어려우세요? 일상 속에서 먼저 고민하고 실천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어요??이로운닷넷 eroun.net 은 2012년 윤리적 소비 수기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alert]


최선인
(2012 윤리적 소비 공모전 자유분야 일반부문 수상작 )




“우와, 예쁘다”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골목길 맞은편, 오늘 아주머니와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고로 저렇게 반갑게 인사를 건넬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리둥절하다.

뮤리얼 아주머니와 알게 된지도 벌써 2개월. 어느 날 아침 골목길, 영어 단어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걸어가는 동양인 소녀가 신기하고 측은하셨던지, 그날 이후부터 이 흑인아주머니는 나의 든든한 케이프타운 엄마이자 첫 현지인 친구가 되어 주셨다.

언제나 아주머니는 아프리카의 따뜻한 햇살 같은 얼굴로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

“안녕!, 반갑구나, 오랜만이다. 잘 지냈니? 어제는 왜 안 왔니? 오늘은 어땠어?” 등등.

짧으면 짧고, 길면 길수도 있는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일주일에 적어도 두 세 번은 만났으니 함께 나눈 인사말만 해도 20번은 넘었는데... 그런데도 오늘 받은 인사말은 아주머니께 처음 듣는 말이라 은근히 낯설다.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곤 멋쩍은 마음에 괜스레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음 반, 놀라운 반으로 여쭙는다.

“저요? 저 말이에요??”

아주머니의 커다란 눈망울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럼 이 골목에 우리 아가씨 말고 다른 분이 또 있나? 오늘따라 유난히 예뻐 보이네. 특히 그 귀여운 곰돌이 귀걸이.”

콕 찍어 ‘곰돌이 귀걸이’를 말씀하시자, 문득 '아. 귀걸이를 했었지.' 생각이 났다. 내 귀를 절대 스스로는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두 눈이 최대한 귀 쪽을 향한다. 역시나 귀가 보이지 않으니 괜히 무안해서 손으로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아, 이거요? 제가 아끼는 귀걸이라서 하고 있어요. 선물 받은 거라 맨날 끼고 있었는데요?”

“그렇구나. 오늘 처음 봤어. 너랑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 곰돌이, 금인가보다.”

“네, 제가 아프리카 간다고 하니까 오랫동안 못 보겠다고 아는 분이 선물해주셨어요.”

뮤리엘 아주머니(가운데) 부부와 나. 사진제공 : 최선인

예쁜 액세서리를 마주할 때 나타나는 여자들의 표정을 유심히 본 사람은 알지도 모른다. 유난히 마음에 드는 귀걸이를 발견했을 때 보이는 두 가지 반응. 반짝이는 큐빅처럼 얼굴에 예쁜 미소가 피어오르거나, 너무나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 체념하는 표정.

한국에서 가끔 쇼핑할 때 볼 수 있던 친구들의 표정을 가만히 떠올려보니, 지금 뮤리얼 아주머니 얼굴에도 그 두 가지의 의미가 뒤섞여 있는 건 아닌지 싶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내가 처음 보는, 절대 읽히지 않는 아주머니의 묘한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그렇구나. 예쁘네. 그런데 나는 금 귀걸이는 안 해, 못해...”

‘응?? 지금까지 예쁘다고 하시고선... 귀 뚫는 게 무서우신 건가? 귀걸이 알레르기가 있으신 걸까? 아니면 금이 너무 비싼 걸까?’

한국에서 귀걸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말했던 다양한 이유들을 떠올려 보았다.

“왜요?? 왜 못하세요 아주머니??”

왜 못하는데? 안하는데? 또래 친구에게 말하듯 그냥 궁금한 마음에 물어본 질문. 당연히 예상한 답들이 튀어나올 줄 알았다.

귀에 매달린 귀여운 곰돌이를 바라보던 아주머니의 눈빛이 내 눈동자를 바라본다.

“이렇게 아름다운 금 귀걸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흑인들이 아프고 다쳤는지 알고 있으니까...”

심장 한 켠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그리곤 남아공에 오기 전 봤던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떠올랐다. 내가 가게 될 아프리카가 나온다는 것은 물론, 90년대 소녀들의 영원한 로망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다기에 무조건 찾아갔던 영화관.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내 마음 한 쪽에 남은 건 케이프타운도, 디카프리오도 아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아프리카의 광산과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그리고 잘려버린 까만 손이었다.

아주머니의 예상치 못한 답변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은 내 사랑스런 곰돌이 귀걸이가 갑자기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겹쳐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귀걸이를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겠던 귀가 괜히 간지럽고 시렵다.

“정말요? 그래서 정말 금 귀걸이는 안하시는 거에요?”

정말 모기만한 목소리가 나와 여쭤봤다. 누군가 이야기를 했으니 그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여쭤본 건지, 아주머니께서 정말 귀걸이를 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해서였는지 아님 정말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내용이 사실인 건지... 질문은 하나였지만 아마 그 세 가지 의미가 담겨있던 것 같다.

“응. 금은 물론, 은이나 다이아몬드도 하지 않아. 물론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 어쩌면 너마저도 우리 흑인들은 가난하고 못살아서 보석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사실이야. 안하는 것보다는 못하는 경우가 많지. 금 귀걸이, 다이아몬드 반지, 우리에겐 평생 일해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가격의 것들이지. 알아...

그런데, 그렇다고 단지 비싸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나는 너무 비싸지 않다고 생각해. 조그마한 귀걸이와 반지에는 단지 보석만 들어 있는 게 아니야. 누군가에게는 그 보석보다 더 반짝이고 소중한 가족들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친구들, 아프리카사람들의 눈물과 아픔도 들어있어. 보석은 단지 예쁘고 비싼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보다...”

아무리 사실을 다룬 영화라도 우리가 직접 겪지 않은 내용을 담은 영화라면 현실은 하나의 이미지로 전락하기 쉽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를 보고 우리는 국제사회가 다이아몬드의 공정한 거래를 위해 원산지 추적 감시체제인 킴벌리 프로세스를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직접 보진 않았고 현실과의 거리도 멀게 느껴지기에 우리는 공정무역을 설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에 열광한다.

하지만 영화보다 현실이 가까운 아프리카 사람들은 다르다. 빛나는 보석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보석과 관련된 인권유린과 밀수출이 이뤄지고 있다.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을 알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 그리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다이아몬드에 대한 환상을 팔기위해, 자신들의 삶을 보석에 팔 수 밖에 없는 지독한 현실이 반복되는 아프리카의 단면.

아프리카 땅에서, 아프리카 사람에게,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보석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분명 한국에서 책과 영화로 접한 공정무역과는 느낌이 다르다. 금을 채취하는 동안 수은에 중독되어 살이 녹아버린 자극적인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지 않아도 담담하게 우리도 너와 똑같은 사람이라서 그런 모든 과정들이 힘들고 아프다고 말해주는 흑인. 피부색이나 언어와 문화는 물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계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인간으로써 같다. 다이아몬드를 캐는 사람도, 보석을 사는 사람도 반지에 담긴 아름다운 사랑을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며,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겐 사랑하는 사람이고, 가족이고, 친구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순수하고 단순하게 궁금한 질문이 생겼다.

“그런데요... 솔직히 예쁘긴 하잖아요... 다이아몬드 반지도, 제 귀걸이도요... 그러면 아예 아무 것도 안 해요? 예쁜 것도 하기 싫으세요? 그래도 진짜 가끔씩은 꾸미고 싶고, 예뻐 보이고 싶은 날, 그런 날들이 있잖아요. 가끔씩은...”

갑자기 단순해진 질문에 아주머니의 웃음보가 빵 터졌다.

“큭큭큭. 당연히 나도 예쁜 거 좋아하지! 금 귀걸이를 하지 않는다곤 했지만 너의 곰돌이 귀걸이는 여전히 사랑스럽구나. 네가 아프리카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아프리카 여성들도 꾸미는 거 엄청 좋아한단다. 예쁘고 싶다는 건 나 같은 흑인뿐만 아니라, 너와 같은 동양인, 그리고 전 세계 여성들의 공통관심사겠지?

물론 너의 곰돌이 금 귀걸이도 귀엽고, 타이타닉에 나온 파란 다이아몬드도 매력적이지만 사람이 꼭 값비싼 보석으로만 아름다워지는 것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가 아름다워지는 방법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 생김새, 피부색만큼 다양할 수 있단다. 예를 하나 들자면 우리 아프리카 여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방법이 하나 있지.”

갑자기 팔목을 내미시는 아주머니. 까만 팔목에는 남아공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무지개처럼 알록달록 각각의 색깔들이 모여 만들어진 화려한 비즈팔지가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과 흑인들의 눈물과 피가 담긴 보석보다는 누군가의 어머니 또는 딸로써 정성과 사랑을 담아 한 구슬, 두 구슬 엮어 만든 비즈 공예 물건을 더 좋아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랬다. 휘황찬란한 다이아몬드, 금 목걸이, 명품 하나 걸치지 않았어도 남아공 길거리에서 만난 아프리카 여인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케이프타운의 햇살처럼 밝은 사람들의 환한 미소 때문이기도 했지만 웬만한 귀금속 귀걸이, 목걸이, 반지 세트 못지않게 반짝이며 조화를 이루는 비즈악세사리 덕분인 것도 같았다.

흙과 물을 반죽해서 빚은 비즈를 정성스레 화덕에 구워, 구슬마다 자연의 색깔을 입히면 완성되는 비즈구슬.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에는 아프리카 여인들의 정성스런 손길이 담겨있다. 비즈공예는 아프리카의 전통을 유지시키는 동시에 최근에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 수단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또한 현지인에게 직접 도움이 되고 그들 스스로 지속가능하게 이어갈 수 있는 활동들을 지원하는 몇몇 서구의 단체들은 비즈공예를 공정무역의 아이템으로써 활용하기도 한다.

뮤리얼 아주머니도 내 곰돌이 귀걸이가 귀엽다고 하셨듯이 보석은 누가 뭐래도 눈부시고 아름답긴 하다. 하지만 이젠 단지 광고 속 매력적인 연예인들과 함께 나오는 귀금속만이 예뻐지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아름다워질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보석이라고 해서 모두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같은 것은 아니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힘든 노동을 하는 만큼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어 공정하게 생산되고 유통하는 보석도 있다.

직접 아프리카에 갈 수는 없더라도 소비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구매한 보석이 지구별 반대편 흑인 아이들의 눈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보다 쉽게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공정한 방식으로 생산 유통된 반지를 구매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관련 상품을 구매하지 않거나 소비자로써 회사에 부당한 과정에 대한 개선을 촉구할 수 있다.

또한 해외여행을 가는 경우, 면세점의 보석을 사기보다 우리가 방문하는 지역의 사람들이 만들고 애용하고 사랑하는 물건을 사는 것도 아름다움을 나누는 작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남아공에서는 그 곳의 흙과 물과 자연이 담긴 비즈 목걸이, 인도의 다람살라에서는 티벳 난민들의 독립염원이 담긴 비즈 팔지, 이집트의 어느 골목 가판대에서는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숨결이 담긴 비즈 귀걸이를 구매하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미소를 나누는 것.

나와 지구별 친구들 모두가 아름다워지는 길은 꼭 수백만 원의 거액이 들어가야만 시작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똑같은 인간으로써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각자가 가진 아름다운 미소와 예쁜 액세서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작은 구매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남아공에서 가져온 비즈팔지를 보며 작지만 아름다웠던 아주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사진출처
Lisa Kristine (http://www.lisakristine.com/modern-day-slavery/)
The Fair Trader (http://www.thefairtraderchicago.com)
SOMO beads (http://www.somobeads.com/)
African Conflict Diamond (http://adsoftheworld.com/forum/exhibition/african_conflict_diamonds)
한진관광 (http://blog.naver.com/ekaltour?Redirect=Log&logNo=15013666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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