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국대안의 본질을 간파하고 반대 운동에 나섰다. 양심적인 교원과 학생을 학원에서 추방하고 파쇼적 제도를 강제하여 학문을 질식시키려고 하는 것이 이 안의 목적이 아닌가! 학생들은 노도와 같이 궐기했다. 학원 내에서는 총검이 횡행하게 되었다. 교원과 학생들은 일본제국주의자가 만든 형무소에 재차 투옥되었다. 이것이 해방의 실상인가. 도대체 어디다가 과학의 꽃을 피울 것인가!.”-월북한 과학자 리승기 중에서“과학은 결코 일시라도 현상에 만족하여 정지하지 않습니다. 현상 만족은 퇴보를 의미하며, 연구실과
“국대안반대는 통일지향적 교육운동이자 민족자주 교육운동이었으며 학원민주화 운동이었다. 그러나 국대안이 강행되며 생겨난 서울대학교는 한동안 보수적 교수들의 아성이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이희수 중에서“국대안 반대 운동의 중심 세력을 이룬 유능한 제대 출신 서울대 교수들은 북으로 가 김대에서 창설의 주역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각자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였고 또 학생들로부터 “수재”로 알려진 교수들이다.” 김기석 중에서식민지의 단절, 새로운
사상가 니덤의 정체성은 과학자 시절에 형성됐다. 그는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를 살았다. 그 덕에 빨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서구사회에서 모멸을 당해야 했지만, 적어도 그가 보여준 사상적 궤적의 중심엔, 과학이 있다. 그에게 과학이란 생화학과 발생학의 통합 문제였고, 가장 환원주의적인 생물학과 전일론적인 생물학의 통합 문제는, 그의 사상적 궤적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이후 과학사가로 입지를 굳히게 되는 이유도, 바로 그의 정체성이 과학자임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는 중국사 일반이나 철학적 사유를 향해 나가지 않고, 과학의 경계
“중국 사회는 상인정신이 결코 우위에 설 수 없는 문명이었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고급 장인의 기술과 학자들이 연구하는 수학적/논리적 방법이 결합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단계에서 갈릴레이의 단계로의 도약이 서양의 근대과학을 일으켜 준 데 비해 중국에서는 그러한 도약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아마 그런 도약적 발전은 중국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중세의 중국은 그리스나 유럽사람에 비하면 더 많은 체계적 실험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관료적 봉건제’가 변함없이 군림하고 있는 한 중국에서는 구학이
“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 - 유네스코 헌장 中?(주 1)“지식은 단지 자연을 지배하고 극복하려는 목적으로만 발전돼서는 안된다. 지식은 반드시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의미의 맥락 속에서 발전돼야 한다. 지식과 권력은 의미와 도덕성에서 너무 멀어져 왔다.(중략) 지혜와 권력을 어떻게 하나로 만드는가하는 문제야말로 인문주의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 조지프 니덤, 中(주 2)국제정치 무대에서 활동한 과학자 혹은 역사가, 조지프 니덤유네스코(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