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우봉 울산사경센터 디자인 전문위원 

모든 병원이 다 그렇겠지만 치과에 오시는 환자들은 어딘가 아프고 불편하시기에 표정은 어둡고 마음도 우울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분에게 무심히 던진 의료진의 객관적인 말 한마디는 자칫 가시가 되어 상처를 줄 수 있다. 지금은 병원도 경쟁이 치열해서 의사들이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친절한 설명은 기본이고 자상하게 환자를 대하는 서비스 정신이 필요한 시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사가 너무 아첨하며 장삿속 보이듯 하는 태도는 환자에게 신뢰를 주기 힘들거니와 내성적 성격 탓에 말주변이 부족한 의사들에게는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치과에서도 원장의 이런 부족한 부분을 치위생사 선생님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간 우리 치과를 거쳐간 많은 직원 중 환자들 사이에 특히 인기가 많았던 치위생사 선생님이 있었다. 항상 웃는 밝은 표정과 매력적인 비음을 섞은 상냥한 말투로 바쁘고 무심한 원장에게 받은 환자들의 오해와 상처를 달래주셨던 분이다. 성격 자체가 쾌활한데다 천성적으로 궁금한 것은 참지를 못하는 오지랖 넓은 성격 탓에 환자들과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일상의 깊숙한 대화까지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어머! 어머니 오셨어요? 어머니 어머니 빨리 이리 좀 앉아 보세요. 지난주에 사위 보셨다며? 세상에 어쩜! 그래, 뭐 하는 사람이래요? 둘이 어떻게 만났대요? 잘 생겼어요? 호호호. 얼마나 좋으실까 (이때 비음을 섞고 호들갑에 가까운 오버 리액션을 시전한다). 이 스카프 때깔 좋은 것 좀 봐. 이거 비싼 브랜든데. 어쩜 이리 재킷이랑 잘 어울릴까. 이거 딸이 사준 거예요?"
 뭐 대충 이런 식이다. 요즘 같은 때엔 개인사에 꼬치꼬치 관여해 물어오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외로운 어른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딸을 좋은 곳에 시집보내 자랑하고 싶었는데 어찌 알고 먼저 이리도 살갑게 물어봐 주니 얼마나 좋았을까. 항상 어두운 표정만 대해야 하는 원장 입장에선 옆 칸에서 대기하는 환자와 직원 사이에 무슨 대화인지는 모르지만 키득키득, 까르르... 하면서 소곤거리는 게 가장 듣기 좋은 소리이다.
 당시 환자들 사이에 가장 인기가 있어서 다들 이 직원이 자기를 담당해 주길 원했고 치과에 치료를 하러 오는 건지 이 직원과 대화를 나누러 오는건지 모를 정도였다.
  말수가 적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신 근엄한 남자 환자분도 예외 없이 이 직원에게 무장해제 당했다. 이 환자분이 국어선생님이면서 시인인 것을 알게 되자 자기는 시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시는 하나 있다면서 암송해 보이니 깜짝 놀란 이 시인은 그때부터 말문이 터져 문학 강론을 하고 시집을 선물하는 등 아주 열혈팬이 되어 버렸다. 그림은 몰라도 화가가 오면 아는 화가 이름 하나쯤은 댈 수 있고 정치인이 오면 시사에 대한 자기 견해 정도는 말하는 식견이 있었다.
 이처럼 세상에는 실로 다양한 직업 군상들이 있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질병의 고통으로 병원을 찾기 마련이다. 이들과 진정한 대화와 소통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평소 많은 독서와 폭넓은 교양을 쌓아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선한 마음이 우러나야 할 것이다.
 선인장은 자신이 품고 있는 수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잎이 변해 가시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가시가 되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특히 의료인은 남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사람이지 말로써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  요즘 MZ 세대 직원들은 다들 똑똑하고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지만 너무나 시크해서 웃음기 없는 무표정한 얼굴에 기계적이고 사무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참으로 안타깝다. 마음에서 우러난 따뜻한 말 한마디로 능히 상처를 치유했던 예전의 그 수다스러운 직원이 유독 그립고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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