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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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향년 98세. 한국나이로 내년이면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셨다. 조문객들은 "이별은 슬프나 큰 병치레 없이 장수를 누리셨으니 호상(好喪)"이라며 위로해줬다. 

외할머니께서 한평생 누리며 살다 가신 98년이란 시간은 단순히 개인적인 슬픔이나 소회와 별개로,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장례문화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장례를 치르는 중간 중간 익숙하지 않은 장면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상주들의 나이가 많았다. 큰 딸은 곧 팔순을 바라보고 있었고 큰 아들은 칠순을 넘겼다. 막내아들조차 환갑을 넘긴 나이였다. 상주나 조문객들 중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장례라는 것이 본래 나이에 관계없이 힘든 일이긴 하지만 고령의 상주와 조문객들에게는 조금 더 버거워 보였다. 

상주들의 나이가 많다보니, 아무래도 ‘현역’에서 활동하는 비율도 적었다. 이제 막 환갑을 넘긴 막내아들과 막내딸 정도만이 여전히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뿐 대다수는 은퇴한지 꽤나 오래됐다. 은퇴한 상주들에게는 찾아올 직장 동료 및 선후배, 거래처 사람들 그리고 화환이 드물 수밖에 없었다. 

시끌벅적하게 조문객들을 맞이해 슬픔을 나누는 것은 우리들의 오랜 장례문화다. 하지만 ‘고령’과 ‘은퇴’라는 현실적 한계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문화를 기반삼아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형성한 장례 산업(상조서비스 및 장례서비스 등)이 지속가능한지 의문이 든다. 많은 조문객들을 불러 모을 장례식장과 그들에게 서비스를 공급할 도우미 인력 그리고 이 모든 대관과 인력비용을 금융서비스로 제공하는 상조회사들까지. 아무리 좋은 서비스가 패키지로 제공된다고 해도, 상주에게는 되레 부담스럽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관성과는 다른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주와 장례 산업 모두 노력이 필요하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상황 속에서 은퇴 가능성을 염두해 둔 상주라면 직장이라는 ‘경성 관계망’ 못지않게 지역과 취미 생활 등의 ‘연성 관계망’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군대 동기간 모임과 지역에서 관계를 맺어온 오랜 친구들은 은퇴한 상주들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고령의 몸을 이끌고 조문을 하러 왔다.

규모는 줄이고 사용자경험(고인 및 상주)은 확장하는 장례 산업도 등장할 필요가 있다. 전문 장례식장이 아니라 생전에 고인이 지역 공동체와 함께 추억을 쌓던 곳이 그의 마지막 추모 장소가 될 수도 있다. 대규모 조문객이 아니어도 상주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고인을 추모할 작은 공동체가 고인의 임종을 지키고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인구통계학적으로 100세 시대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인들의 평균수명은 83.6세다. 남자 80.6세 여자 86.6세다. 하지만 76.6세였던 2000년도와 비교하면 평균수명이 약 7년이나 연장됐다. 기계적으로 적용하긴 어렵겠지만, 여성 기준 평균수명 90세 돌파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가뜩이나 비혼과 딩크족의 등장으로 상주 노릇을 할 사람도 예전보다 줄지 않았던가.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난 삶의 마지막을 그려볼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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