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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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말이 생각났다.

가난한 사람에게 빵을 나누어주면 성자가 되지만 가난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불순한 사람이 된다는 말. 로치데일의 선구자들도 그랬을 것이라 짐작한다. 스스로 불순한 사람이 되기로 선언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상점을 만들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평등하게 운영 할 수 있는 조직을 꿈꾸었다. 그들의 꿈은 꿈이 아니라 그렇게 현실이 되었고 마침내 20세기 초반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기업 중의 하나로 성장했다.

2012년 협동조합의 시작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초래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은행과 기업의 파산을 부르고 수많은 실업을 야기했다. 경제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그렇게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이 강제로 자영업자가 되었고 그들의 고단한 삶은 지금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가난을 다른 말로 역할을 잃은 사람으로 표현하곤 한다. 가난은 가난 자체로도 힘들지만 역할을 잃은 사람이라는 정의는 가난을 다른 차원에서 해석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 개인 부채의 규모가 나아지지 않고 악화되고 있다. 하여 지금과 같이 힘든 시절을 눈 밝은 어떤 마케터는 평균이 사라진 나노사회라 표현했다. 우리사회는 그의 말 처럼 일상의 것이 무너지고, 자산과 소득의 격차가 점점 벌어져 하나의 나라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살고 있다. 이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가장으로서 역할을 잃은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고 때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겠다는 새로운 시도를 협동조합이라고 부른다.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고 벌써 2만5000개의 협동조합이 생기고 일부는 망하기도 했다. 여전히 만들어지고 망하면서 나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 성공과 실패를 말하기에는 지난 10년은 길지 않은 시간이다. 다만, 차분히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무엇이 필요한지 혹 지난 것들에서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기록하고 함께 배워나갔으면 한다. 

계유정난(癸酉靖難)의 소용돌이를 그린 관상이라는 영화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당신들은 그저 높은 파도를 잠시 탔을 뿐이오. 우린 그저 낮게 쓸려가고 있는 중이었소만. 뭐 언젠간 오를 날이 있지 않겠소. 높이 오른 파도가 언젠간 부서지듯이 말이오."

배우의 말처럼 잠시 지나는 파도가 아니라 파도를 부르는 바람을 느끼며 협동조합들이 그렇게 더 넓고 더 깊은 협동의 바다로 나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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