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끼, 1년이면 천 번이 넘는 식사를 하게 되고, 80년을 산다치면 8만 번 이상의 밥을 먹어야 한다. 어느 날은 정성과 공을 들여 한 끼의 식사를 준비하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냉장고에 며칠을 넣어둔 음식을 꺼내 데워 먹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가족들과, 이웃들과, 동료들과 즐겁고 수다스런 식사를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밥상을 뒤엎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시간에 쫓겨 차가운 편의점 삼각김밥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생수병을 들고, 뜨거운 물 부어 놓은 컵라면 면발이 익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의 한 끼 한 끼를 지워간다.

유달리 기억에 남는 밥상이 있던가? 유쾌한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밥 동무가 있던가? 인상깊은 식사 장소가 있었던가? 수만 번의 끼니 중에 대수롭지 않을 한 끼라도 손수 차려주고 싶은 이가 있던가? 얼마 전 시청한 다큐멘터리 ‘밥정’을 보며 든 생각들이다.

다큐멘터리의 뭉클했던 마지막 장면을 기억에 남기며, 여러 후원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자원해서 참여해주는 여러분들과 같이 ‘공익활동가를 응원하는 식탁’을 시작했다. 세 번의 식탁을 열었고, 네 번째 식탁을 앞두고 있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 공익활동가. 식탁에서 만나는 공익활동가들에게 '여러분들이야말로 세상의 소금과 빛과 같은 존재'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한 끼의 맛있는 응원이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공익활동가들을 응원하는 식탁’은 시작됐다. 세상은 복잡해지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난무하지만, 결국 공익활동은 이런 질문과 성찰, 행동의 결과로 좋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고귀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 일이 순탄치 않다. 공익활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지해오던 어떤 지자체는 순간 변신해 공익활동 워치독을 자처하고 있고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소박하고 또 소박한 인프라마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지속가능한 공익활동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추진해온 공익활동가 공제회는 기약도, 가늠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한동안 공익활동이 풀고자 하는 사회문제들은 더 풀기 어려운 난제가 되어 갈 것이고, 실타래는 더 단단히 꼬이게 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그만큼 공익활동가들이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공익활동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과중한 역할과 책임, 척박한 사회적 인정과 보상의 문제는 또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공익활동가를 응원하는 식탁’이 조금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더 다양한 ‘공익활동을 응원하는 OO'이 만들어지는 것을 상상하며 채소 솥밥을 짓는다.

밥정을 나누는 채소 솥밥

솥밥은 기본 밑같을 하고 채소나 해산물, 고기 등을 다양하게 넣어 밥을 짓기 때문에 양념장과 김치나 장아찌 정도의 간단한 반찬만 있어도 근사한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전기밥솥에 보온해 둔 밥도 좋지만 솥밥은 바로 지어서 바로 나누는 밥이라 더 현장감 있고 따뜻한 밥이기도 하다. 왁자지껄하게 모인 가족들과 함께 추석을 보낸 후 명절의 마지막 날, 연휴를 잘 마무리하는 의미로 밥정을 나누는 채소 솥밥을 지어보자.

<재료 (2~3인분 기준)>
- 곡물 _ 쌀과 잡곡 2컵 (30분 정도 불린 상태 기준)
- 채수 _ 다시마 채수 3컵 (추가로 예비 1컵 준비)
- 채소 _ 꽈리고추, 연근, 죽순, 홍고추, 팽이버섯 등
- 솥밥 밑간 _ 소금, 다진 마늘, 들기름
- 채소 밑간 : 소금, 들기름
- 양념장 _ 간장, 들기름, 다진 청고추와 홍고추, 볶은 참깨

<준비>
1. 쌀과 잡곡을 잘 씻은 후 물을 부어 30분 정도 불려주세요.
2. 손바닥 정도 크기의 다시마와 물 4컵을 냄비에 넣고 15분 정도 끓여 줍니다. (표고버섯을 넣어도 좋습니다. 우려낸 다시마는 버리지 말고 채썰어 고명으로 쓰세요)
3. 밥에 올릴 채소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주고 7~8cm 길이로 썰어 소금, 들기름으로 밑간을 살짝 해주세요.
4. 양념그릇에 다진 홍고추와 청고추, 간장, 들기름, 볶은 참깨를 넣고 잘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 둡니다.

<밥 짓기>
1. 뚜껑이 있는 질그릇이나 조금 두께가 있는 냄비에 불린 쌀을 담아줍니다.
2. 불린 쌀에 소금과 다진 마늘, 들기름을 넣고 3~4분 정도 강불에 볶아 주세요.
3. 볶은 쌀에 육수 3컵을 부어 뚜껑을 덮고 강불에 끓여줍니다.
4. 밥물이 끓어오르고 뚜껑 밖으로 밥물이 넘치려고 하면 약불로 줄여줍니다.
5. 이때 뚜껑을 열고 준비한 채소를 밥 위에 가지런히 올린 후 다시 뚜껑을 덮습니다.
6. 2~3분 간격으로 뚜껑을 살짝 열어보면서 밥물이 얼마나 잦아드는지를 보세요. (약불로 익히는 시간은 대략 15분 정도 됩니다.)
7. 밥물이 거의 잦아들었으면 잘 익었는지 조금 떠서 먹어보고 설 익었으면 다시마 물을 조금씩 보충하면서 약불에 좀 더 익혀주세요.
8. 쌀이 다 익었다 싶으면 불을 끄고 뚜껑을 덮은 채로 10분 정도 뜸을 들입니다.

<그릇에 담고 밥상 차리기>
1. 그릇에 다 지어진 밥을 담고 익힌 채소는 가지런하게 밥 위로 올려 덮어줍니다.
2. 밥에 간이 되어 있지만 더 깊은 풍미를 위해 양념장을 넣어 비벼 드세요.
3. 솥밥에 간단한 반찬(김치, 장아찌, 젓갈, 생선구이 등)과 가벼운 국물(계란탕, 콩나물국 등)만 곁들여도 훌륭한 식탁을 차릴 수 있습니다.

[추신]
혹시 지난 설날의 기획 “남자들이여, 요리하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해”를 기억하시나요? 특별히 관심있게 지켜보아서 그런가. 주변에 요리하는 남자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좋은 일입니다. 다시 추석 명절입니다. 기억에 남는 명절이 되려면 아니, 기억에 남을 것은 아니더라도 기억하기 싫은 명절은 안되게 하려면 기억하세요. ‘남자들이여, 요리하라’를. 의무나 억지가 아니라 가족을 위하는 마음, 사람을 위하는 마음, 세상을 위하는 마음으로면 더 좋겠습니다. 모쪼록 ‘밥정’ 나누는 추석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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