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설날입니다. 여기 저기 따로 나가 살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는 즐거워야 할 명절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명절도 그리 즐겁지 만은 않은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른 코로나 상황이 나아져서 가족들이 기쁘게 만나고 여행도 신나게 다니는 날이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15년 다니던 직장일을 그만 둔 후 제주와 서울, 강원도를 오가며 두, 세달 쉬고 있는 참에 이로운넷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동안 페이스북에 '아빠의 부엌'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올린 요리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보고 있다며, 요리하는 이야기를 써 달라고 하더군요. 요리를 즐기고 새로운 요리에 호기심이 많은지라 저도 맞장구를 치며 재미있겠다 하며 해보겠다고 했습니다...만

하루 이틀 지나 '뭘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요리라고 특별히 보여줄게 없는데?' 하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사실 SNS에 올린 요리들은 일상적인 식사나 간단한 간식이고, 가끔 새로 접한 요리에 도전해보는 것들이라 이렇다 할 격식도, 저만의 레시피도 특별할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덜컥 한다고 했으니...

그래도 마감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왔네요. 설날에 기사가 나간다고 해서 강원도 철원 우리 집 스타일 떡만둣국으로 메뉴를 정했습니다.

지역마다 설날에 먹는 떡국은 다양합니다. 외가인 안동, 경상도 지역은 떡만 넣어 떡국을 끓이더군요. 아버지가 신혼 때 처가에서 떡국을 먹는데 큰 주발에 국물도 없이 떡만 차곡차곡 쌓아 줘서 혼났다는 이야기를 설날 때마다 합니다. 충청도는 가래떡이 아니라 생떡국을 끓이기도 하고요.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는 두부를 넣기도 하고 남해 지역은 굴을 넣어 떡국을 끓이기도 한답니다.

제 고향 철원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38선 이북 북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설날에는 만둣국을 먹습니다. 시큼한 김장김치를 넉넉히 다져 넣어서 만들죠. 당연히 차례 상에도 만둣국을 올립니다. 떡보다 만두가 주가 되는 것 외에도 특이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다진 파에 후추가루,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빨갛고 얼큰한 고명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만두는 냉동실에 완제품으로 다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하는 김에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도 직접 밀었습니다. 요즘은 얇은 피가 인기라는데 오늘의 만두는 피가 조금 두꺼운 것이 특징입니다.

강원도 철원 우리집 식 떡만둣국 만들기

<만두소>

재료: 김장김치, 두부, 돼지고기, 목이버섯, 양파, 당근, 대파, 마늘, 달걀 노른자, 들기름

1. 김장김치는 잘게 다지고 면보에 넣어 최대한 물기를 제거해야 합니다.

2. 두부는 면보에 넣어 최대한 물기를 제거합니다. (마른 수건에서 물 나올 정도로 힘껏 짜면 됩니다.)

3. 다진 돼지고기는 간장, 후추로 밑간을 합니다.

4. 양파, 당근, 목이버섯, 대파, 마늘도 잘게 다져 준비합니다.

5. 준비된 재료를 큰 볼에 담고 달걀 노른자, 들기름을 조금 넣고 잘 치대주세요.

<만두피>

재료: 밀가루, 달걀 노른자, 물, 소금

1. 밀가루에 달걀 노른자와 소금을 넣어 반죽하고 물로 점도를 조절하며 반죽을 합니다.

2. 반죽은 실온에 30분 정도 두었다가 밤톨만한 크기로 떼어내 밀대로 동그랗게 밀어줍니다.

3. 피가 서로 달라 붙지 않도록 밀가루를 솔솔 뿌려주세요.

<만두 만들기>

1. 만두피에 소를 적당히 넣고 동그란 모양, 길쭉한 모양, 네모만 모양으로 만들어보세요. (아이들과 같이 만들면 모양은 제 멋대로지만 나중에 자기 만두 찾아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2. 만둣국 국물은 시판 완제품 (한우고기곰탕)을 사용하세요.

3. 고명은 달걀지단(달걀, 소금, 식용유), 대파고명(다진 대파, 후춧가루, 고춧가루), 김가루를 준비해 주세요.

<만둣국 끓이기>

1. 떡국용 떡은 따뜻한 물에 불려 부드럽게 만들어주세요.

2. 만두는 끓는 물에 먼저 삶아냅니다. 만두가 물 위로 떠오르고 피가 다 익었다 싶으면 건져내고 수분이 날아가게 잠시 둡니다.

3. 만두국 국물을 (한우고기곰탕) 1봉에 물을 동량 넣어 끓이세요.

4. 국물이 끓으면 떡과 삶은 만두를 넣어 한소끔 더 끓여 그릇에 담고 고명을 올립니다.

보통의 레시피라면 재료별로 분량도 적어야겠지만 평소에 정확히 계량을 하면서 요리를 하지 않다보니 도저히 저로서는 적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넷에 고수들의 레시피가 많으니 참고하시면서 나름의 레시피로 요리를 해보세요. 그리고 만두소, 만두피 만드는 것 때문에 고민하지 마세요. 마트에 다 있습니다. 사다 하셔도 훌륭합니다.

며칠 전 명절을 보내고 나면 이혼이 크게 증가한다며 그 현상과 원인을 진단한 기사를 봤습니다. 즐거운 명절이 아니라 비극의 명절인 셈이죠. 가족 간의 갈등, 불화가 불씨로 있다가 명절을 계기로 불이 붙어 버리는 것이겠죠. ‘며느리’들의 명절 증후군도 명절 때만 되면 단골로 나오는 뉴스이기도 합니다.

명절 스트레스의 큰 원인 중 하나는 ‘요리’일 겁니다. 며칠을 먹고 마시고 치우고 또 먹고 마시고 치우고. 그러는 동안 남자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면? ‘며느리’들은 쉬지도 못하는 명절이라면? 즐거울 리가 있나요. 저라도 때려 치고 싶어 질 것 같습니다.

남자들이 요리를 하면 더 나은 세상이 됩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아이들은 요리를 놀이로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음식은 남기거나 버리는 것도 조심스러워지죠. (버리는 재료는 물론 많을 수 있습니다.) 청춘들은 사랑하는 연인과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해보세요. 감동을 주고 사랑을 받습니다. 중년의 남성들도 몸은 좀 피곤해도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합니다. 중년의 아내도 많이 피곤하거든요. 매일은 아니더라도 주말에는 ‘내가 우리집 요리사’를, 명절에는 ‘내가 며느리’를 자처해보세요. 늘어나는 요리 레파토리가 쌓이면 나름 재미도 있고요.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트에 가서 그릇을 구경하게 됩니다. 아직 노년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노년의 남성들도 요리를 즐기면 치매가 예방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와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지만 어떻게 보면 개별의 남성들은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직장에서 벗어나면, 공식적인 관계의 틀에서 이탈하면 초라하고, 외로운 존재들이 되고 맙니다. 영국으로 연수를 떠난 한 선배는 일과 공부 외에는 가족들이 놀이터에서 이웃과 놀고 대화하는 것을 아파트 창문에서 지켜보는 게 자기의 일상이었다고 하더군요. 몇 년 전 방문했던 스웨덴의 노인센터에 할머니들만 모여 그림도 그리고 춤도 추고 하길래 할아버지들은 어디서 뭘 하시느냐 물었더니 자기들도 그게 너무 궁금하다며 박장대소를 하시더군요. 할아버지들이 종일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모르겠다고. 요즘 남자들은 대부분 그러지 않겠지만요.

그래서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남자들이여, 요리하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더 나은 인생을 위해."

힘든 시절지만 함께 마련한 소박한 음식 나누시면서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김대훈 전 세이프넷지원센터장

1972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습니다. 20대 후반 대학 졸업 후 시민단체, 협동조합,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20여년 일했습니다. 2022년 새해는 잠시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일을 작은 소명으로 생각하며 소박한 요리와 함께 하는 일상을 즐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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