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서비스라도 누가 제공하느냐에 따라 고품질이 될 수도, 저품질이 될 수도 있죠. 그런 면에서 사회적경제는 정말 좋은 파트너입니다. 일반 민간 경제주체와 달리 사회적경제주체가 가진 특성 때문인데요. 공공성·공익성 추구, 조직 내 민주주의 같은 요소 덕분에 같은 돈을 들일 때 사회적경제 주체가 제공하는 사회서비스 품질이 더 높다는 겁니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18일 이로운넷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 교수는 현재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에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정책본부(이하 복지 정책본부)’의 본부장을 맡고 있다. 복지 정책본부는 사회서비스·소득보장·고용·노동·기후환경 등 복지 전반의 공약을 설계하는 팀이다.

안 교수는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복지공약은 '서비스 중심', 더불어민주당은 '현금 지급 중심'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현금 복지 중심으로 가는 나라는 성장이 더디고, 실업률도 오르지만, 서비스 복지 쪽으로 체질 개선을 한 나라들은 고용 창출 효과를 어마어마하게 봤다”고 말했다. 지금 국내 일자리의 5% 수준도 안 되는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를 대폭 늘릴 것이며, 이는 사회적경제 영역 일자리의 증가로 이어질 거라고도 전망했다. 실제로 윤석열 후보가 내놓은 10대 공약에는 사회서비스 추진체계 개편을 통해 "보건, 복지, 고용, 돌봄 등 사회서비스 복지 확대와 사회서비스 품질 고도화로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을 활성화"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가있다.

그는 "서비스 복지를 늘리는 역할은 공무원이 전담할 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민간이 해야 한다"며 "그런 맥락에서 이탈리아 '카디아이 사회적협동조합'이나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처럼 사회적경제 주체가 사회서비스를 담당하며 규모의 경제를 창출하는 사례가 유럽에 많다는 사실을 윤석열 후보에게 이야기했고, 후보도 이를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월 18일 서울 중구 페이지명동에서 만난 안상훈 교수.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정책본부장을 맡았다.
2월 18일 서울 중구 페이지명동에서 만난 안상훈 교수.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정책본부장을 맡았다.

‘현금’보다 ‘서비스’ 복지…성평등과 고용 창출 효과↑

“복지국가는 영어로 ‘웰페어 스테이트(welfare state)’인데요,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라는 의미인 ‘워페어 스테이트(warfare state)’의 반대말로 만들어진 겁니다. 그러니까 양차 대전의 포화 속에서 서구 초기 자본주의가 망했잖아요.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런 사회에서는 살 수 없다’라는 공감대가 퍼지면서 자본주의의 수정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그 수정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표현형이 ‘복지국가’입니다.

그러다 전후 복구 사업 등으로 서구 자본주의가 다시 호황을 누리면서 추진했던 게 현금 복지입니다. 개인의 효용을 극대화하려면 현금을 직접 줘야 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논리에 따른 거죠. 그런데 1970년대에 석유 파동이 덮친 거예요. ‘에너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확 커지니까, 현금을 쏟는 복지는 감당하기 어려워졌죠. 이때부터 여러 국가에서 복지 개혁을 시작합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의 대립하는 개념으로 탄생한 ‘복지국가’. 석유 파동 전까지 호황을 누리던 국가들이 실시한 현금 복지.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자 도마 위에 오른 복지 개혁. 안 교수는 “그러나 어떤 나라도 복지 지출 총량을 줄일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안 교수는 “독재국가라면 독재자가 마음대로 줄일 수 있겠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도 선거가 짧게 자주 있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복지 체질을 개선한 나라들이 있다. 북유럽이나 베네룩스(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독일 등 우리가 선도적인 복지국가라고 칭하는 곳들이다. 안 교수는 이들이 실업급여나 연금 등을 깎고, 그 대신 교육·보건·의료·돌봄 등 사회서비스를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설명했다. 다수제가 아닌 합의제 민주주의를 택한 국가들이다. 현실적으로 ‘숙의’가 가능한 정치적 배경이 한몫했다.

안 교수는 무분별한 현금 복지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예로 스웨덴의 ‘1억일 병가 쇼크’를 들었다. 2003년 기준, 스웨덴 국민이 1년 동안 쓴 병가가 1억일을 넘긴 거다. 노동자 1명이 아파서 회사에 못 간 날만 연 한 달이라는 거다. 나라에서 급여의 90%까지 상병수당을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이어 “이에 부담을 느낀 스웨덴 정부가 상병수당을 점점 깎았더니 병가가 줄었다”며 “노동자들이 갑자기 건강해진 거겠냐. 현금 복지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현금 복지가 노동시장의 승자, 즉 남성에게 유리한 구조를 공고히 한다”고도 비판했다. 가부장 전통하에서 돌봄의 주체는 여전히 여성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는 “돌봄은 집안일이 아니라 나랏일이 돼야 한다”며 “양성 간 불평등이 상당히 완화됐다고 평가받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현금보다 서비스 복지 위주로 시행하는 국가들”이라고 부연했다. 서비스 복지가 성평등 사회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거다.

안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서비스 복지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고, 이게 이재명 후보의 복지정책과 가장 다른 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후보가 제시하는 기본소득 공약을 실현하려면 연 26조원이 드는데, 이건 통장에 꽂혔다가 사라지는 돈”이라며 “이 돈으로 2600만원짜리 일자리를 만들면 100만개짜리 고용 창출 효과가 생기고, 여성 고용 확대로도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안상훈 교수는 이날 사회적금융포럼과 사회연대공제 활성화 추진 기관이 주최한 '사회적금융 활성화 정책 간담회'에도 참석했다.
안상훈 교수는 이날 사회적금융포럼과 사회연대공제 활성화 추진 기관이 주최한 '사회적금융 활성화 정책 간담회'에도 참석했다.

“법 제정보다는 규제 완화”

안 교수는 사회서비스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훨씬 커질 거로 전망했다. 그는 “지금도 간호·간병이나 보육 영역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틈새를 메우는 수준”이라며 “사회서비스가 대폭 확대된 복지국가에선 주류로 올라설 수 있다”고 말했다. 규모화와 혁신을 이루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거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사회적경제가 정부·정치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지낼 때 지금과 똑같은 이유로 사회적경제 관련 내용을 국정과제에 녹이고 학교에 복귀했는데, 정부 출범 초반에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 사회적경제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는 등 분위기가 긍정적이었지만 이후 정치논리에 휩쓸리면서 정쟁화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사회적경제 모델이 성공하려면 정치화되면 안 된다.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는 역량을 보여주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는 “법을 새로 제정하기보다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적경제기업이 정부 규제에 부딪힌다면 규제 혁파를 이야기해야지, 따로 법을 만들고 지원하는 방식을 찾는 건 학자의 시선으로는 좋은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법을 ‘가두리 양식장’에 비유하며 “법을 만들면 그 안에서 경쟁이나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울 거고, 결국 관료화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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