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기본법', 사회적경제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근거법이다.

오랫동안 사회적경제 종사자들에게 희망과 절망을 안겼다. 시계를 돌려보자. 2014년 4월 30일, 유승민 의원이 19대 국회에서 같은 당 66명과 함께 기본법을 발의한다. 유승민? 맞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당시 새누리당 소속이다. 의외로 보수여당이 선봉에 서고 10월에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65명도 동명법안을 발의했다. 정의당 법안까지 포함하면 참여의원만 142명이었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된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꼽았다. 정부의 적극성이 오히려 독이 됐을까. '여당법'으로 치부됐는지, 20대 국회의 여소야대(민주당 123석) 구도 속에 발의된 3건 모두 임기만료 폐기. 

2020년 4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함께 180석을 차지한다. 국민의힘은 5건이 발의된 기본법에 박성민 의원 외에는 한 명도 이름을 안올리며 완전히 돌아섰지만, 집권여당의 압도적 의석 덕분에 현장의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결과는? 2021년 공청회 한 번 열린게 전부다.

지난 연말 한줄기 희망이 보였다. 기본법을 포함한 4개 법안이 기획재정위 안건조정위원회에 상정됐다. 1월 4일 2차 조정위에서 통과된건 이재명·윤석열 두 대선후보가 강조한 노동이사제 관련 법안 뿐. 나머지는 들러리였다. 한 달 남은 대통령 선거가 이슈의 블랙홀이 돼버린 지금, 후속 조정위 개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조정위는 최대 90일 동안 법안을 심사한다. 대선 일정과 관계 없이 3월 안에는 결론을 낼 것이다. 하지만 노동이사제 법안과 언론중재법의 예에서 보듯 조정위는 근본 기능인 '숙의(熟議)' 대신 '상위권력 의사반영'에 활용되기도 한다. 기본법 제정 논의가 대선 결과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의미다.

법 제정은 신중해야 한다. 사회적경제기본법 역시 절대 선(絕對善)은 아니며 이견도 많을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하지만 기본법은 논의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게 문제다.

결국, 절호의 기회였던 지난 2년간 무엇을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본법 제정'이라는 2년 짜리 장편영화에는 3대 당사자가 등장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인 국민의힘, 당사자인 사회적경제조직이다. 관점에 따라 책임의 경중 판단은 다를 것이다. 다만, 기록은 정직하다. <이로운넷>이 최근 2년간 기본법 제정과 관련해 3대 당사자들이 했던 발언과 행동을 모았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아울러, 영역별 사회적경제 전문가들이 기본법 통과를 촉구하며 보내온 칼럼을 함께 게재한다. 기재위 안건조정위원회에 주어진 남은 2개월 동안 상위권력의 눈치를 보는 대신 원래 취지대로 법안 자체에 대한 숙의를 이어가길 바란다.

<기본법 통과 촉구 칼럼>

사회적경제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낼 기본법

한국 사회적경제의 초석 놓는 기본법

사회적경제기본법 이후 소셜벤처는 어디로 갈까

사회적경제기본법 통과시 '사회성' 회복할 금융

자활기업도 사회적경제기본법이 빨리 제정되기를 희망한다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으로 건강한 생태계 만들어야

디자인=송민수 소셜에디터(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포스터를 일부 변형)
디자인=송민수 소셜에디터(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포스터를 일부 변형)

무시하는 者 - 국민의힘

질의서를 보내도 안건조정위원회를 열어도 미동조차 없는 국민의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국민의힘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사회적경제기본법에 관한 사항은 말을 최대한 줄이고 요청에도 응답하지 않는다.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2021년 6월 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자 나경원·이준석·조경태·주호영·홍문표에게 사회적경제기본법 및 관련법 제정에 대한 공개 질의서를 배포했다. 시민행동은 같은 달 7일까지 회신을 요구했으나 5명의 후보자 중 답변을 보내온 후보는 없었다.

2021년 12월 31일 제1차 안건조정위원회가 열렸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을 포함한 4개 법안은 모두 상정됐지만 조정위원은 다 모이지 않았다. 6명의 조정위원 중 국민의힘 위원인 배준영(인천 중구 강화군 옹진군), 서일준 의원(경남 거제시) 2명만 불출석했다. 나머지 4명의 위원이 법안 검토만 진행했다. 국민의힘 기재위 간사인 류성걸 의원실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애초에 조정위 안건도 여야 협의 없이 민주당 마음대로 올렸던 거고, 회의 일정을 정한 것도 거의 통보식이었다”며 “조정위 개최에 관해 야당 간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크게 없다”고 전했다. 이후 열린 2차 조정위에서 노동이사제 관련 법안만 처리한 이후 한 달째 후속 조정위 개최 소식은 없다.

이에 앞서, 2021년 3월에 열릴 것으로 기대했던 공청회도 3달여가 지난 6월 15일 열렸다. 이로운넷이 3월 류성걸 의원실과 통화해 문의한 결과 “공청회 날짜를 잡은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2020년 11월 23일에 진행된 제382회 기획재정소위 제6차 회의에서 “계속적으로 이 사안(사회적경제기본법안)에 대해서는 논의를 하도록 하면서 공청회 이후에 세부적인 사항을 더 논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기획재정소위 소위원장 류성걸 의원의 발언과는 대조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2021년 6월 열린 공청회에서는 진술인 4명이 모두 큰틀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제정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지만,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과 조해진 의원 등은 사회적경제조직의 정치세력화와 정치적 편향성을 우려하는 등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래도 당시에는 공청회라도 열려서 다행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공청회가 논의의 끝이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5일 사회적경제 기본법안 공청회를 개최했다./출처=국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5일 사회적경제 기본법안 공청회를 개최했다./출처=국회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법안을 살피고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있다면 희망은 있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이 건강한 논의를 거쳐 발의되려면 아예 무시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 참고자료: 사회적경제기본법에 대한 국민의힘 주요 발언 및 행동 원문 모음

 

말만 하는 者 - 더불어민주당

지난해 초부터 계속된 "기본법 통과" 약속... 임기는 끝나간다

“사회적경제가 지금까지 확산되고, 성장해왔다. (...) 21대 국회에서는 사회적경제 기본법을 통과시켜 사회적경제 근거법을 만들겠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사회적경제연대포럼 발족식 (2020. 10. 28)

“한국 정부는 사회적경제를 더욱 성장시켜나가겠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위해 사회적경제 기본법 등 ‘사회적경제 3법’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문재인 대통령, 제33차 ICA 개회식 축사(2021. 12. 01)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사회적경제를 강조했다.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키고, 활성화 계획 등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그에 비해 사회적경제 입법 논의는 진척되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사회적경제 기본법을 먼저 발의한 것도 민주당이다. 2020년 7월 14일, 윤호중 민주당 의원이 가장 먼저 대표 발의했다. 이를 필두로 2022년 2월 기준, 총 5개의 기본법 중 4개가 민주당이 발의한 법안이다. 

사회적경제 현장은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에 조속한 법안처리를 촉구했다. 민주당도 이에 화답하듯 법안처리 구체적 시한을 정하는 발언들을 해왔지만, 말뿐이었다. 

지난해 1월에는 이낙연 당시 당 대표가 당·정·청 회의에서 “2월 임시국회에서 사회적경제 기본법을 차질없이 처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김태년 당시 원내대표와 윤후덕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등도 함께 했다. 당·정·청이 뜻을 함께한 셈이다. 하지만 2월 임시국회에서는 소관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2020년 2월 열린 더불어민주당 사회적경제위원회 출범식, 2020년 3월 총선 전 더불어민주당과 연대회의가 연 '사회적경제 공약전달식,' 올해 1월 28일 열린 ‘사회적경제 활성화 및 입법 추진 당·정·청 회의,’ 2월 24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사회적경제위원회 출범식. 각 행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사회적경제기본법 입법 노력을 약속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2020년 2월 열린 더불어민주당 사회적경제위원회 출범식, 2020년 3월 총선 전 더불어민주당과 연대회의가 연 '사회적경제 공약전달식,' 올해 1월 28일 열린 ‘사회적경제 활성화 및 입법 추진 당·정·청 회의,’ 2월 24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사회적경제위원회 출범식. 각 행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사회적경제기본법 입법 노력을 약속했다.

기약없는 약속은 하반기에도 이어졌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지난해 6월 “기본법이 통과되지 못해 죄송하다”며 “야당과 함께 처리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고, 김영배 당 사회적경제위원회 입법추진단장 역시 “올해 정기국회(9월) 전에 반드시 사회적경제 관련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이후에도 약속은 “올해 안에 처리”로 바뀌었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대선후보까지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를 맞아 “기본법을 신속처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지난해 12월 8일에는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사회적경제 기본법을 비롯해 △공공기관 사회적가치 실현법 제정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 개정안(이하 공운법 개정안) 등 4개 법안을 상정·논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통과에 합의한 노동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운법 개정안’만 처리한 채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현장에서는 “사회적경제 기본법은 노동이사제 통과를 위한 들러리였나”는 반응이 나오는 실정이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 전, 사회적경제연대회의와 사회적경제활성화전국네트워크가 후보자들과 진행한 ‘사회적경제 매니페스토’에 서약한 당선자 47인 중 46인이 현재 민주당 소속이다. 이번 임기가 끝나기 전에는 과연 기본법 통과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 참고자료: 사회적경제기본법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주요 발언 원문 모음

 

힘없는 者 - 사회적경제조직

사회적경제 현장은 계속 외쳐왔다 “사회적경제 기본법을 제정하라”고. 그러나...

사회적경제 현장은 꾸준히 사회적경제 기본법 제정을 요구해왔다. 사회적경제 연대체인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를 필두로 성명서 발표, 토론회 개최 등 기본법 통과를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법을 제정해야하는 여야 국회의원들은 눈길을 주지 않는 분위기다.

연대회의는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녹색당 등에 사회적경제 공약을 전달했다. 기획재정위 소속 국회의원 26명에게 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메일을 발송하는 온라인 캠페인도 진행했다. 또 국회와 연대회의, 전국사회경제연대 지방정부협의회 등과 함께 사회적경제연대포럼을 발족하며 기본법 통과 의지도 다졌다. 당시 <이로운넷>에도 영역별 사회적경제 주체 10명이 사회적경제 기본법이 통과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릴레이 기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전남, 전북, 충남, 충북, 강원, 제주 등 각 지역에서도 기본법 제정 촉구 움직임은 이어졌다.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특별결의문을 채택 등의 방식으로 기본법 제정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당시 강원도 사회적경제 단체와 시의원들은 “사회적경제 기본법은 2016년 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고 21대 국회에서도 5건이 발의됐지만, 심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크게 비판하며 “사회적경제는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다. 미래의 주인인 청년들이 사회적경제를 통해 자신과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길 희망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지역들 역시 같은 주장을 하며 기본법 통과에 한 목소리를 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6월 국회 기획재정위가 개최한 공청회에서 진술인 전원이 기본법 제정의 필요성을 큰틀에서 공감하자, 사회적경제 현장은 일부 세부 내용만 다듬으면 당장이라도 기본법이 통과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걸었지만 상황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지속적인 활동에도 기본법 제정이 난항을 겪으면서 일부에서는 “너무 민주당 의원들에게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략적 측면의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연대회의를 주축으로 조직된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지난해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였던 나경원·이준석·조경태·주호영·홍문표 후보에게 사회적경제 관련법에 대한 찬성여부와 반대 시 이유를 질문했고, 다른 국민의힘 의원에게도 지속적으로 접촉을 시도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국민의힘이 꿈쩍도 하지 않자, “사회적경제는 돈도 없고 줄 수 있는 표도 없으니 국회의원들이 관심이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이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이다./사진=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이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이다./사진=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지난 연말 기본법이 안전조정위에 상정된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자 연대회의는 “2월 임시국회에서 제정이 되지 않는다면, 800만 사회적경제인은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법 제정에 미온적인 정당들을 투표로 심판할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800만 사회적경제인' 이라는 유권자 그룹을 중요한 공략대상으로 간주할만한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 지난 8년간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경제 현장의 목소리가 입법기관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 참고자료: 사회적경제기본법에 대한 현장의 주요 목소리와 행동 원문 모음

 

사회적경제기본법 발의 역사
사회적경제기본법 발의 역사 / 디자인=정재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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