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마지막 주 주말판 조간신문들에 실린 1면 머릿기사. 안산 선수의 양궁 3관왕 소식과 함께 외신들이 바라 본 한국의 젠더갈등을 비중있게 다뤘다.  / 사진= 백선기 에디터
7월 마지막 주 주말판 조간신문들에 실린 1면 머릿기사. 안산 선수의 양궁 3관왕 소식과 함께 외신들이 바라 본 한국의 젠더갈등을 비중있게 다뤘다.  / 사진= 백선기 에디터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비뚤어진 시선이 도쿄 올림픽에서 국가적 망신을 샀다. 스무 살 안산 선수가 양궁 3관왕에 올라 올림픽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 날이다. 로이터, AFP 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메달 소식과 함께 안산 선수를 상대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페미니즘‘ 논란을 비중 있게 다뤘다.

논란을 촉발시킨 건 어처구니없게도 안 선수의 짧은 머리 (쇼트 커트)였다. 한국의 일부 남성 네티즌들이 “과거 안산이 소셜미디어에 남성 혐오 표현을 썼다”면서 “짧은 머리가 급진페미니스트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안 선수가 금메달을 반납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대한 외신들을 반응은 냉소적이다. AFP 통신은 “한국은 세계 12위 경제 대국이지만 여성 인권이 취약한 남성 중심의 사회”라고 꼬집었다. 영국 BBC의 로라 비커 서울 특파원은 “안산이 온라인 학대(Online abuse)를 당하고 있다”면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선 페미니즘이 더러운 단어가 돼버렸다”라고 말했다.

나는 로라 비커 특파원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인권의 상징이 아니라 극단적인 혐오의 단어로 취급받고 있다. 일부 극단적인 남성 커뮤니티와 정치권에서 페미니즘을 왜곡해 변질시킨 까닭이다. 물론 여성도 이 부분에선 자유로울 수 없어, 서로를 향한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젠더 갈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오죽하면 어떤 이들에겐 올림픽 금메달이 주는 가슴 뭉클함 보다 특정 선수의 헤어스타일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 이런 분위기를 틈 타 요즘 정치권에서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나도 여자이지만 최근 여가부가 보여준 일련의 짜증 나는 발언들과 비겁하게만 보였던 침묵들이 화를 돋우게 한 건 맞다. 하지만 이는 그 조직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일 뿐 그 조직의 필요성마저 부정하는 건 아니다.

초선의 청년 정치인들이 미숙함으로 실수를 좀 했다고 해서 , 혹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라고 뽑아준 여성 정치인들이 제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이들의 필요성마저 부정해서는 안 되는 이치와 같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달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를 주제로 90쪽짜리 보고서를 펴냈다. 제목은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이다. 피해자 12명을 심층 인터뷰해 이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 여성들은 낙인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고 자살을 고려한 이들도 있었다. 일부는 결국 한국을 떠났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권익이 향상됐다고 하지만 여성이 사회적 약자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대한민국에 차고 넘친다. 여성 취업률과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최하위 수준이고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은 여성의 수가 남성보다 3배나 많다는 보고도 있다.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모아서 전달해 줄 통로가 미흡하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대표성을 갖고 대신 싸워 줄 선수가 없다면 그 문제는 공론화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심지어 뒷걸음질 치게 된다.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는 정책과 법 제도가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가부 폐지가 젠더 갈등의 해답이 될 수는 없다. 페미니즘은 여성 우대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다. 성 평등 가치를 확산시키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 문제를 전담하는 정부부처는 반드시 필요하다

“여가부 장관은 정치인이나 대선 캠프 인사에게 전리품을 주는 자리다”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에 맞서 그 오명을 씻어 낼 제대로 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국민 밉상으로 찍힌 여성가족부가 스스로 한계를 깨고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나이지리아 출신 여성 작가 치마만도 온고지 아다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는 테드(TED)에 출연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페미니즘의 정의는 여성에게만 국한 된 건 아니다.

“남자, 여자가 아니라 각각의 개인으로서 존중받고 그것을 통해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