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를 벗어난 휴식과 여가가 강조되는 세상이다. 많은 사람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긴다. 여가에는 가족과의 시간을 더 보내는가 하면 운동, 취미 등의 일을 제외한 자기 계발에 힘을 쏟는다. 각종 취미와 운동에 몰두하며 전문성까지 갖추는 사람도 많다.

필자가 있는 연구직은 이전부터 워라밸과는 거리가 멀었던 직종이다. 어느 나라든 연구직 종사자는 항상 일에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예전에는 연구원을 상상하면 늦은 시간 혹은 주말까지 연구실에 앉아 연구하는 괴짜 같은 모습을 떠올릴 정도로 연구에만 몰두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지금도 학계에 끝까지 남고자 하는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나 박사후연구원은 자기 일상을 희생하고, 휴식을 뒤로 미룬 채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하곤 한다.

이는 연구의 근본적인 속성에 높은 경쟁이 더해져 생긴 결과다. 필자가 연구하는 생물학 분야로 예를 들어보면, 세포는 내 휴가나 주말을 신경 쓰지 않는다. 언제나 꾸준히 자라고 주기적으로 영양소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주말에도 안정적인 먹이를 공급하기 위해 연구소에 출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연구 주기에 개인의 일정을 맞춰야 하는 일은 연구주제에 따라 편차는 있을지언정 빈번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10여 년 전부터 떠오른 박사 인력 포화 현상도 이제 보편화한 사회 문제다. 고급 연구인력을 흡수할 안정적인 직종이 한정적이다 보니 교수 자리와 같은 바늘구멍보다 비좁은 문을 뚫기 위해 젊은 연구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 휴식 없이 연구에만 몸을 내던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연구실 바깥의 삶을 강조한다. 2017년 세계적인 의학 잡지 란셋 에서는 ‘#MedSciLife’라는 해시태그 아래 역동적인 연구 환경을 증진하기 위한 캠페인을 소개하는 특별 편을 실었다. 의·생명 학계의 여러 학자가 자신들이 걸어왔고 또 걸어가고 있는 과학자의 삶을 소개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소개하는 것이 특히 젊은 연구자들에게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학자마다 걸어온 길의 모습은 달랐으나 모두가 연구실 바깥 생활에 대해서는 공통의 의견을 냈다. 모든 순간 삶과 일의 균형을 지키고 살 수 없고, 짧은 특정 시기에는 일에 집중하더라도 연구 이외의 삶을 일만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킹스 컬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로버트 레흘러 교수(Professor Sir Robert Lechler)는 그의 삶이 일에 지배당한 시기를 위태로웠던 순간으로 회상했다. 그 당시 자신이 건강하지 않다고 느꼈다고 한다. 여행을 가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환상적인 예술작품을 보는 활동들이 그의 과학에 대한 통찰력과 유머 감각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됐다. 그에 따르면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오래 일하려는 유혹과 다른 관심사는 삶에서 제외하려는 욕망은 근시안적인 접근이다. 일에서 벗어난 시간은 창의력을 길러내고 참을성을 기르며 새로운 시각을 지닐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 밖에도 연구실 바깥의 삶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은 우리의 삶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라는 대전제는 가장 본질이다. 연구실 바깥의 삶에 어쩔 수 없이 일정 시간 이상을 쏟아야 하는 사람들, 예컨대 아이를 키우는 부모, 출산을 앞둔 여성, 홀로 육아를 해야 하는 한부모 가정의 아버지 또는 어머니와 같은 연구자들이 다양하게 섞인 연구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도 연구실 바깥의 삶을 존중하고 지원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오늘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다학제간 연구가 활발하고 협업 연구가 필수가 된 상황에서 연구실 내 다양성을 높여 나가려는 모든 활동은 환영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런 이유는 경쟁 상황에 놓인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한가하거나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이건 어떤가? 2017년 네이처에는 ‘휴식 아니면 번아웃(Break or burn out)’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쉬지 않으면 번아웃을 맞이해 일의 능률과 커리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일에서 벗어나 적절히 휴식을 취하는 것은 스트레스와 우울감, 그리고 그에 따른 생산성 감소와 삶의 붕괴 등의 결과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원생은 일반인보다 우울증, 불안장애를 경험할 확률이 6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관련기사: [과학하는 여자들의 글로벌이야기] 26. 우울한 과학자) 성공보다 실패가 일상인,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 놓인 대학원생과 연구자들에게 적절한 휴식 방법과 여가 활용법을 제시한 칼럼과 조언들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연구자들이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인식한 세계적인 연구소들에서는 연구자들의 정신 건강 상담을 상설함과 더불어 적절한 휴식을 취하도록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휴가 일수가 너무 많이 남은 연구자들과 그 지도 교수에게는 인사부(HR)에서 휴가를 가도록 하고 지키지 않으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해 불이익을 준다. 이에 더해 몇몇 연구소에서는 여가나 일터 바깥에서의 활동을 권장하기 위한 여러 지원도 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소에서는 코로나 시국으로 현재는 중단되기는 했지만 매주 금요일 ‘소셜아워(social hour)’라는 시간을 마련해 연구실마다 돌아가며 연구소에서 지원하는 돈으로 음식과 음료, 술 등을 사 연구소 내 모든 이들과 작은 파티를 즐기도록 했다. 가족 친화적인 연구 문화를 위해 아이들과 가족들이 참여하는 행사를 주기적으로 열기도 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온라인으로 가능하다면 요가, 필라테스 등 레저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해 왔고 최근 백신 접종인구가 늘고 코로나19 감염 상황이 나아지자 야외에서 가능한 레저 프로그램 수를 다시 늘려가고 있다. 연구소는 이런 레저 프로그램을 단지 만드는 걸 넘어 원하는 레저를 연구자들이 직접 등록하고 이끌게 하는 등 연구자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금전적인 지원도 한다. 이러한 연구자들의 정신 건강을 증진하려는 노력이 더 많은 연구소와 대학에서 문화로 자리잡았으면 한다.

6월의 한 주말, 오스트라이 빈 도나우(Donau) 강가의 모습. 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수영과 선탠을 하며 휴식을 즐기고 있다. 필자도 더운 날씨에 친구들과 시원한 강가로 나가 연구실 바깥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개인으로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지만, 연구직 또한 높은 직위에 오를수록 책임은 늘어나고 할 일은 끝이 없는데 시간은 한정돼 있다. 이에 창의적인 연구주제를 생각해 내고 성격과 직종이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까지 해야 한다니 스트레스가 항상 함께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니 지금의 위치에서 더 안정적이고 높은 직군으로 승진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이라면 그 위치에 오르기 전 어느 단계에서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이를 관리할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필자는 대학원 시절 큰 번아웃을 겪고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연구실에서 떠나 일상을 살았던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매우 힘들었지만, 졸업이 가까워진 시기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주기적인 운동을 시작한 발판이 되었고 현재에도 아무리 바빠도 규칙적인 운동과 일주일 중 최소 하루 휴식은 항상 지키고 있다. 운동 시간과 휴식 시간까지 할애해 연구에 몰두하기란 내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연구자가 연구실 바깥의 휴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속가능한 자신만의 워라밸을 만들어 가기를, 이조차 하나의 연구 문화로 자리 잡히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참고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883889

Lancet 389, S1 and S2-S8; 2017

https://doi.org/10.1038/nj7654-37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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