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벤처 마리몬드가 사과문을 냈다. 발단은 "마리몬드는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브랜드가 아닙니다"라고 적힌 24일 자 SNS 게시물이었다. 소비자들은 놀랐다. 마리몬드는 영업이익 일부를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쓰기 때문이다. 게다가 할머니들에게 헌정하는 꽃 패턴으로 패션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리몬드의 취지는 인식 개선이었다. 할머니들은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분이 아니라고, 다음 세대를 위해 행동한 위대한 인권운동가이자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다.

사회적경제기업은 각자의 소셜미션을 갖고 있다. 이 소셜미션은 마리몬드처럼 사람을 향할 때가 많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홈리스의 빈곤 탈출, 보호종료아동의 자립, 장애인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하다. 다만, 그 소셜미션을 ‘한쪽이 다른 한쪽을 돕는다’는 의미로 읽을 때 문제가 생긴다. 도움을 받는 한쪽은 나약하고 힘없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셜미션이 사람을 향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건 아니다. 사회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주체로 인정해야 하는데, 아직 우리 사회는 도움을 주는 기업과 받는 사람으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둘 중 하나가 우위에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대상화하는 태도는 사회공헌 기사에도 자주 보인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나 기관이 “소외계층”에 돈이나 물품을 기부한다고들 한다. 기사를 읽을 당사자들을 생각하니 조금은 불편해졌다. 그들은 자신이 소외계층이라는 단어로 범주화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을 느낄까?

마리몬드가 부연설명을 위해 25일 올린 게시글의 사진./출처=마리몬드 인스타그램 갈무리
마리몬드가 부연설명을 위해 25일 올린 게시글의 사진./출처=마리몬드 인스타그램 갈무리

“이분들은 도움이 필요한 위안부 할머니 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아닌, 피해를 극복하고 헤쳐 나와 인권 운동을 해오신 일본군’위안부’ 생존자입니다. 그리고 이 운동의 객체가 아닌 주체입니다.”

마리몬드가 부연설명을 위해 올린 SNS 게시글의 한 부분이다. 행간에서 그간 마리몬드가 해왔을 고민이 보였다. 말장난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마리몬드가 ‘피해자’라는 단어를 ‘생존자’로 바꾸고, ‘돕는다’는 표현을 지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마리몬드는 할머니들과 연대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다. 무의식적으로 할머니를 불쌍한 사람 취급하는 외부 시선이 불편했을 거다. 다만 첫 게시글에서 충분한 설명 없이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로 혼선을 빚었다는 점을 인정하며, 정정 및 보완 게시글과 함께 공식 사과문도 올렸다.

사회적경제기업의 소셜 미션이 향하는 사람들. 이들의 정체성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규정한다면 곤란한다. 시혜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좋은 마음'을 갖고 있더라도, 무의식중에 나와는 다른 집단으로 동정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누군가를 대상화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마리몬드의 고민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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