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를 중심으로 '사회적 은행'을 설립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회적경제 종사자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은행을 만들자는 거다. 자조기금이나 공제기금보다 더 큰 개념이다. 은행의 형태로는 '단체신협'을 추진한다.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설립동의자를 모집 중이다. <이로운넷>은 사회적 은행으로서의 단체신협 설립이 필요한 이유와 그 의미를 소개한다.

사회적 금융기관인 '신나는조합'에서 일한 지 1년이 됐다. 신나는조합은 금융사업에 필요한 자금 대부분을 공공영역에서 조달하고 있다. 정부 정책 자금 융자는 일면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은 무척 약하다. 정책 변화와 정치 환경 변화에 자금 조달의 안정성이 달렸기 때문이다. 필자의 고민은 신나는조합의 금융사업 지속성에서 시작해 사회적 금융의 지속가능성으로 확대됐다. 

사회적 금융의 기본 기능은 제대로 된 사회적경제기업에 융자하고 투자하는 거다. 사회적경제기업과 종사자들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받고, 사회적 금융 서비스를 경험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단순히 금융 서비스를 받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후관계 속에서 사회적경제기업의 정체성을 자연스레 되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금융은 우리가 필요해서,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가 사용하는 공공재여야 한다. 신뢰, 네트워크, 규범 등 '사회적 자본'이라 불리는 자원을 바탕으로 사회적경제 내부를 튼튼히 하는 거래가 일어나야 한다. 지금은 사회적경제의 금융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시중은행에서 다 가져가고 있다. 사회적 은행으로 이를 내부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회적 은행은 내부거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상호금융제도여야 한다. 

대표적인 민간 상호금융제도는 '신용협동조합'이다. 신용협동조합은 분명히 사회적 금융의 성격이 있지만, 상호성의 유대 범위가 지역으로 한정돼있다. 사회적 금융 역할에 한계가 있던 이유다. 사회적경제기업이 지역신협에 이러저러한 요구와 연대를 요청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역신협의 주 역할은 지역조합원의 권익증진에 부합하는 사업을 하는 거다. 사회적경제가 신협 제도를 사회적 금융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면 사회적경제 주체들을 조합원으로 하는 신협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2월 23일 열린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단체신협 실무단 회의 현장./출처=사회적경제 단체신협 특별위원회
지난 2월 23일 열린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단체신협 실무단 회의 현장./출처=사회적경제 단체신협 특별위원회

2020년 봄. 전국 사회적경제 주체들을 모은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가 사단법인을 결성하면서 전국 단위의 단체 틀을 형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단체신협에 대한 가능성이 열렸다. 사회적경제는 시장과 정부와는 다른 제3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나, 법인격을 갖게 돼 신협법에서 요구하는 유대범위와 그에 따른 설립요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산하 사회적금융위원회에서는 이를 기회로 일 년간의 논의와 숙고를 통해 사회적경제 신협을 사회적경제 주체들에게 제안하는 단계까지 왔다.  

신협 설립은 쉽지 않지만, 가장 유력하다. 다른 금융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신협의 역사성과 철학은 그 어떤 금융 제도보다 '사회적경제'답다. 현재의 한국 사회적경제가 사회적 금융을 논의한다면 신협이 가진 사람 중심의 유대와 지역과의 연대를 우선 학습하고 경험해야 한다. 

사회적 금융기관 좋으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 혜택은 금융 상품을 이용할 사회적경제 주체에 돌아간다. 사회적경제 주체라면 '내가 이용할 은행'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함께 나서야 한다. 설립부터 참여하고 연대하자.

문성환 신나는조합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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