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rt style="white"] 이현주 님의 강연을 발췌, 정리한 글입니다. 이현주 님은 목사이자 시인이며 동화 작가, 번역 문학가입니다. 《알게 뭐야》 《날개 달린 아저씨》 같은 동화를 썼고, 많은 글을 번역해 소개했습니다다. 《공동번역성서》 번역에 참여했고,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길에서 주운 생각들》을 비롯해 《꿈일기》, 《오늘하루》 같은 ?책을 펴냈습니다. ?달펴냄 <작은것이 아름답다>와 맺은 인연으로 5년 동안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라는 꼭지에 글을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충북 충주시 엄정면, 다정한?뒤뜰이 환하게 보이는 집에 머물며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고 있다.?[/alert]

다른 생각?다른 세상

우리가 입과 귀로 소통하는 거 말고, 가능하면 마음과 마음, 가슴과 가슴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작은 소망이 있는데,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진심으로 모두가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저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행복하시라는 얘기 아닙니다. 내가 누구를 행복하게 해줄 실력이 없어요.

총각 처녀들이 결혼할 때 ‘나하고 결혼해줘,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이런 얘기를 요즘도 하나? 난 했어요. ‘물질로 호강은 못 시키지만 마음고생만큼은 하지 않게 해주겠다.’ 그땐 진심이었어요. 그런데 한 십 년 지나고 아내가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는 걸 엿들었어요. ‘저 사람하고 결혼해서, 물질이 풍요롭지도 못해서 고생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10년 동안 참 마음고생 많이 했다.’ 난 마음고생 시킬 생각 요만큼도 없었어요. 잘 해주고 싶었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요.?그런데 그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함께 있는 지금 여러분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는 것이에요. 되든 안 되든 어떤 소망을 갖고자 하는가, 그건 내 마음이죠. 누가 날 대신해줄 수 없어요. 하지만 어떤 소망을, 소원을 내가 품고 사느냐는 굉장히 중요해요.

착각의 두께를 넘어?새로운 생각을 심고 살아가기

미국 큰 병원의 어떤 의사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논문을 썼어요. 자기 죽음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인터뷰한 거예요. 그 가운데 하나가 자기가 한평생 살다가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 시점에서 가장 후회되는 게 뭔가 물으니까,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별거 아닌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살았다.’ 그게 제일 많았어요.

죽음을 앞두니까,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데, 그땐 죽기 살기로 너무 진지하게 사느라 인생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 같다.’ 그걸 제일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고 있더래요. 글을 쓴 의사도 읽는 사람들에게 나중에 죽을 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 즐길 수 있을 때 충분히 인생을 즐기라고 충고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동감합니다. 살면서 아주 절박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난처한, 앞이 꽉 막힌 것 같은 그런 상태에 빠져본 적 있잖아요. 그런데 지나보니 별거 아니잖아요.

사실은 누구나 다 단순하게 살 수 있어요. 안 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죠. 어떤 부자가 예수한테 와서 “어떻게 하면 천국 갈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니까, “너 가진 것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한테 주고, 날 따라와라” 했거든요.

그러자 부자는 근심한 얼굴로 돌아갔다고 해요. 그 사람이 안 한 겁니까, 못 한 겁니까? 이 시대 거슬러서 살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요. 여러 가지 핑계를 대서 자기가 안 할 수는 있어요. 예수, 석가, 노자 같은 분들이 세상을 거꾸로 살 수 있다고 얘기했고 그렇게 사셨어요. 함께 가자 한 거지요. 우리도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디 선생에게 “신을 모시고 산다는 게 뭡니까?”라고 누가 물었대요. ‘모자 쓰고 또 모자 사러 가지 않는 것’, 그게 신을 모시고 사는 거래요. 모자 썼는데, 왜 또 모자를 사러 갑니까. 아주 간단하죠.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자발적 가난’이란 말을 하는 거죠. 세상을 거슬러 사는 아주 용감하고 담대한 젊은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자본주의, 그 힘에 휘둘리지 않고 얼마든지 그 논리를 벗어나서 다른 논리로, 경쟁하지 않고 살 수 있어요.

무한경쟁의 지구에서 뛰어내리기

1992년 쯤 ‘우루과이라운드’라는 걸 처음 할 때 김영삼 대통령이 텔레비전에서 “여러분 이제 우리가 무한경쟁의 시대에 들어갔습니다.” 하더라고요. ‘무한경쟁’이란 말을 딱 들었을 때 굉장히 충격 받았어요. ‘경쟁’이라는 말만 들어도 거부반응이 날 지경인데 ‘무한경쟁’이라니요. 마음속으로 ‘그래, 너나 들어가라! 정말 지구가 무한경쟁하면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 나는 지구에서 뛰어내리겠다.’ 속으로 그랬어요. 학교 다닐 때 운동회에서 뛴 것 빼곤 내가 누구하고 경쟁했던 기억이 없어요. 어떤 자리, 무슨 일을 놓고도 누구하고 다툰 기억이 없어요.

집단으로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최소한 개인은 가능하다고 봐요. 이 세상을 새롭게 바꾸고 창조해 가는 것은 떼거리가 아닙니다. 세상 구석구석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이 감도 잡지 못하는 생각을 하고 거기에 몰두하고, 누가 보든 안 보든 꿈꾸며 실천하며 움직이는 ‘이상한’ 사람들이 앞으로 세상을 아주 묘하게 만들어 갈 거라고 생각해요.

나를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하는 것

얼마를 투자하면 얼마를 건질 수 있는지 철저하게 따져서 이익이 보장될 때만 움직이는 것이 자본주의입니다. 다른 건 전혀 고려하지 않아요. 돈이 사람 위에 올라서서 조정하고 쥐락펴락하는 것이 또한 자본주의입니다. 웃기는 세상이에요. 우리가 왜 돈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하나요. 경제를 살리겠다고 한 인간이 나타나 대통령 되어, 그게 얼마나 거짓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를 국민들에게 여실히 가르쳐줬죠.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누가 말하면 절대 믿지 마세요.

나를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에요. 그런 것들을 우리가 고생을 많이 하고 값을 치르면서 배운 거죠. 경제, 돈이라고 하는 것이 세상을 지배하게 놔둘 수는 없어요. 돈 눈치 안 보고 충분히 잘 살 수 있어요.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말라’ 예수가 그랬잖아요. 가난한 사람들한테 한 말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부자들한테 한 말 같기도 해요. 너무 먹을 게 많아서 뭘 먹어야 할지 몰라요. 옷장에 옷이 너무 많아서 이거 입었다 저거 입었다, 옷 고르느라 두 시간이에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이 많아요.

뭘 하려는데 돈이 없으면 그만두고 꼭 안 해도 돼요.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세상에 없어요. 착각이에요. 그렇게 살아갈 수 있거든요. 내가 할일이 무언지 알아보고,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재밌겠다, 세상에 해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면 하는 거예요. 돈 없으면 있을 때까지 미루고, 그게 자연이에요. 사람도 자연이거든요. 그러니 자연 법도대로 살면 그게 천국이에요.

몸, 가장 위대한 스승

틱낫한 스님이 쓴 글에 그런 얘기가 있어요. 벽에 그림을 걸려고 망치로 못을 박는데 자기가 잠깐 다른 생각을 했는지, 망치가 자기 손가락을 때렸어요. 팡 하고 때리는 순간, 오른손이 망치를 내던지고 왼손을 콱 움켜잡더라는 겁니다. 왼손이 오른손을 뿌리치면서 넌 왜 일을 그렇게 하냐고, 안 그러더라는 거예요. 사람도 그렇게 살라는 거예요. 왜냐면 저 사람하고 나는 다른 인간이 아니라 한 몸이니까요. 우리 몸이 하는 거 잘 봐요. 무궁무진으로 배울게 많아요.

몸이 스승이에요. 여러분은 최고로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다니는 겁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사물의 이치를 알 수 있어요.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이 있죠. 사물과 하나 될 때까지 깊이 연구하고 들여다보면 거기에서 우주와 인간이 살아갈 도리를 다 발견한다는 것이거든요.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며칠 전 라디오를 들으면서 자본주의 진수를 느낀 적이 있어요. 손석희 교수 ‘시선집중’이란 방송인데, 여야 국회의원이 주고받으면서 토론하는 시간이었어요. 사회자가 중간에서 1분씩 주면서 지휘를 해요. 가만히 들어보니까 두 사람 다 저쪽 말을 일단 부정하고 동의하지 않아요. 무슨 얘기를 하든 잘 안 듣는 것 같아요. 듣는 건 단어 몇 개를 말꼬리 잡으려고 들어요. 듣기에 참 피곤했어요. 갈수록 시간 쫓기니까 말도 짧아지고,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져요. 그러니까 사회자도 좀 바빠지더라고요. 듣는 나도 호흡이 가빴어요. 둘 다 반박할 말은 생각났는데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게 느껴져요. 초간을 다투면서 시간에 쫓기면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토론이었어요.?그게 딱 끝났죠.

그리고 바로 나오는 게 ‘영어가 안 되면 어디로 와요. 영어가 안 되면 어디로 와요.’ 광고 방송이 나오는데 그 어조는 얼마나 여유만만한지 몰라요. 도저히 시간에 쫓길 이유가 없어요. 똑같은 얘길 네 번 반복해요.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휙 바뀌면서 여유만만하게 말이지요. 이게 자본주의 진수로구나 싶었죠. 광고방송이 본 방송을 핍박하고, 본 방송이 광고방송에 쫓기는 겁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계속 이런 세상에 살고 싶나요? 우리 애들을 이런 세상에 계속 살게 하고 싶나요. 그럼 일어납시다. 이제부터 ‘나 안 그래’, 그러면서 살아보는 겁니다. 해 보는 거예요. 그런 용감한 영혼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생물학자가 ‘적자생존’을 말하면서, 경쟁을 하더라도 ‘무한경쟁’이 아니라 꼭 일등을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경쟁은 생물학에서 최소한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없는지는 음식 자체의 맛이 아니라 그걸 먹는 사람이 정하는 거예요. 어느 큰 회사를 운영하는 분과 점심을 먹으면서 “당신은 세계를 돌면서 영업하니까 세계음식 다 먹어봤을 텐데, 어느 나라 무슨 음식이 제일 맛있냐?”라고 물었죠. 그 사람이 빙그레 웃으면서 “배고플 때 먹는 게 최고입니다.” 하더라고요. 우문현답이에요.

‘적자생존’이라는 게 뭘까요. ‘넌 태어날 때부터 수억 대 일로 태어났다’는 말 자주 하잖아요. 수 억 개 정자가 경쟁해서 하나가 위대한 승리를 거둔 것일까요? 요즘 다르게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하나가 다 뿌리쳐서 제친 것이 아니라 수억 개가 하나를 밀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가 성공한 게 모두가 성공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거예요. 왜 내가 꼭 누굴 이겨야 된다 생각할 게 뭐가 있어요. 져 줄 수 있잖아요. 모두 감동 있게 살 수 있거든요. 경쟁하고 투쟁하면 살벌해지죠. 사람들에게 축구를 몇 명이 하냐고 물어보면 11명이 한다고 대답해요. 11명이 어떻게 축구를 합니까. 상대편까지 최소한 스물두 명이 있어야 하고 심판도 있어야 하고, 구경꾼들도 있어야 해요. 자기들끼리 무슨 재미로 해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내 시선이 넓어지고 세상을 다르게 보면 경쟁자가 아예 없는 거예요. 다 협조하고 도와주는 존재지요. 내 몸의 수많은 기관들이 있는데 서로 돕는 것처럼 말이죠. 눈하고 코가 경쟁하나요? 오른쪽 귀하고 왼쪽 귀가 서로 경쟁합니까? ‘지구 모든 사람들이 한몸이다.’ 이것이 우리 스승들이 말하는 골자입니다. ‘천지와 내가 한뿌리요 만물이 나와 한몸이다.’ 그 삶의 원리에서 세상을 봐요. 그럼 맞서 싸워야 할 존재가 없는 겁니다. 다 도와주고 있고, 도움 받고 그러면서 사는 거죠.

“발전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발전이라면 더 좋아지는 거고, 그렇다니까요. 우리가 늘 그래요. 그냥 변했을 뿐이에요. 바꿔졌을 뿐이에요. 발전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옛날 사람들이 우리보다 못 살았다 생각해요. 뭐가 발전이죠? 사흘 동안 가던 거리를 한 세 시간에 가면 그게 발전인가요? 기네스북에 올라가고 그러면 잘 하는 겁니까? 소나타가 프라이드보다 정말 좋은 차입니까? 발전, 개발, 여러 단어들을 쓰잖아요. 전부 다 점검해볼 필요가 있어요. 무엇이 발전이냐. 발전이 좋은 것인가. 헷갈리죠? 아마 그러실 거예요. 이런 헷갈리는 시간이 소중한 거라고 봅니다.

“경쟁이라는 것의 순기능은 전혀 없는 걸까요?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동안 모두가 화합하고?대부분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오든 안 오든 저는 그 세상을 꿈꾸고 싶어요. 나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는 거죠. 그러니까 일단은 누구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발을 빼는 거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내가 널 도와줄게, 뭘 하든지. 난 네 편이야.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고 봐요. 집단은 불가능해요. 혼자 할 수 있는 것만큼 해보자. 안 되는 쪽으로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그걸 못 한다고 주눅 들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되는 대로 한 번 해보자.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진한 게 있겠지만 같이 고민해봅시다. 우리가 모여서 생각을 나누고 하는 것도 좋은 기회니까 절대 외롭지 않아요.

좁은 길을 간다고 외로운 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떼 지어 서로 남남으로 걷는 것과 두 사람이 서로 친구가 되어 어가는 것은 질이 다르잖아요. 이 길을 계속해서 잘 걸어가봅시다. 고맙습니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창간 16주년 특별판]
녹색+ 녹색과 인문학의 산책

1강 녹색 + 세상 다른 생각, 다른 세상 | 이현주
2강 녹색 + 철학 온갖 하찮은 것들을 위하여 | 이진경
3강 녹색 + 역사자연을 닮은 역사, 절제를 품은 시대 | 이이화
4강 녹색 + 과학1 온생명으로 산다 | 장회익
5강 녹색 + 과학2 현대 과학의 빛과 그림자 | 김명진
6강 녹색 + 문화 작고 소박한 집짓기의 즐거움 | 노은주

2012 연중 캠페인 ‘숲을 살리는 재생복사지로 바꾸세요’
푸른 알림판/읽새통신/편집실 통신/작아 알림판/편집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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