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윤병훈

집단 혹은 개인의 정체성의 해명은 이름 혹은 호칭에서 시작됩니다. 공무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대중을 '동료 시민'이라고 호칭하자 여당 정치인들도 너도나도 따라하며  세간에 입방아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동료 시민'이라는 표현에 대해 어떤이는 '여의도 문법'과 결이 다른, 신선한  접근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또 다른 이들은 '족보'에 없는 저급한 조어(造語)에 불과한 '말장난'이라고 헐뜯습니다.

시민과 국민, 동료와 동포는 (사전적 정의는 아닐 수 있으나) 함의가 다릅니다.  '국민이나 동포'는 부여 받는 것이지만 '동료나 시민'은 획득하는 것이어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국민이라면 시민은 공동체내에서 거주하며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가 난민이거나 이주노동자이더라도 국민과 구분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라는 말이 붙어다니는 민족, 혹은 동포는 국민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볼 수는 있지만 동료나 시민을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이들의 스펙트럼은 시민>동료>동포>국민>우리 순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라는 작은 단위의 집단에서부터 '시민'에 이르기까지 넓게 펼쳐진 스펙트럼상에서 보면 우리는 과거보다 한층 더 가까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외국인 거주자, 이민자, 다문화 가정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구성원의 다양성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명칭으로 '국민' 대신 '시민'이라는 용어가 적절합니다. 이로운넷과 같은 사회적경제 조직(이로운넷은 7년차 인증 사회적기업입니다)의 문법(?)에서 민족, 동포, 국민과 같은 표현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인종적·종교적·문화적·사상적·국적의 차이로 공동체 구성원을 가를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동훈 위원장이 과거의 정치인들이 자주 들먹였던 '동포 여러분'을  '동료'로,  '국민 여러분'을 '시민 여러분'으로 시의에 맞게 호칭을 정의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등 81개 이주 인권 단체는 지난 1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남 지역에서 불법 중개인에 의한 임금 착취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며 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사진=뉴시스 제공)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등 81개 이주 인권 단체는 지난 1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남 지역에서 불법 중개인에 의한 임금 착취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며 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사진=뉴시스 제공)

정부는 올해 '동료 시민'의 한 축인 이주노동자를 직접 지원하겠다며 전국 지자체의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실질적으로 기존 센터를 폐쇄했습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와 방문취업 동포 등 체류 외국인을 대상으로 고충 상담과 지원을 하던 센터가 하루아침에 폐쇄되면서 상담길이 막힌 외국인 노동자들은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정부가 외국인노동자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정착공모사업으로 개편했다고 밝혔지만 공공 중심으로 운영될 예정인 만큼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5일 '외국인근로자 지역정착 지원사업'에 선정된 지자체 9곳에 협약서를 보내 지자체가 직접 민간업체를 선정하여 지원시설을 운영하고, 노동부와 지자체가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외국인노동자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지원센터를 폐쇄하는 대신 지역정착 지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해당 지자체에 연간 2억원 한도로 최대 3년 운영비를 지원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정부가 올해 이주노동자 규모를 역대 최대인 16만5천명으로 확대하면서도 예산을 대폭 줄여 기본적인 안전장치마저 없애버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예산 규모만 대폭 줄었을 뿐 진행 예정인 사업 형태와 내용은 전년, 혹은 전정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이주노동자 인권보호와 같은 지원보다 관리로 바뀌게 되면, 전문인력은 현장을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한위원장의 정당이 배출한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기본적으로  돌봄과 같은 복지의 민간위탁,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통해 효율을 높이겠다는 '자본주의경제'를 신봉하고 또 강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를 비롯한 여러 돌봄 지원기관에 대한 예산 삭감이 정부의  '자유(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위한 '전처리 수순'으로 읽히는 대목이며,  '동료 시민'이라는 호칭이 총선용으로 들리는 이유입니다. 

가장 불행한 자들에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자주 잊습니다. 공동체에서 이주 노동자의 문제는 곧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외국인 근로자 권익보호와 인력 활용을 아우르는 정책을 한위원장를 비롯한 집권여당과 정부가 펼쳐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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