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에 가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SNS를 하다가 우연히 본 모로코의 밤하늘이 너무 예뻤다.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며 만난 동생과 대충 숙소와 교통편만 예약하고, 배낭 하나 둘러맨 채 모로코로 향했다. 
5박 6일 여행 일정 
페즈 in – 쉐프샤우엔(파란 마을) – 페즈 – 메르주가(사막) – 페즈 out

라마단 기간을 조심!
몰랐는데, 모로코에 와보니 라마단 기간이었다. 라마단이란 이슬람교의 명절로 한달 동안 일출에서 일몰까지 매일 의무적으로 단식을 하는 기간이다.  라마단은 한국의 설날처럼 무슬림에게 매우 중요한 명절이라 여행 내내 여러모로 웃기고 때로는 불편하기도 한 일들이 계속 있었다. 
"진짜 경고합니다! 라마단 기간에는 절대 웹사이트로 버스 티켓을 예매하지 마세요. 웹사이트와 실제 운행시간이 다를 수 있습니다."
버스 터미널에 가니 방금 막차가 떠났다고.. 라마단 기간이라 버스 단축 운행을 한단다. 웹사이트로 예매한 티켓도 환불이 안된다고 했다. 결국 택시를 타고 쉐프샤우엔으로 향했다. 버스 티켓도 날리고 택시비도 내야 했지만 일몰이 되자 무슬림 기사님이 먹는 라마단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대추야자 절임은 한국의 약밥과 맛이 비슷했고, 달큰한 케이크와 산미 없이 고소한 크림치즈도 맛있었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5시간을 달려 쉐프샤우엔에 도착했다. 

파란 마을, 쉐프샤우엔 
파란색을 좋아한다면 꼭 와보시길. 너무 예쁘다. 쉐프샤우엔에서 ‘파랑색’은 해방의 의미가 있다. 종교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이 쉐프샤우엔으로 이주한 뒤, 하늘과 더욱 가까워지고자 하는 종교적 신념을 담아 마을을 파란색으로 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카이 블루, 인디 블루, 다크 블루 등 다양한 파란색이 마을 곳곳에 칠해져 있어 스머프 마을 같기도 하고, 하늘을 걷는 것 같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의 집 앞에는 물그릇과 약간의 음식이 내어져 있다. 모두 동네에 사는 고양이와 강아지를 위한 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쉐프샤우엔에는 사람을 좋아하는 개냥이와 강아지들이 많았다. 
‘환상적인 조식’ 이란 말에 반해서 예약한 숙소 컨디션은 별로였고, 조식도 환상적이진 않았지만 폭신한 하늘 같은 쉐프샤우엔의 첫인상은 잊지 못하겠다. 페즈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내내 쉐프샤우엔의 푸른 골목이 나오는 꿈을 꿨다. 

 

맥도날드, 너 이제 제2의 한식이 되어라 
지난 이틀동안 제대로 된 한끼를 먹지 못했다. 페즈에서는 예상치 못한 교통편 변경에 정신없어서, 쉐프샤우엔에서는 구경하느라 바빴다. 즉, 지난 이틀 간 강제로 라마단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겠다. 페즈로 돌아온 우리는 너무너무 배가 고픈데, 곧 메르주가(사막)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기에 급하게 맥도날드로 향했다. 메뉴도 그냥 제일 빨리 나오는 치즈버거 세트를 시켰다. 우리 둘 다 햄버거를 한입 먹는 순간 눈물을 흘릴 뻔했다. 과장이 아니고 진심이다.. 해외여행 중에 한식을 먹으면 힘이 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이번엔 맥도날드가 그랬다. 아무래도 맥도날드야.. 너 이제 제2의 한식이 되어줘야쓰것다.. 

 

좀비호텔과 미용실 체험(?) 
페즈에서 메르주가까지 버스로 꼬박 10시간이 걸린다. 심지어 직행으로 운행되는 고속버스가 아니라, 꽤 많이 중간중간 정차하는 일반 버스다. 덜컹거리는 버스, 소란스러운 말소리, 띠리리리~ 띠리리~ 이국적인 아랍어 노래를 들으며 10시간을 달려 아침 7시에 메르주가에 도착했다. 픽업나온 숙소 주인 ‘핫산’을 따라 체크인을 하고, 방에서 세 시간을 내리 잤다. 푹 자고 있는 동생을 두고 조용히 나와 숙소 구경을 했다. 숙소의 시설은 정말 좋았다. 분수와 수영장까지 있는데, 주인장인 핫산부터 숙소 직원들은 묘하게 힘없이 축 늘어져 있고 눈도 감기려고 한다. ㅋㅋ 라마단이라 해가 떠있을 땐 밥도 물도 못 먹고, 밤에는 잠을 자면 안 돼서 모두 힘이 없는 거란다. 좋은 시설과 힘없는 직원들이 더욱 대비되어 보여서 인지 마치 좀비호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쨍쨍한 햇빛이 한 풀 꺾일 때쯤, ATV를 탔다. 너무너무 재밌었다. 가이드를 따라 한 시간 동안 사막을 달리는 데, 모래바람과 사막의 언덕들을 타고 내리며 느껴지는 스릴이 즐거웠다. 모래 언덕에 바퀴가 빠지는 사람도, 굴러 떨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ATV를 타기 전에 헬멧을 꼭 써야 했는데, 헬멧을 쓰기 전에 쓰는 위생모가 너무 웃겼다. “오해하지 마세요 ^^ 저희.. 미용실 온 거 아닙니다..” 

사막으로  
오후 5시, 낙타를 타고 사막의 베이스 캠프로 향했다. ATV를 타고 난 뒤에 낙타를 타서인지 처음에는 너무 느리고 엉덩이가 아팠는데 천천히 눈앞에 보이는 풍경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30도가 넘었지만, 낙타를 타며 사막에서 부는 건조한 바람을 느끼니 전혀 덥지 않았다.
우리의 가이드는 핫산의 조카이자 일 한지 4개월밖에 되지 않은 19살 ‘효신’이었다.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면 꽤 정확한 발음으로 ‘꽉 잡아요~’라고 말했고, 우리가 힘들어하면 ‘힘들어요~? 아이고~’라고 말을 건넸다. 우리 눈에는 다 똑같은 사막으로 보이는 데, 베르베르인은 능숙하게 길을 찾았다. 그들은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의 모래에서도 낙타처럼 가볍게 걸어다녔다. ‘그 비법이 뭐냐’고 물으면, ‘사하라 사막에서 사는 게 비법’이라고 답했다. 
처음에는 낙타가 무서웠는데 타다 보니 얘가 나를 떨어뜨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고, 보다 보니 귀여웠다. 효신에게 물어보니 낙타에 따로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속으로 내 낙타의 이름을 ‘타타’라고 지어주었다. 
일몰에는 사진을 찍었다. 효신과 알리가 사진을 잘 찍었다. 오렌지 빛 태양, 오렌지 빛 사막에서 찍은 사진들이 참 잘 나온 것 같다. 

 

레이라와 박용호 
어둑어둑한 저녁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따뜻한 민트차와 과자를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있으니 근사한 저녁을 차려줬다. 미트볼 같은 ‘타진’이 대표적인 베르베르인의 음식이라고 했다. 한국인을 위한 라면도 줬다. 꼬불꼬불한 사리면에 약간 향신료 맛이 나는 매운 소스를 넣은 라면인데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캠프파이어를 한다. 우리는 사막에 2박 3일동안 있었는데, 이틀 동안 스페인 친구들과 아르헨티나 모녀, 우리 또래의 한국인 친구들, 한국인 모녀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아프리카 전통 노래에 맞춰 춤도 췄다. 가장 좋았던 순간은 캠프파이어가 끝나고 사막에 담요를 깔고 누워 별을 보는 시간이다. 한국에서 보던 밤하늘과는 차원이 다르게 별이 엄-청 많이 보인다. 한국에서는 밤하늘이 늘 하나의 까만 덩어리처럼 인식됐는데, 여기선 ‘우주가 입체적인 존재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수많은 별과 별똥별만 보이다가 새벽 2-3시쯤 되면 천천히 은하수가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두시간만 보다가 자러 들어가기 때문에 은하수까지 보는 건 소수 정예의 사람들이다. 우리는 늘 그 소수정예에 들었는데, 그 소수정예의 밤이 너무 좋았다. 사하라의 모래를 칠판 삼아, 나뭇가지를 분필 삼아 핫산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핫산의 베르베르어 이름은 ‘아디’인데, 베르베르인에 대한 차별 때문에 아랍식 이름을 쓴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라도 그를 ‘아디’라고 불러 주기로 했다. 우리의 베르베르어 이름도 생겼다. 내 이름은 레이라(Leila), ‘별이 빛나는 밤에’란 뜻이다. 아디의 한국 이름도 지어줬다. ‘아디’의 뜻이 베르베르어로 ‘용감하다’를 의미한다고 해서 ‘용감한 호랑이’를 줄여 박용호라고 지어줬다. 아디는 이번 7월에 처음으로 한국에 한달동안 여행을 온다고 했다. 아디가 한국에 와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고 갔으면 좋겠다. 내가 사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Tanemmirt, Adi! (테르미르, 아디! = 고마워, 아디!)
별을 보다가 깜박 잠에 들었다. 일어나보니 아침이었다. 모래를 침대 삼아, 밤하늘을 천장 삼아 잠든 이 순간이 꽤나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모기에 잔뜩 뜯긴 것만 빼고…. ㅎ 모기야 나 그만 좋아해.. 제발.. 

우린 뜯고 뜯기는 깐부잖아~
다시 페즈로 돌아왔다. 공항으로 가기 전, 시간이 남아 페즈 시내를 잠깐 구경했다. 구경하면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건 모로코 사람들이 COOL~ 하다는 거다. 관광객을 상대로 ‘Give me money’나 물건을 파는 호객행위를 하긴 하지만 ‘우리 돈 없어~’라고 거절하면 ‘Okay~’하고 바로 돌아선다. 그리고 친절하지만 바가지는 씌운다. ㅋㅋ 길도 잘 알려주고, 성심성의껏 도와주지만 바가지는 씌우는 게 꽤 웃겼다. 페즈 시내에서 우리를 쉐프샤우엔까지 데려다 준 택시 기사님을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 기사님도 엄청 친절했지만 바가지는 씌웠는데, 그래도 고마운 점이 꽤 많았다. 페즈에서 ATM기계를 못 찾을 때도 길을 알려줬다. 아무튼 그 기사님이 본인이 공항까지 데려다 줄 테니 예약을 하라고 했고, 그동안 고마운 점도 있었기에 예약을 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택시를 타려고 보니, 더 싼 가격을 제시하는 택시가 있었다. 그래서 그냥 냅다 타버렸다.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그동안 뜯긴 돈을 생각하며,,ㅎ ‘어차피 우린 뜯고 뜯기는 깐부잖아~’를 마음 속으로 외치고 죄책감을 떨쳐냈다. 5박 6일 간의 모로코 여행이 끝이 났다. 이동시간이 길어 힘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이국적인 풍경 덕분인지 앨리스의 토끼굴처럼 환상과 가상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기분이라 여행 내내 마음이 붕 떠있었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꼭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다. 

 

이채은 씨는 이화여자대학교 4년 재학 중인 울산청년이다. 현재 독일 마인츠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다양한 경험을 통한 배움의 즐거움을 깨달아 가고 있다. 시간을 쪼개어 여행을 하며 세상과 사람들속에서 호연지기를 발산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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