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나무', 12세기, 로마 산 클레멘테 성당(Basilica of San Clemente, Rome). *생명의 나무와 나무 십자가가 겹쳐져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생명을 가져다줄 것임을 보여준다.
'생명의 나무', 12세기, 로마 산 클레멘테 성당(Basilica of San Clemente, Rome). *생명의 나무와 나무 십자가가 겹쳐져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생명을 가져다줄 것임을 보여준다.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중략)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의 유명한 구절은 인간이 생명의 본질을 알까 두려워 신이 이들을 추방했다고 전한다. 만약 선악과를 먹고 영악해진 아담이 에덴에서 추방되기 전 이미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손을 대었다면 이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실제로 추방당한 아담과 그의 자손들은 마치 생명의 본질을 알고 있기라도 하는 듯 대단히 오래 살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전통에서 1천 년을 넘게 살면 신적인 존재가 된다고 하는데, 더는 신을 자극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들은 약속처럼 900여 년을 꽉 채워가며 살았다.

바르톨로메 베르메호(Bartolomé Bermejo), '패트리아크들을 천국으로 이끄시는 그리스도(Christ Leading the Patriarchs to Paradise)', 1480년경. 아담과 이브와 함께 므두셀라가 묘사되어 있다.
바르톨로메 베르메호(Bartolomé Bermejo), '패트리아크들을 천국으로 이끄시는 그리스도(Christ Leading the Patriarchs to Paradise)', 1480년경. 아담과 이브와 함께 므두셀라가 묘사되어 있다.

아담의 8세손 므두셀라(Methuselah)까지 줄곧 오래 살자 신의 염려는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이들의 신의 말씀을 어기더니 기어이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먹고 장수의 비법을 에덴 밖으로 가져나간 것은 아닐까? 장수의 비법이 혹여 그들의 아버지로부터 구전되는 것일까? 걱정에 찬 신께서는 므두셀라의 아버지 에녹을 하늘로 홀연 데려가셨으나, 웬걸 므두셀라는 969세로 가장 장수하였다. 므두셀라 당시에 아담이 아직도 살아있었기 때문에 생명의 비법이 아담으로부터 그의 후손들에게 직접 비전되고 있었을 수 있다. 아담이 죽고 난 이후 므두셀라의 손자 노아가 태어나니, 신께서는 므두셀라의 죽음에 맞추어 대홍수를 일으키셨다. 혹여 이미 새어나갔을지도 모를 생명나무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지구의 생명 시스템을 완전히 포맷하신 것일지도 모른다. 이후 노아의 자손들은 급속도로 수명이 줄어서 900년은커녕 90년도 채 채우지 못하고 늙고 병들어야 했다.

브리슬 콘 소나무(Bristle cone Pine)
브리슬 콘 소나무(Bristle cone Pine)

무수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지금도 기어이 생명나무의 비밀을 열어젖히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대의 생명공학자들은 노화의 핵심 기제로서 염색체의 텔로미어(telomere)를 발견하였다. 염색체의 끝에 자리한 이 텔로미어는 세포분열이 진행될수록 점점 그 길이가 짧아지면서 세포를 자연스레 죽음에 이르게 한다. 마치 대홍수 이후 신께서 생명체 내부에 심어놓은 시한폭탄 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그런데 여기서 지적 탐구를 겸허히 중단할 아담의 후손들이 아니다. 텔로미어의 작동원리를 집요하게 탐구 중인 과학자들은 최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식물은 동물처럼 텔로미어에 의해 노화가 진행되지만, 반드시 텔로미어에 의해 조종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창세기의 내용처럼 생명의 정수는 나무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미국 산림청 로고.
미국 산림청 로고.

실제로 나무들은 종종 신의 시한폭탄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굉장히 오래 산다. 므두셀라 나무로 이름 붙여진 미국 캘리포니아 인요 국유림(Inyo National Forest)의 한 소나무(Great Basin bristlecone pine; Pinus longaeva)는 인간 므두셀라가 중년에 이르렀을 기원전 2833년, 즉 대홍수 500여 년도 전에 태어나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하신 대홍수로부터도 살아남은 이 나무는 태초의 생명 비법을 알고 있는 것일까? 방패로 무장한 미국 산림청(United States Forest Service)은 이 중요 자연유산의 보존을 위해 나무의 정확한 위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에덴의 생명나무는 불붙은 칼로써, 미국의 생명나무는 방패로써 인간의 접근을 금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