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락다운 당시 샌프란시스코 도심
2020년 락다운 당시 샌프란시스코 도심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20년 3월 16일,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6개 카운티는 공동으로 셸터-인-플레이스(shelter-in-place) 명령을 발표하였다. 이는 당월 19일에 발표된 캘리포니아 주의 행정명령보다도 앞서는 것이다. 이미 12일에 뉴욕주 뉴로셸(New Rochelle)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명령이 시행된 바 있으나, 이는 개인의 이동을 제한하는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실행된 이 명령은 사실상 미국 최초로 시행된 락다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생활권을 공유하는 지역단위 정부기관이 연맹을 맺고 강력한 질병통제 정책을 편 것이다. 팬데믹이 미국의 일상 전체를 뒤흔들어 놓기 시작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세계인에게 팬데믹은 공포임과 동시에 사유의 시간이었다. 매일매일 가축처럼 집에 갇혀 통조림으로 연명하며, 우리 모두는 세계화와 자본주의와 생태주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지구적 물류 유통의 문제점과 미래세대 생태계 가치에 대해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락다운 기간 동안 우리는 이 어렵고 깊은 생태학적 고민을 백신인 양 강제로 접종 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3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우리의 면역과 사유 체계에 무엇이 남았는가? 특히 가장 오랜 기간 락다운을 경험한 샌프란시스코 일대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변천을 겪은 이 지역의 원예-화훼 업종 비즈니스들에게는 과연 어떤 상처와 영광, 기억과 추억이 남은 것일까?
 지난 3년 시간 동안 샌프란시스코 일대 원예산업의 주요 동향을 비즈니스적 측면을 중심으로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꽃과 식물은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가,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 제한적 필수산업으로서 원예산업: 락다운 기간 첫해에 화훼업종은 비 필수산업으로 분류되었다. 그렇지만 야외 공간이 있으면서 식용작물을 판매하는 원예업체의 경우 일종의 식품관련 산업 즉 필수산업(essential business)의 일종으로 분류되면서 영업이 허가되었다. 때문에 그동안 심미적 목적으로 발전하던 원예산업은 전통적인 범주의 가정농업과 다시금 강하게 재결합하였다. 기후가 좋고 농업 전통이 강한 이 지역의 주민들은 식용 작물을 대거 구입하여 뜰에서 직접 재배하였고, 비료나 배양토 관련 산업 또한 대호황을 맞았다.
 
- 필수산업으로서 화훼산업: 2020년 12월 샌프란시스코는 화훼산업을 비-필수산업에서 필수산업으로 재분류하였다. 따라서 관련 산업 종사자들은 팬데믹 기간 의료나 식품 산업 등에 준하는 지위를 획득하여 보다 자율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 이는 물론 이 지역 원예산업의 오랜 전통과 고용기여 및 관련 업체의 공격적인 로비 덕이지만, 꽃과 식물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직접적이고 필수적 지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 무엇으로 어떻게 꾸밀 것인가?
 
- 도시형 홈가드닝 산업의 전방위적 대성장: 홈베이킹, 홈트레이닝, 홈데코와 더불어 홈가드닝이 팬데믹을 주도하는 소비 트렌드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다. 주거난이 심각한 샌프란시스코 도심지역은 개인 정원 소유가 불가능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가드닝을 대신하여 소규모 실내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방향으로 산업이 급성장하였다. 이에 맞추어 도시 주거공간에 적합한 실내용 음지식물, 공기정화식물 관련 수요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 차별화 전략: 기본적인 실내식물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보다 특화된 식물을 소유하고 이를 SNS에 포스팅하는 트렌드가 급증하였다. 특히 수백 혹은 수천 달러에 달하는 고가의 열대식물거래가 급과열되었다. 그래서 팬데믹 기간 고가의 희귀식물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업체들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 물류대란의 두 얼굴
 
- 준비되지 않은 식물 배송 산업: 배달산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식물을 배송하는 서비스 또한 급성장하였으나, 물류대란 등과 겹치면서 지연 배송 등으로 인한 소비자 불만이 대단하였다.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효율적인 물류-배송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온라인을 이용해 개별 식물을 미리 보여주고 판매하는 방식, 제3자에 의한 배송이 아닌 화원에서 직접 배달하는 방식은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포장과 배송 시스템을 보완한 온라인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전 미주 시장을 무대로 지금도 성업 중이다.
 
- 파국의 화분 산업: 홈데코 시장의 급증은 인테리어용 화분의 수요를 폭발시켰으나, 주로 아시아 등지에서 수급되던 해당 물품들은 물류대란의 직격타를 맞았다. 미주지역 일류 업체들의 경우에도 주문에서 배송까지 어김없이 1년 이상이 소요될 정도였다. 대신 거대 물류체인이 그다지 요구되지 않는 지역 단위 소규모 예술 공방 제품들이 호황을 맞았다. 이들은 독특한 3D 프린팅, 핸드페인팅, 핸드푸어링(hand pouring: 일정한 틀에 갖가지 재료를 흘려 넣은 뒤 굳혀 만드는 방식, 창의적 무늬의 소형 화분 제작에 적합함) 기술을 이용하여 각광을 받았다. 특히 몸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body positivity)을 담은 화분들이 큰 사랑을 받았다.
 

# 지역사회와 원예산업
 
-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공간의 탄생: 락다운 기간 전통적인 유흥공간인 댄스클럽들의 영업이 금지되고, 소규모 지역 커뮤니티를 주도하던 카페들도 영업 공간의 물리적 제한을 당하였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상대적으로 넓은 야외 공간을 가진 원예 업체들이었다. 팬데믹 이전에도 관련 업체들은 영업장 내에 자체 카페를 보유한 경우가 많아서, 식물 쇼핑과 야외활동을 겸한 공간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일부 도심지역 식물가게들은 영업장 내에 디제이들을 불러서 클럽 음악을 틀거나, 일부 공간을 카페로 변형하는 등, 복합쇼핑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인근의 젊은 소비층들을 불러 모았다.
 
- 원예형 커뮤니티의 등장: 제한된 사회활동은 원예소비를 매개로 한 새로운 형태의 지역 커뮤니티를 등장시켰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생겨난 다양한 형태의 단체들은, 주기적으로 식물벼룩시장을 열어 식물을 거래 혹은 물물교환하고, 화분 채색 등의 아트 프로그램과, 식물 관련 정보 거래 창구로도 기능하고 있다. 
 
 락다운 이래 만 3년이 지난 지금도 팬데믹은 현재진행 중이다. 비록 마스크는 벗었지만 연준의 금리인상은 미국 주요 은행의 줄도산과 불경기의 그늘을 드리우며 여전히 공포를 전염시키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지난 기억을 뒤돌아보며 다시금 지혜를 모아 살아가야만 한다. 특히 팬데믹 기간 꽃과 식물을 매개로 우리의 일상에 자리했던 자연과 지역사회에 대한 고민이 언제나 함께 하기를 바란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인 플랜트 숍 중 하나인 더 멜로우(The Mellow)는 락다운이 선포된 2020년 3월에 개업하였다. 팬데믹 시대 로컬 비즈니스의 산증인인 이 가게는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극복하여 2호점(The Mellow Haight)을 내고 현재까지 성업 중이다. 희귀식물 섹션과 아티스틱한 화분, 자체 카페를 갖춘 이 가게가 포스트 펜데믹 시대에 또 어떤 식으로 변화하며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게 될지 기대된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