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평 남짓한 공동텃밭에 심은 ‘땅콩이랑’에서 땅콩 아닌 고구마를 수확했다. 도시농부를 자처하면서 게으름을 생태농업이라고 우기며 고구마 줄기들이 땅콩 밭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땅콩이랑에서 캐낸 고구마는 원래 고구마 심은 이랑에서 수확한 그것보다 알도 굵고 개수도 많았지만, 절반정도 살아남은 땅콩에서 얻은 알은 한 종지도 채 안되었다. 무지하고 게으른 농부가 방치한 야생(野生)의 땅에서는 콩 심은 데 팥이 날 수도 있다.

고랑을 파서 고구마와 땅콩 사이에 경계를 짓는 것은 고구마의 번식한계를 정해서 땅콩의 생존과 수확 가능성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다. 온갖 작물이 생존을 두고 경쟁하는 밭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에서도 개인이나 기업의 욕구에 제한(制限)이 없으면 사회가 통제될 수 없기에 국가권력이 시민과 기업의 활동에 경계를 짓는다.

한도를 정하는 경계 짓기(규제)는 우리시대의 핵심 문제인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는’ 양극화의 완충지대를 만든다. 지역의 조그마한 가게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큰 기업을 어떻게 규제하느냐에 달려 있듯이,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텃밭에서 공정한 경쟁, 환경보호, 시민 안전 등 사회의 공적 가치들이 규제를 통해 보호되거나 실현된다.

규제는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의 자유를 증대시키는 측면이 있다. 자유(自由)도 규제와 같은 맥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 가지 자유가 더 많다는 것은 다른 자유가 덜하다는 반대쪽 얼굴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 복잡성으로 인해 두 얼굴을 가진 규제를 명확하게 분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렇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도를 가지고 있지도 못한다. 예를 들면, 펜데믹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은 방역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으며, 각 나라들은 그 여론에 따라 펜데믹에 대응하였다.

국가는 시민과 기업에게 넘어가면 안 되는 경계를 지정한다. 선을 그어서 경계를 지정하는 건 중요하면서도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국가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들을 반영해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고, 제도와 시스템은 사회를 결속하고 시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에는 환경운동 단체들이나 시민단체, 지역단체 활동가, 공유경제 참가자들이 시장 외적 영역에서 협동의 방식으로 제공되는 노동, 서비스, 상품들을 창출한다. 이들이 갖는 재분배와 상호부조, 호혜성 원칙 등은 사회 결속의 토대가 되는 중요한 가치들이다. 이들 가치의 대부분은 주주나 고객이라는 제한된 집단이 아닌 사회집단 전체가 공익의 이름으로 자원과 사명을 시민단체에 맡김으로서 실현된다.

시민사회활동은 다양한 참여자가 다양성, 포용성, 이질성, 연대, 돌봄의 가치를 중시하고 연대하고 협력하는 사회관계망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이 시스템은 참여자들 사이에 피드백 고리를 만들고, 피드백 고리가 시스템의 행동특성을 변화시키는 되먹임으로 사회는 안정되어 간다. 이 시스템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연대이다. 경쟁이 약간 더 잘 살게 한다면, 연대는 훨씬 더 잘살게 한다.

연대의 힘은 정부와 기업과 정당이 사회적 과제에 대해 작위적으로 우선순위를 선택하고, 행동을 할 수 있는 힘을 독점하지 못하게 만든다. 거대한 관료조직을 갖추고 움직이는 정부는 작은 공동체 이웃 간의 소소한 감정까지 포용할 수 없다. 시민사이의 네트워크(연대)가 형성되면 각기 타당성을 지니고 서로 경쟁하는 주장들을 통합하고,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적 가능성을 모델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정부나 정당, 대기업 같은 권력기관들이 제한된 자원의 배분을 독단적으로 하지 못하게 한다.

변화를 따라가고, 변화를 일으키는 일에서 시민사회의 수평적 연대는 통제하고 명령하는 관료적 위계질서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 외적 경제체제(연대, 혹은 네트워크)가 무사히 출발하고 유기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때까지 그 씨앗을 잘 보호하는 것이다. 시민사회활동단체에 세금이 쓰여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시민사회활동단체가 실천하는 행동들은 새로운 방식의 생산과 소비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들 단체의 재정에 세금이 투입된다는 것은 사회집단 전체의 선택을 받았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세금으로 재정이 충당된다는 것만으로 정체성과 정당성, 고결함을 부여받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지배적 관점은 시장 외적 영역을 사회에 부담을 지우는 영역이라 간주한다.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정부는 비시장 영역의 시장화와 사유화를 추진한다. 정부는 시장 외적 영역에 대한 육성과 지원을 끊고, 공공 서비스의 축소와 외주화를 강제하고, 사람들을 사기업의 서비스로 내몬다. 10년 전 유럽은행이 그리스를 부도위기로 내몰고, 채무를 조정해주는 조건으로 강제했던 것들이다.

이는 시장과 비시장이 상당한 수준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일반적 의존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가치를 계산하기 어려울 뿐이지, 비시장 재화와 서비스가 가치를 덜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비시장 영역은 시장부문과 경제 전반의 발전에 지대하게 기여한다.

불행히도 우리가 선택한 정부는 신자유주의체제의 기조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취하고 있다). ‘규제 철폐’가 현 정부의 최우선과제가 되었고, 정부와 시장이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문제를 협력적 거버넌스를 통해 해결하기 위해 시민단체 지원의 근거가 되는 대통령령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과 ‘시민사회위원회’의 폐지를 입법예고하고, 시민단체에 지원되는 예산은 ‘혈세 퍼주기’이며, 자치단체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기로 전락’했다며 육성과 지원정책을 중단하려는 등의 정책기조에는 정부와 시민단체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자본주의적 소유자의 통제(시장화)에 종속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 우리 손으로 뽑은 지도자가 당선된 후 엉뚱한 본색을 드러내는 경우는 많다. 한 면에서 뛰어난 사람이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때를 대비해 역주하고 폭주하는 지도자를 제어하고 시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대비책이 그간 구축해온 제도와 시스템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기에 제도적으로 대비해놓은 안전망이다.

하지만 우리는 권력을 차지한 자(혹은 정당)가 고용된 언론과 지식인을 통해 조작적인 담론들로 제도와 시스템을 비틀고, 거짓으로 시민을 현혹시키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았음을 알고 있다. 거짓을 고용해야 하는 쪽은 힘과 권세를 지닌 쪽이다. 진실은 그래야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과의 싸움은 권력과의 싸움이다. 정의를 내세운 정권과 정치인이 오히려 사회정의의 토대를 침식하려고 할 때, 공정이란 이름으로 불공정을 심화시킬 때, 법의 지배라는 명목으로 실제로는 법에 의한 지배를 하려 할 때, 내가 낸 세금에 의해 오히려 우리의 복지를 빼앗기는 일이 벌어지려 할 때, 권력이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져야 한다. 통탄의 후회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가장 절실한 자가 나서는 것이다.

함께 꾸는 꿈만이 현실이 된다. 지금은 시민사회단체가 ‘연대’의 이름으로 새로운 행정(governance)과 규제(regulation)의 시스템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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