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여성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수다. 최초, 최고, 최대의 성과를 낸 여성모델도 중요하지만 작고 느리더라도 일상에서 꾸준한 성취를 이뤄낸 여성들이 더 많아지고 주목을 받는 것 역시 필요하다. <이로운넷>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평범한 여성이 만들어낸 일과 성취를 전하고 더 많은 여성들의 일을 응원한다. 한부모여성을 대상으로 창업 자금을 지원하는 아름다운재단의 희망가게 사업 창업자금을 대출해 15년째 가게를 운영중인 주옥자 대표의 이야기를 전한다. 김예주 아름다운재단 변화사업국 희망가게팀장은 “사업을 진행하며 경제적인 여유 외에도 자신감을 느끼는 등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겨나는 변화를 발견한다”며 “과거에 비해 여성이 혼자 아이를 양육하며 일하는 것이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아이의 상황으로 일의 지속성에 영향을 받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한부모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주옥자 모든홍삼 대표
주옥자 모든홍삼 대표

“엄마는 힘들어요. 준비되지 않은 엄마는 더 힘들죠. 모든 엄마들에게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하고 싶어요. 아이가 어리고 또 내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해서 끝인 게 아니에요. 아이는 분명히 자라요. ‘애가 크면 다시 준비해야지’ 하는데 애 크면 머리가 안따라줘요(웃음). 지금부터 준비하면 미래에는 어디서든 뭐든 할 수 있어요.”

주옥자 대표는 일은 삶이라고 말한다. 10여 년 간 학습지를 판매하고 가르치는 교사로 일했지만 교통사고로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기도 했다. 파산을 경험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모든홍삼을 창업한 이후에도 2년 간 동네에 전단지를 붙이고 지역주민들과 틈틈이 인사를 나눴다. 8시 30분에 가게 문을 열고 저녁 10시가 넘어야 문을 닫았다. 일을 위해 가게 1분 거리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오면 후다닥 뛰어나가 밥 때를 챙기고 다시 가게로 나왔다. 누군가는 주 대표의 삶을 풍파가 가득하다고 세상이 참 각박하다고 하겠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노력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모든홍삼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악세서리에 스톤을 붙이는 부업을 시작했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여성이나 노인들과 일감을 나눴다. 지금은 시흥, 신림, 봉천 등지의 5개의 사무실에서 200여 명의 직원이 함께 할 정도로 성장했다. 성장의 비결을 묻자 주 대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믿고 또 내가 다 가져가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똑같이 나누면 된다”고 말하며 “쉬운 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고 말했다.

“저도 어렵지만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그 사람들의 손을 잡아 줄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 역시도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놓고 부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기를 바래요. 그러려면 저부터 그렇게 해야죠. 또 봉천동은 아직 이웃의 정이 있는 동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희망가게 10주년 행사에 참여해 강연을 하는 주옥자 대표, 아름다운재단에서 스피치 교육 등을 지원했다./출처=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 10주년 행사에 참여해 강연을 하는 주옥자 대표, 아름다운재단에서 스피치 교육 등을 지원했다./출처=아름다운재단

창업 말고 취직 할 걸 후회도...지금은 봉천동 주름잡는 사장님!

“창업을 했을 때, 첫째가 8살이었어요. 애들을 두고 취업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아이들은 아직 돌봄이 필요했으니까요. 창업을 해야겠다 결심하기보다 상황이 그랬던거죠. 창업하고 초반은 ‘차라리 취업을 할 껄’하는 생각도 많이했어요. 취업도 어렵지만 그래도 취업은 고정급여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가 처음부터 가게를 운영했던 건 아니다. 가게에 아이들을 데려와도 된다고 해서 모든홍삼에서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 매장에서 주문목록을 받으면 발송하는 업무가 주였고 장사는 꽤나 잘 됐다. 이후 전 주인이 가게를 정리하면서 주 대표가 가게 운영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가게 인수에 필요한 자금 대출을 알아보던 중 우연히 아름다운재단의 희망가게 사업을 알게 됐다. 희망가게 사업 기금은 아모레퍼시픽 서성환 선대회장의 유산기부로 조성됐다. 한부모여성의 창업 자금 대출을 지원하며 무보증, 무담보에 1% 금리로 사업 신청자들에게 대출을 진행한다.

'밑져야 본전이다' 하는 생각으로 가게를 시작했지만 첫 달을 지내니 임대료도 못낼 정도였다. 그제서야 ‘사장님이 놀러다닌 게 아니라 영업하러 다닌 거였구나’를 알았다. 2년 동안 동네에 전단지를 붙이고 동네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기 시작했다. 조금씩 매출이 늘기 시작했고 홍삼액을 낱개로 팔면서 소위 대박이 났다. 그는 “당시엔 홍삼액을 박스로만 판매했는데 낱개로 판매하니 반응이 좋았다”며 “상가에 목욕탕이 있어 손님들이 한 두포씩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가게가 안정되니 고정수입도 보장됐고 초조하던 마음도 안정됐다. 주문이 들어오면 약탕기에 고으면 되니 기다림이 일이었다. 스웨터도 떠보고, 두꺼운 건강 백과 상식을 일독하기도 했다. 그러다 온라인 고스톱을 취미로 삼았다. 이후 뭘 해야하나 고민하던 중 악세사리에 스톤을 붙이는 부업을 구했다. 당시 제품 배달을 할 때 마다 이웃의 마트 직원에게 부탁을 했기 때문에 오토바이 구매를 부업의 목표로 삼았다. 그는 “스톤 하나에 2.2원을 받아서 주변 사람들이 농반진반으로 ‘이제 앞바퀴 샀냐 뒷바퀴 샀냐’, ‘눈 빠지게 뭐하냐’ 했지만 꾸준히 하니 첫달에 6만7200원을 벌었다”며 “4개월을 해 오토바이를 구매하고 이후엔 60개월 할부로 자동차도 구입했다”고 말했다.

스톤이 오토바이가 되고 자동차가 되니 지나가던 엄마들도 합류하기 시작했다. 한두명이 열명이 됐고 가게가 비좁을 지경이 됐다. 부업을 위한 사무실을 냈다. 처음엔 가방을 메고 남대문으로 가서 일감을 받았지만 규모가 커지니 오토바이에서 자동차로 수단이 바뀌었다. 직원이 100여 명을 넘어서면서 일이 없는게 아니라 사람이 없어 일을 못하기도 했다. 취업이 어려운 젊은 엄마들, 60대, 70대 여성노인들 등 직원 대부분이 여성이다. 주 대표는 5개의 사무실에서 20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국내외에 악세서리를 납품하는 사장님이 됐다.

“60대, 70대 어르신들이 내가 어디가서 몸편히 일하면서 이 돈을 버느냐고 고맙다고, 일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해주실 때 이 일을 잘 시작했다고 느껴요. 직원관리도 저 혼자는 못하죠. 5개 사무실의 실장님들이 자기 일처럼 돌봐줘서 그래요. 실장님들에게 말하죠. 난 딱 5년만 더 할거라고 그동안 열심히 해서 이걸 자기 일로 만들라고요.”

모든홍삼 주옥자 대표
모든홍삼 주옥자 대표

모든홍삼은 그냥 가게가 아니라 ‘우리동네’ 가게

“저희 가게의 이름과 자존심을 걸고 말하는데 저희 홍삼이 품질면에서 대기업 제품 못지 않아요. 금산 재배지에서 홍삼을 직거래하거든요. 작은 가게여서 직거래가 어려웠는데, 동네 인삼 홍삼집들을 직접 찾아 다니면서 협업을 하자고 했어요. 다 같이 공동구매 하면 질좋은 재료를 낮은 단가로 살 수 있잖아요.”

동네장사 15년 차가 되니 가게는 놀러온 이웃 주민들과 아이들, 제품을 사러 온 손님으로 늘 북적북적하다. 또 근방의 의심 많은 어르신들이 무한신뢰를 보내는 가게가 됐다. 지금은 단골이 된 한 어르신 손님은 재료 바꿔치기 방지를 위해 재료에 표시를 하고 약탕기에 넣고 뺄 때 일일이 다 재료를 확인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밥 잘 챙겨먹느냐"며 반찬을 찾아들고 가게를 찾아오는 단골이 됐다. 주 대표도 명절이 되면 과일 한꾸러미를 사서 어르신 댁을 방문한다. 또 어르신들이 구매하기 어려운 온라인 주문만 되거나 지정 대리점에서만 구매가 가능한 제품들을 일일히 알아보고 대신 구매해주기도 한다. 주 대표는 “소비자가 원하는 건 가능한 선에서 다 맞춰드리고, 안되면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제품을 찾아주기도 한다”며 “장사를 하면서 이웃들이 소소한 정을 나눠줄 때마다 ‘아, 내가 좀 잘 살았나보다’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젠 품목도 많이 늘었다. 영업 초반엔 홍삼만했지만 흙마늘즙, 칡즙 등 건강식도 취급한다. 긴 시간 동안 가게만 성장한 게 아니라 주 대표와 아이들의 몸과 마음도 컸다. 그는 “창업을 한 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를 떠나서 아이들이 여기는 우리 공간이고 우리 엄마가 사장님이다는 걸 알았는지 행동에서 자존감이 커진게 보여서 좋았다”며 “사춘기에는 또 홍삼가게 딸로 알려져서 힘든 게 많다고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이제는 '하고 싶은 것 다하라'고 이야기 해줘서 참 고맙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이던 두 딸이 결혼을 준비하는 나이가 됐지만 주 대표는 여전히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대표님 사고치지 마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는 “잘되면 성공이고 안되면 사고가 되는 것”이라며 “뭐든 생각하기 보다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의 범위와 크기가 커지다 보니 세무에도 관심이 생겨 경희사이버대학 세계회무학과에 진학하기도 했다. 그는 “한부모연합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경희사이버대학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어 좀 더 수월하게 진학을 결심했다”며 “일과 학업의 병행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지금은 휴학 중”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재단의 희망가게를 신청할 때 신용불량자였어요. 근데 어느 순간, 다 털어냈더라고요. 그때는 마이너스였지만 지금은 플러스 인생이죠(웃음). 일 덕분에 애들이 엄마인 저를 존중해주고 믿어줘요. 일로 아이들에게 인정받는 엄마가 됐다는 것 또 주변에서 저 사람은 참 열심히 잘 살고 있어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참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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