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크대 진화인류학, 심리학, 신경과학과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 교수와 동 대학의 진화인류학과의 연구원이며 언론인인 버네사 우즈(Vanessa Woods)가 함께 집필한 저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Survival of the Friendliest)”를 보면 인간의 협력과 협업을 하는 특성을 진화생물학적으로 살아남아 우점종(dominant species)이 될 수 있게 한 자질로 규정지어 설명한다.

뇌의 용적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오히려 신체적인 우위를 지녔던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보다 협력하거나 협동하여 살아가는 군집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도태했고 호모사피엔스가 우점종으로 살아남아 현재 인류의 근간이 됐다는 거다. 사실 협력이라는 전략 자체는 생명체가 진화 역사상 아주 오래전부터 채택해 온 최고의 전략 중 하나다. 수 백만년 전 박테리아 중 하나였던 미토콘드리아는 더 큰 단위의 세포 속으로 융합해 진핵 세포 생물의 에너지 생산 구심점으로서 생명체 진화의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미생물을 제외한다면, 지구의 근본적인 에너지 생산자인 식물의 경우에도, 곤충과 협업을 통해 진화해 온 개화 식물 종들이 최고의 우점종으로서 지구에 군림하고 있다.

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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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의 중요성은 생명 과학 연구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생명과학 분야는 다양한 다른 과학 분야와 접목해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세계적 수준의 연구 결과는 이미 수학, 물리, 화학, 컴퓨터 공학을 비롯한 다른 학문과의 결합 없이는 절대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지는 추세다. 

미국, 독일을 비롯한 과학사적으로 유서가 깊고 부유한 열강 국가들에는 다양한 형태의 초거대자본을 가진 바이오 연구기관들이 존재한다. 많은 과학 분야 연구에 큰돈이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히 생물학 연구 분야의 경우 전 분야에 걸쳐 평균적으로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고성능의 현미경을 비롯한 다양한 분석 기기들의 가격을 고려해본다면, 수준 높은 연구를 위해 최소한의 장비를 갖추기 위한 자본을 끌어오는 일은 대부분의 과학자에게 막대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런 재정적인 문제는 과학자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을 다 펼쳐낼 수 없게 제한하는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하곤 한다.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필자가 근무하는 IMBA(Institute of Molecular)는 빈 바이오 센터(Vienna BioCenter; VBC)의 여러 기관 중 하나다. 본래 빈 바이오 센터는 두 생명공학 회사인 베링거인겔하임(Boehringer Ingelheim)과 제넨텍(Genetech)의 자본을 바탕으로 1985년에 세운 기초과학 연구센터인 IMP(Institute of Molecular Pathology) 단일기관으로 출발했다. 이후 1988년에 빈 대학의 5개 과가 IMP 옆으로 옮겨오면서 빈 바이오 센터의 초기 모습이 갖추어졌고, 오스트리아 정부가 1999년과 2000년에 IMBA와 GMI(Gregor Mendel Institute)를 세웠다. 최근 UBB(University of Vienna Biology Buliding)까지 완공돼 지금의 빈 바이오 센터의 형태를 갖추게 된 거다. 더불어 2010년에는 새롭게 빈 바이오 센터 코어 퍼실리티(VBCF)가 설립되면서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고가의 장비들을 마련해 센터 내 기관이 공동으로 장비들을 이용하게 됐다. 현재 빈 바이오 센터에는 약 79개국 2650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고, 유럽을 대표하는 하나의 초거대 융합 바이오 연구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GDP(국내총생산)가 약 4818억 달러로, 여타 열강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경제 규모를 갖고 있다. 집약적인 자본이 필요한 생명 과학을 발달시키기에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5개 기관을 한데 모아 집약적으로 자본을 사용하고 협업해 나갈 수 있는 근간을 만들었고, 이를 통하여 세계적인 수준의 생물학 연구 결과를 양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약 1조 8000억 달러의 GDP를 자랑하는 경제 규모 세계 10위 국가다. 하지만 우리 생명 과학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필자는 생명 과학 연구 실적이나 연구의 질 면에서 아직 우리나라의 국력과 이름에 비해서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 핵심은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협업과 협력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유수의 연구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정도에 비교해 보면, 한국의 대학 또는 연구기관, 그리고 그 안에 소그룹인 실험실 간에 상대적으로 교류가 부족하다. 같은 기관 혹은 대학 내에서도, 같은 기능을 하는 기기들을 여러 대 사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이에 따른 물적 인적 자원의 낭비가 여전히 심하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업과 공유를 이룰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적은 자본으로도 더 큰 연구 업적을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협업, 협동의 전략이야말로 생물 진화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근본적인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The Origin and Diversification of Mitochondria, Current biology November 06, 2017, VOLUME 27, ISSUE 21, PR1177-R1192.

Early steps of angiosperm–pollinator coevolution, PNAS January 8, 2008, 105 (1) 240-245

https://www.viennabiocenter.org/research/key-discov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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