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밝았다. 끝날 것만 같았던 코로나19는 델타와 오미크론의 현란한 협주로 아직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실시간 인터넷 통계 사이트 월드 오미터(Worldometers)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12월 30일 기준으로 일일 확진자 약 57만 명에 13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확진자로 인해 진단 검사를 받기도 자가 검사 키트를 구하기도 힘든 상태가 됐다. 2022년 새해맞이는 코로나19에 무뎌진 감정으로 채워졌다.

실제 코로나19의 최전방에 앞장서고 있는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미국 질병관리예방센터(CDC)에서는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전염병 혹은 재난에 대응하는 인력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대응이 장기화하며 개인이 느낄 수 있는 번아웃이나 2차 외상성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 오히려 육체적 정신적인 피해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한 제도적 완충재가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번아웃(Burnout)은 슬픔, 우울증, 무관심, 좌절, 짜증, 다른 사람의 탓, 감정 결핍, 다른 사람과의 고립, 열악한 자기 위생관리 등의 징후를 보이며 개인은 번아웃이 왔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어떤 일도 이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일을 잘하고 있지 않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알코올이나 약물이 필요하다’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2차 외상 스트레스의 경우는 대응 과정 중 접한 환경을 통해 안 좋은 일이 생길까 지나치게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쉽게 놀라거나 늘 경계하며,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등의 스트레스의 신체적 징후가 나타나고, 충격적인 상황에 대한 악몽이나 반복적인 생각이나 타인이 겪은 트라우마가 자신의 것이라고 느끼는 느낌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러한 번아웃이나 2차 외상 스트레스는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 공항과 검역소에서 대응하는 인력, 진단검사와 바이러스와 백신, 치료제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 그리고 쏟아지는 변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해야 하는 인력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어쩌면 나와 우리가 노력하고 헌신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과 기대가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지속적인 변이와 n차 유행이 이어지는 데 이어, 여전히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이들에 의해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감정일 것이다.

미국의 2년제 및 4년제 대학교수 1122명의 온라인 설문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응답자 중 절반이 넘는 이들이 직업을 바꾸거나 조기 은퇴를 진지하게 고려한다고 응답했으며, 이들의 번아웃/스트레스의 비율은 2019년 코로나19 이전의 32%에 비해 69%로 많이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특별히 여성 교수진의 경우, 돌봄 노동의 부담으로 인해 번아웃/스트레스의 비율이 남성 교수진의 59%보다 훨씬 높은 75%로 나타났으며, 74%의 여성 교수는 코로나로 인해 일과 삶의 균형이 약화했다고 응답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베르나데트 멜니크 간호학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이전의 의료종사자의 번아웃 비율이 평균 30~50%였던 반면, 코로나19 이후 40~70%로 많이 증가했으며, 특별히 간호사들의 조기 퇴직과 경력 초기 간호사들의 퇴직률이 늘어나는 등 델타 변이로 인한 의료 인력의 번아웃 추세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했다.

미국 마운틴 시나이 대학 병원은 의료 인력이 쉴 수 있는 공간인 “충전실(Recharge room)”을 만들었다./사진=마운틴 시나이 대학 병원 홈페이지 캡처
미국 마운틴 시나이 대학 병원은 의료 인력이 쉴 수 있는 공간인 “충전실(Recharge room)”을 만들었다./사진=마운틴 시나이 대학 병원 홈페이지 캡처

우리는 줄어들고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에만 민감하지 않았나 돌아봐야 한다. 미국의 마운틴 시나이 대학 병원은 의료 인력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일을 하다가 쉴 수 있는 공간인 “충전실(Recharge room)”을 만들었다. 이 충전실은 음악, 향기, 조명, 그리고 자연과 비슷하게 꾸며놓은 인공 공간으로서 트라우마, 불안 및 스트레스 완화를 통해 의료 인력의 인지 능력을 향상하고 회복력을 높일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되었다. 후에 뉴욕주의 여러 병원이 시의 지원을 받아 충전실을 만들었다. 최근 시카고 대학교는 과학자/의사 연구자들을 위해 66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보조금은 돌봄과 연구를 병행하느라 번아웃에 더 높게 노출되는 경력 초기의 젊은 연구자들을 위한 것이다. 각 병원은 의료 인력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연방 정부의 대응 인력들은 대응 지원을 마치고 나면 일정 기간을 쉴 수 있는 휴가를 준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들은 여전히 코로나19라는 불길 속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의 타들어 가는 삶을 구제해 주지 못한다.

코로나19 초기 미국의 병원들 앞뜰에는 “A Hero Works Here(영웅이 일하는 중)”이라는 사인이 꽂혀 있었다. 한국에서는 “덕분에” 캠페인으로 의료진들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릴레이 응원 캠페인을 했었다. 거의 1년이 지난 지금 치솟는 확진자 숫자 뒤에 가려진 번아웃으로 타들어 간 그들의 삶은 마치 잊힌 듯하다. 제일 앞에 서 있는 이들의 번아웃이라는 희생만으론 코로나19는 결코 쉬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전염병의 불길은 모두가 물방울이 될 때 잠재울 수 있다. 우리가 물방울이 될 수 있는 법은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와 모임을 자제하고, 증상이 있을 때는 진단 검사를 받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 왔던 일들을 지속하는 것이다. 흔들림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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