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백신 접종률 82%을 기록하며 일상을 되찾았던 퀘벡주는, 급증하는 코로나 확진자 수로 인해 지난 12월 말부터 다시 통행금지와 셧다운이 시작됐다. 열흘여 전부터는 코로나 진단 키트 수급의 문제로 검사가 중단돼 확진자 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와중에 적설량과 기온은 퀘벡의 통상적 겨울보다 훨씬 밑돌아, 생활환경과 기후변화의 위기를 더욱 체감하게 한다.

“사회혁신의 아버지”, ‘’퀘벡 사회적경제의 교황”, 브누아 레베크

연구분야의 현저한 경력을 쌓았고, 연구의 질이 사회 공동을 이롭게 한 공헌 인정되며, 사회혁신의 중요한 실천과 발전을 이룬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가장 높은 훈장’인 ‘마리-앙드레-베르트랑Marie-Andrée-Bertrand 과학상’을 2015년 수상한 브누아 레베크./출처=퀘벡주 정부 홈페이지
연구분야의 현저한 경력을 쌓았고, 연구의 질이 사회 공동을 이롭게 한 공헌 인정되며, 사회혁신의 중요한 실천과 발전을 이룬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가장 높은 훈장’인 ‘마리-앙드레-베르트랑Marie-Andrée-Bertrand 과학상’을 2015년 수상한 브누아 레베크./출처=퀘벡주 정부 홈페이지

이 상황에서 지난해 말, '사회생태적 지속가능한 지역발전모델' 연구와 실천에 일생을 바친 한 사회학자의 생애와 철학이 담긴 책이 출판됐다. 브누아 레베크(Benoît Lévesque) 퀘벡대학교몬트리올캠퍼스 명예교수는 퀘벡의 '사회혁신의 아버지', '사회적경제의 교황'으로 불린다. 그는 퀘벡의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 분야 1세대 연구자로, 연구자들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에게는 명성이 매우 높다. 학자이자 실천가로서의 83년의 생애와 시대를 관통해 온 그의 철학을 담은 ‘퀘벡모델의 핵심, 혁신과 사회적경제: 브누아 레베크와의 대담(L’innovation et l’économie sociale au coeur du modèle québécois, entretiens avec Benoît Lévesque)'의 출판으로,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로 인한 위기의 시대에 그의 사회혁신과 전환에 대한 철학과 실천이 대중적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계기가 되고 있다.

사회참여 지식인의 연구와 실천의 생애

브누아 레베크는 200개의 단독 저술과 별개로, 약 140여 명의 공동저자들과 함께 연구서를 출판했다. 연구자들 외에 활동가들과도 함께하면서 지식의 공동기획과 공동생산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연구실천 생태계를 형성에 기여했다. 사진은 2016년 마거릿 멘델 교수와 함께 저술한 ‘사회연대경제 에코시스템’ 표지./출처=Open Edition Journals
브누아 레베크는 200개의 단독 저술과 별개로, 약 140여 명의 공동저자들과 함께 연구서를 출판했다. 연구자들 외에 활동가들과도 함께하면서 지식의 공동기획과 공동생산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연구실천 생태계를 형성에 기여했다. 사진은 2016년 마거릿 멘델 교수와 함께 저술한 ‘사회연대경제 에코시스템’ 표지./출처=Open Edition Journals

올해 83세인 레베크는 2004년 교수로서 은퇴한 후 지금까지도 그가 설립에 공헌한 퀘벡의 주요 연구조직들과 새롭게 부상하는 비영리단체들에 참여하며 지속적인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연구와 실천의 첫번째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일관되게 관통하는 '사회혁신'이란 주제이다. 1970년대에 최초로 사회혁신을 이야기했을 때와 현재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일관되게 사회혁신을 이야기한다. 다만 시대에 따라 그 목표가 달라질 뿐이다. 영국으로부터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지 100여 년 만에 비로소 진정한 정치경제 주요 권력을 되찾고 사회제도를 변화시킨 후였던 1970년대 사회혁신의 목표는 사회·경제민주화로, 사회적 포용과 민주, 연대, 평등과 공정의 가치에 기반한 제도개혁에 초점을 뒀다.  2000년대부터는 사회민주화를 넘어서 기후변화와 불평등과 같은 구체적인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지금은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사회환경 전환을 위해 급격한 변화인 ‘폭력없는 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둘째, 사회혁신 연구와 실천에 그가 가장 초점을 맞추고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사회적경제이다. 1980년대 이후 퀘벡에서 아직 사회적경제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정의되기 전이었던 당시, 레베크는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그리고 지역사회 경제발전조직들 및 시민사회단체들에 주목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그리고 사회적경제조직들 모든 분야에서의 사회혁신을 연구했던 그는 특히 사회적경제조직이 갖는 민주적 권력체계와 잉여분배방식 및 자발적 운영이라는 특징에서 새로운 사회 전환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반면, 사회적경제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그 가치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당면한 사회문제를 사회적경제 운동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실천적 발전을 이루기 위한 이론적 근거와 틀을 끊임없이 제시했다. 

셋째,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화를 통해 사회혁신을 실천했다. 일례로, 1980년대 ‘노동의 민주화와 고용창출을 위한 발전기금’에 대한 그의 연구는 퀘벡노동자연합기금(퐁닥시옹FTQ) 형성과 이에 대한 정부의 세제지원을 법제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은 퀘벡지역 연구자들의 공동협력연구 조직인 사회혁신연구센터(Centre de recherche sur les innovations sociales(CRISES)) 설립으로 이어졌고, 이를 통해 본격화된 협동조합, 노동조합, 지역 커뮤니티조직들에 대한 연구는 1990년대 퀘벡 사회적경제의 개념을 공식화하고 이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제도 마련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넷째, 실무자와 연구자간 공동협력 연구의 기틀을 만들었다. 레베크는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 분야 연구는 연구자들만의 연구로는 한계가 있음을 직시했다. 현장실무자들과 함께 진행돼야  실효성이 있음을 견지하고, 연구자들과 현장활동가들로 구성된 '사회적경제 대학-지역단체 연구연합(Alliance de recherche universités-communautés en économie sociale(ARUC-ÉS))'을 설립했다. 이 연합은 퀘벡사회적금융연대조직인 캡파이낸스(CAP Finance)와 사회적경제연대네트워크 샹티에 신탁기금(Fiducie du Chantier)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학문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을 합해 사회적경제조직들에게는 실천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고, 정부에게는 이들 지원을 제도화하도록 이끌었다. 2003년부터 2018년까지 중도보수인 퀘벡자유당 정권 아래서 사회적경제를 비롯한 여러 경제정책들이 보수화되고 바뀌었으나, 많은 정책들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이 과정을 통해 이미 조직화되고 제도의 틀을 형성한 시민사회조직들의 저항 덕분이었다. 

실천에 필요한 연구의 중요성

2021년 출판된 ‘'퀘벡모델의 핵심, 혁신과 사회적경제 : 브누아 레베크와의 대담’./출처=퀘벡대학교 출판사 홈페이지
2021년 출판된 ‘'퀘벡모델의 핵심, 혁신과 사회적경제 : 브누아 레베크와의 대담’ 표지./출처=퀘벡대학교 출판사 홈페이지

브누아 레베크의 제자이자 연구실천가인 마리 부샤르(Marie J. Bouchard, 퀘벡대학교 몬트리올캠퍼스 교수)와의 대담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한 ‘신경제사회학자’이자 실천가의 삶을 통해 평가와 비전 수립 그리고 실천은 함께 이뤄져야 하며 이것이 민중운동과 사회적경제의 실천을 두텁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생을 “시민사회단체 활동이 어떻게 사회 변혁에 기여할 수 있을까?” 를 숙고해 온 레베크는 민주주의와 사회적경제 측면에서 프랑스와 미국이 오랫동안 모델이 돼왔으나 ‘’더 이상 따를 발전모델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민사회의 진화와 세대 및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를 모두 고려한 생산, 소비, 노동, 삶의 방식의 사회생태학적 전환’’을 통해 새로운 모델은 만들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이는 다가올 세대들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현 세대들을 위한 것이기에 폭력을 수반하지 않은 급속한 혁명이 필요함을 재차 강조한다.

요즘처럼 현지 방송을 통해 한국에 대한 뉴스를 자주 접했던 때가 있었나 싶다. 동네 주민에게서 한국이 가장 안전한 곳 같다는 말을 듣는, 전례 없는 위기의 시대에 모범으로 주목받는 나라.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오래 묵은 경제정치 권력의 진정한 민주화라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는 나라. 우리 사회 혁신의 목표는 어느 단계에 설정해야 할까? 한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레베크의 말처럼 특히 독특한 우리나라만의 역사와 현재 속에서 더이상 따를 모델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만의 사회적경제 역사를 기반으로 우리의 모델을 만들고 강화시켜가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실천과 접목한 사회적경제 연구가 더욱 풍성해지는 해가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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