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한 경험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려움을 전문가와 함께 해결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민들레)'은 자신과 지역사회가 가진 건강상 어려움을 해결한다. 2002년 대전 대덕구에서 의료·복지 분야 전문가와 지역주민이 협동해 만든 사회적협동조합이자 사회적기업이다.

민들레는 2015년 한국연구재단의 ‘사회문제해결형 격차해소 연구개발’ 사업의 ‘당뇨 치료용 보급형 인슐린 주사침 개발 리빙랩’에 참여했다. 당시 민들레는 수요자 중심의 과학기술이라는 리빙랩의 취지가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 사회,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1995, ICA)’이라는 협동조합의 개념과 다르지 않아 생소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참여를 결정했다.

지역주민(당뇨환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업이 필요했다. ‘시민참여연구단’을 시민그룹(일반시민), 전문가그룹(의료인), 당사자그룹(당뇨자조모임)으로 구성한 이유다. 시민참여연구단은 소비자 설문, 간담회 등을 통해 시민‧당사자‧전문가의 의견을 개발과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돕고, 임상시험연구에 참여해 시제품 사용 및 피드백, 홍보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연구 기획단계부터 참여하지 못해 사용자의 ‘필요’보다 ‘기술’ 중심의 제품개발이 진행됐다는 한계에도, 참여 경험을 통해 참여자들의 리빙랩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고, 제품개발에 수요자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경험을 얻었다. 애초 주사기 모양으로 계획되었던 인슐린 주입침은 시민참여연구단의 의견을 반영해 펜 모양으로 변경됐다.

주사기형니들(좌), 펜형니들(우)
주사기형니들(좌), 펜형니들(우)

또, 시민 참여과정에서 새로운 필요와 욕구를 구체화하는 성과도 있었다. 의료 전문가의 의존도를 낮추고 당뇨인 상호 간 정보공유 및 건강생활습관을 촉진하는 공간 ‘당뇨카페’와 당뇨관련 물품 공동구매 및 유통 등을 당사자가 직접 운영하는 ‘당뇨인협동조합’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졌다.

이 경험을 통해 민들레는 현장 중심, 수요자 중심에 더 집중했고, ‘수요자 맞춤형’ 지역사회 통합 돌봄 체계를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됐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지역사회에서 안심하고 나이 들기(aging in place)’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자원이 필요하다. 수요자의 욕구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 돌봄, 영양, 운동 등과 같은 대인 서비스는 수요자의 욕구와 공급자의 서비스가 불균형을 이루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서로 정보만 공유되면 해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도시락 이용자가 당뇨환자라는 것을 알면, 도시락 업체에서는 당이 높은 과일 대신 다른 후식을 선택하면 되는 것과 같다.

당뇨 자조 모임 현장. 시제품 평가모임부터 주사침 생산시설 견학, 임상시험 참여까지 환자들이 직접 함께 했다.
당뇨 자조 모임 현장. 시제품 평가모임부터 주사침 생산시설 견학, 임상시험 참여까지 환자들이 직접 함께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커뮤니티비즈니스 활성화사업’에 참여한 대전지역 23개 조직과 함께 지역사회 통합돌봄에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점검했다. 총 99개 서비스와 제품을 8개(보건의료, 사회, 복지, 일상생활, 사회경제활동, 주거환경개선‧안전, 여가문화, 권익증진) 분야로 나눠 목록으로 만들었다. 수요는 있으나 상품과 서비스가 없는 경우는 신규상품을 개발하거나 기존상품을 고도화(영양, 여가문화 분야)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에 필요한 서비스와 제품을 보완했다.

이렇게 진행된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하는 리빙랩 경험을 토대로 2가지 상상을 해본다.

첫 번째 상상은 ‘리빙랩 플랫폼’이다. 해결하고 싶은 문제(수요)와 문제해결에 필요한 과학기술(공급)이 한곳에 모이는 플랫폼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의 일상적인 협동을 조직할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 상상은 ‘사회정책 리빙랩’이다. 과학기술을 현장에 적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법‧제도적 어려움을 사회정책 분야 전문가가 참여해 해결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리빙랩은 지역사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실험과 문제해결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되는 것을 돕는다. 위 두 가지 상상이 더 다양한 주체의 등장과 더 많은 교류의 촉매가 되어 모두가 지역사회에서 안심하고 나이들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송직근 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전무이사
송직근 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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