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ESG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예외일리 없고, 또 ‘사회에 이로운’ 경영을 하겠다는 것이니 반가워해야 할 일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둘이 아니다.

많은 대기업들이 일제히 이사회에 ESG 위원회를 만들고, 기존의 ‘사회적 책임 경영(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추진 조직을 ESG 경영실로 개편하고 있다. 그리고 언론에는 기업들의 ESG 관련 홍보가 넘친다. 그 중에는 ESG 경영 결의대회를 개최했다거나, CEO가 출근길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었다는 등 친환경 행보를 소개하는 기사들도 보인다. 기업에 따라서는 환경 또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몇 가지 액션 플랜을 발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ESG 경영 도입을 계기로 기업 목표나 미션을 ESG 원칙에 맞춰 바꾸고,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물론 본격적으로 ESG 활동에 돌입한 기업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개는 아직 ‘무늬만 ESG’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출처=Getty Images Bank
출처=Getty Images Bank

그럼 왜 이처럼 ESG의 근본 취지는 사라지고 멋진 구호와 포장만 난무하는 것일까? 가장 주된 원인은 기업들이 ESG와 CSR의 차이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기존의 CSR 활동을 ESG로 포장만 바꿔서 '누가 누가 더 착한가.' 경진대회에 서둘러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려하는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와 이윤을 함께 추구한다는 지향점은 CSR과 ESG가 같다. 그러나 CSR과 ESG를 촉발하는 지점이 다르고, 지속가능성 관점에서도 둘은 크게 다르다.

ESG는 투자자와 자본시장에서 촉발되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투자자들이 ESG 이슈 해결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투자를 해야겠다고 방향을 전환한 두 가지 계기는 국제 금융위기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위기, 그리고 지구 온난화 이슈다. 즉, ESG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투자 수익률을 보장하기 어렵겠다고 깨닫게 된 것이다.

그에 비해 CSR은 투자자가 아닌 기업의 행동에 초점을 둔다. 즉, 투자자들이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기업이 환경 단체, 소비자 단체, 노조 등 이해관계자로부터의 압력과 기대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CSR 활동에 나서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1970년대 이후 오랫동안 ‘기업이 선량한 기업시민이 되기를 원하는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활동,’ 즉 자선적 활동으로서의 CSR이 강조되었다. 이처럼 CSR은 자본시장의 변화를 전제로 하지는 않고, ‘착한 기업으로의 재탄생’을 전제로 한다.

아래 그림을 보면 CSR과 ESG의 차이가 보다 더 분명히 드러난다. ESG 투자는 투자자들이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기업들의 ESG 활동을 장려하면서 시작된다. 그에 비해 CSR에서는 투자자의 역할이 없다. 즉, 투자자들은 CSR 활동이 자신의 이익에 합치하는지에 대해 판단할 여지가 없는 상태에서, 기업들이 외부로부터의 압력과 기대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사회문제 해결에 기업의 자원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ESG 투자에서 참가자별 관계 및 역할
ESG 투자에서 참가자별 관계 및 역할
CSR 활동에서 참가자별 관계 및 역할
CSR 활동에서 참가자별 관계 및 역할

투자자들이 주도하는 ESG는 당연히 높은 투자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 다만 투자자들은 탄소 배출량 감축 등 ESG 개선 활동이 단기적으로는 비용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장기적인 재무성과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 비해 CSR은 이미 창출된 이익을 이해관계자와 나누는 활동에 더 무게 중심이 있다. 따라서 CSR 활동은 비용 증가를 수반하며, 그것이 장기적으로 이윤 증가로 연결될 가능성도 낮다. 근본적으로, CSR 활동을 요구하는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의 장기적 이윤에 관심이 없다.

물론 경영인, 정부 관계자, 그리고 시민단체까지도 “CSR 활동이 장기적으로 기업에도 도움이 되고, 지속가능한 경영 환경을 만들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CSR 활동은 목표, 참여자의 이해관계, 프로세스, 인센티브 시스템 등 전반적인 메커니즘이 장기적 수익성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CSR 연구자들은 기업이 ‘전략적’ CSR 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이윤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CSR 활동이 이윤 증가를 가져왔다는 실증분석 결과는 별로 없다. 기업들이야 사회적 압력 때문에 CSR 활동을 해왔지만, 주주들이 이윤 감소를 좋아할 리 없고, 주주들이 싫어할 일을 경영자가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건 뻔한 이치다.

그러니 법에 정한 최소한의 것만 하고, 나머지는 대외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되는 정도의 활동을 하는데 그친다. 그리고 이런 활동들을 잘 엮어서 연말에 멋진 표지의 “지속가능 보고서”로 출간한다. 그러나 사업부서 직원들은 대부분 그런 활동이 있었는지, 그런 보고서가 나왔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이것이 투자자들의 변화를 전제로 하지 않은 CSR 활동의 근본적 한계다.

최근 기업들의 ESG 활동을 보면,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해왔던 CSR 활동과 구별하기 어렵다. “우리도 좋은 일에 이렇게 앞장서고 있다. 앞으로 더욱 잘할 것이다.”라는 다짐은 열심히 하지만, 그것이 기업의 핵심활동과 깊이 연계되는 경우가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ESG 투자가 성과를 내려면 기업들이 ‘ESG 경영’을 통해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ESG 경영은 단기적 이윤은 감소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사회적 가치와 이윤 창출이 양립하다는 투자자의 믿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CSR 경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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