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3일. 쌍용차 노동자들의 복직판결이 원심파기 환송되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라는 청년이 분신했다. 45년 전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를 비교했을 때 노동환경은 좋아졌을까? 노동자들에게 엄혹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같다.

그런 가운데 좋은 상업 영화가 하나 개봉했다. 이랜드 파업 투쟁을 다룬 영화 <카트>다. 그리고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소중한 책 한 권이 더 있다. 바로 이랜드 파업 투쟁 당시 기획해 출간했던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이다.

책에는 파업에 참여했던 그리고 주변에서 지켜봤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인터뷰 형식으로 담겨 있다. 이랜드 파업은 “일하고 싶다”라는 소박한 꿈 하나로 시작한 싸움은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투쟁으로,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싸움으로 커졌던 싸움이다.

노동조합의 ‘노’자도 몰랐던 그들이 노동조합 활동은 불법이 아니라고 법조문을 외우기도 하고, 목동점 재점거 날에는 아기 낳던 날보다 무서워 청심환 먹지 않은 걸 후회했다는 조합원까지. 생생한 현실의 이야기들이 수놓아져 있다.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노동조합 조합원, 옆에서 함께해준 사람들,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실려 있다. 노동문제에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교수, 활동가 등의 목소리도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다.

희망적이지도 않고, 어쩌면 현실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말해놓은 이 책을 읽으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이며, 우리 사회의 여성 노동자들 삶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오늘도 사회에서 분투하는 당신에게 ‘청심환’이 되어줄 이 책 읽어보길 추천한다.



저자의 말

엮은이 - 김순천, 권성현, 진재연

"도대체 비정규직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요?" 이랜드 노동자들이 절규하듯 외쳤다. "그런 사람 있으면 나와 보세요. 한 명도 없어요?" 2007년 7월 1일 시행된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량해고를 불러왔다. 많은 사업장에서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지 않기 위해'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러고는 '외주 용역'으로 전환했다. 홈에버와 뉴코아에서 계산 업무를 담당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700여 명도 이때 일터를 잃었다. 비정규직법이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노동자의 목줄을 죄는 것임을 몸으로 경험한 이랜드 노동자들은 부당함을 주장했다. 계산대를 멈추고 파업 투쟁을 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외쳤다.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감당해 왔던 여성 노동자 자신의 삶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노동하는 이들의 건강한 감수성으로, 꿋꿋한 여성 노동자로서 싸워 온 세월뿐 아니라 지치고 힘든 일상에 스며드는 서운하고 속상한 속내를 말했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은 것인데, 그것만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 노동자들의 삶에 가혹한가를 증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내며' 중에서) - 진재연(지은이 대표)



본문 발췌

p8, 매일 관리자의 눈치를 보며 숨죽이고 일했던 매장을 자신들의 힘으로 멈췄을 때 비로소 그곳은 해방의 공간이 되었다. 그/녀들의 싸움은 삶의 존엄을 지키면서 일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보여주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노동자로서의 온전한 존재감을 원했을 뿐이다.

p25, 여기가 월드컵 경기장이잖아요. 휴일이면 사람들이 엄청 몰려요. 작년 3월 1일에도 그랬어요. 근데 2층에 포스가 한 일고여덟 개 되는데 세 개밖에 열리지 않았어요. 그만큼 인원을 줄여 버린 거예요. 제가 원래는 두 시간 일하고 15분 쉬어야 하는데 그날은 여섯 시간 15분 동안 쉬지 않고 계속 일했어요. 화장실도 못 가고 저녁밥도 못 먹고 일했어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어지럽더라고요.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긴 줄을 서서 30분 동안 기다리던 손님이 저한테 와 가지고 항의하는 거예요. 너네 지금 뭐하는 짓이냐. (포스를) 더 열어야 될 것 아니냐. 왜 안 여냐, 그래요. 고객님 죄송합니다. 지금 직원이 없어서 포스를 못 엽니다. 이렇게 말해도 다 필요 없대요. 고객들이 불편하면 죄 없는 우리들이 그 불평들을 다 당하는 거예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p27, 점프 교육이라니요?
-지하 공간에 30명씩 가둬 놓고 친절 교육을 시키는 거예요. 심한 경우는 매장 안에 보안들이 서 있는 곳에서 창피하게 세 시간 동안 인사하게 만들어요. 어떤 언니는 열 번 이상 하고는 어지러워서 쓰러질 뻔했대요. 이것은 인격을 모독하는 거잖아요. 홈에버로 바뀌면서 그런 게 많아졌어요. 예전에는 나를 기계 취급하는구나,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구나. 무지해서 그런지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바뀌고는 확 와 닿는거예요. 박성수 회장은 직원을 가족으로, 사랑으로 대한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말하는 직원 속에 나는 있는가, 너무 괴리감이 느껴지는 거예요.

p30, 바코드 안 돼도 우리 탓, 물건 없어도 우리 탓, 가격표가 없어도 우리 탓, 우리는 계산원으로 일한 잘못밖에 없어요. 우리는 찍는 기계라고 해요. 찍새, 일명 찍순이. 찍는 죄 밖에 없는데 그 모든 욕을 우리가 다 먹는 거예요.

p65, 동대문에서 관광버스 타고 1시에 문 닫을 때쯤 면목점에 도착해서 버스 내리는데 가슴이 막 뛰는 거야. 그때 청심환 안 먹고 온 걸 후회했다니까. 아이 낳을 때보다 더 떨리고 무서웠던 거 같아. 문 내리자마자 어디 어디로 뛰라고 하는데 다리가 떨려서 앞만 보고 뛰었어. (웃음) 무조건 점거해야 한다. 그것밖에는 없었어요. 어떤 언니가 카트기를 뽑아서 밀고 들어가니까 경찰이 놀라 가지고 방패 놓고 도망간 애들도 있었어요. 나중에 헬멧도 막 굴러다니고, 와. 우리 성공했다.

p68, 요구안을 100퍼센트 따 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살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거를 알게 되었다는 것, 정치도 그렇고 내 권리가 뭔가, 내 권리는 내가 목소리 내야 되는구나.

p72,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저희 큰 아이 같은 경우는 엄마가 이랬어, 이런 이야기를 내가 했던 게 아니고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들어서 알게 되고, 그래 엄마 열심히 해봐, 도와줄 거는 없지만 신경 안 쓰고 공부만 할게, 이런 애한테 엄마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했다. 엄마 옆에 잇는 사람들 등지고 나왔다 이런 모습 보여 주고 싶지는 않은 거지.

p110, 저는 11년 동안 근무했는데 어려움이 항상 있었죠. 장시간 근로도 그 중 하나고요. 7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 이전에는 퇴근해 본 적이 없어요. 거의 10년 가까이 그렇게 일했어요. 초과근무 수당이 없는 건 당연한 거고요.

p111, 비정규직에게 먼저 칼날이 들어오는 것일 뿐, 그다음에는 정규직에게 들어오는 것이고, 동시에도 들어와요. 정규직들은 전환 배치를 통해서 고용 위협을 당하고 있으니까요. "부산 가라" 이런 발령이 뜬금없이 날 수가 있거든요. 저 나름의 요구와 동료의 요구가 함께 있었던 거죠. 저도 파업하고 바로 원천점으로 발령이 났어요. 가깝기는 한데, 거긴 조합원들이 아무도 없거든요. 제가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발령이 날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발령이 났어요. 파업하니까 출근할 일이 없어서 무산됐지만.

p128, “상우야 사랑해”. 너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할게“라고 말하며 울먹이는 여성 노동자들이 그 울먹임의 힘만으로 1년이 넘게 파업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무차별적인 손배 가압류, 가처분과 파업 대오에 대한 폭력 행사, 회유와 협박을 이겨 내고 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p221, 엄마 옆에서 일하는 동료직원 분들이 얼마 안 있어서 해고되고, 또 18개월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게 법에 그렇게 되어 있는데, 이랜드가 17개월만 계약해 주는 식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했어요. “엄마 옆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데 어떻게 혼자서 일할 수 있겠냐”라고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엄마를 이해하게 된 거예요.

p290, 친구야 많이 보고 싶다. 싸워 이기고 나서 만나자. 웃으면서 말이야. 그때까지 우리에게 많은 힘을 불어넣어 줄 거지? 승리를 위한 파이팅!!

p301, 저희는 홈에버 직원입니다. 저희가 투쟁하고 있는 것을 아시는지요? 저희의 꿈은 소박합니다. 가족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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