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의 울타리를 허물어버린 오일쇼크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1974년 석유파동 기사
대공황 이후 양계장의 울타리를 만들고 지켜주던 버팀목은 케인스의 사상이었습니다. 노조를 기업운영의 주체로 인정하고,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임금을 보장해 기업이 만들어내는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부 역시 수요의 주체로 나서 사회복지를 위한 지출을 늘렸습니다. 그래서 타엽의 시대 울타리는 미국식 복지국가 모델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이후 세계경제는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합니다. 각국의 통화가 풀리면서 물가가 오르고, 물가상승은 임금상승을, 임금상승은 다시 물가상승을 불러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쳐 오일쇼크가 발발합니다. 몸살은 중병으로 번집니다.

타협과는 정반대의 논리가 지배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집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입니다 당시 세계경제를 기업하게 했던 인플레이션은 이렇게 미국 자본주의를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업가들에게 절호의 찬스가 된 경제위기

'대량생산 체제에 기반한 정치사회적 타협'이라는 기존 체제에 대한 주류 전체의 이해는 1980년대 들어 급반전합니다. 타협의 시대에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양과 보조를 맞추어 소득이 불어났고, 그래서 대량소비가 가능했고, 그래서 또 기업가의 대량생산이 유지되면서 돌고도는 선순환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의 그 지긋지긋한 노동에 반발하기 시작합니다. 기업가들은 노동자들을 묵묵한 노동으로 유도하는 문제에서 한계에 봉착합니다. 거기다 임금인상 요구까지 거세집니다. 기업가들은 서서히 자신들의 몫에서 노조가 너무 많이 가져간다고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안 그래도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돈벌이도 예전 같지 않은데 말입니다.

이런 가운데 기술혁신은 기업가들의 전략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습니다. 컴퓨터와 통신, 운송수단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혁신은 타협의 시대의 전제, 즉 대량생산 체제를 약화시킵니다.

여기에다 운송수단의 혁명은 지구 자체를 축소시켜 버립니다. 수틀리면 공장을 옮겨 제3세계의 더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노조의 눈치를 보고 협조를 구할 필요성도 점점 줄어듭니다.

알아서 스스로 달달 볶게 하라

기업가들이 고임금과 안정성이라는 동기유발 장치와 관료제라는 관리장치 대신 새로 꺼내든 카드는 '노동자 스스로 알아서 달달 볶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CEO와 노동자 간 평균 연봉 차이가 1970년 40대 1에서 2004년에는 350대 1로 계속 벌어집니다. 또 1980년대부터 정리해고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미국에서는 1990~1994년에만 250만 명의 노동자가 해고됩니다.

이 모든게 자기책임이고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데 누가 열심히 안하겠습니까. 알아서 스스로 달달 볶게 됩니다. 자동으로 돌아갑니다. 한마디로 상품시장 원리를 노동시장에 베낀 겁니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몸값이 결정됩니다. 자기가 얼마짜리인지가 자기책임이기 때문에 알아서 상품성을 높여야 합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형 인간의 출현

사진출처: flickr, by Florian
1980년대 이후 노동자들은 극심한 임금하락과 고용불안에 직면합니다. 사회의 복지프로그램은 해체되고, 노조가 보호해주던 평생 직장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돌변합니다. 시간관리는 목표관리로 대체되고, 하청 등 외부조달이 늘어납니다. 그러면서 핵심노동자와 주변노동자, 대기업 노동자와 하청기업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으로 노동자간 분단화 현상도 심화됩니다.

관리직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은 위계를 축소하고 군살을 뺍니다. 구상과 실행의 분리는 점차 완화되고, 책임은 점점 아래로 위임됩니다. 이제는 계획과 실행과 책임까지 사업부와 팀의 몫이 됩니다. 그래서 조직의 두께는 더 얇아지고, 중간관리직은 다운사이징의 파도에 쓸려가 사라집니다. 이제 안정적인 삶은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 되고, 불안이 일상이 됩니다. 이런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사람들은 더 열심히, 더 오랜 시간 일을 해야 합니다. 개인의 서사는 무너지고, 인생의 경로는 더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변합니다. 오로지 하나,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제만 마음속에 가득합니다.

해체의 시대를 규명할 수 있는 인간형이 바로 '지킬과 하이드'입니다.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소망은 그저 소망일 뿐입니다. 생존 자체를 위해 스스로 서서히 자기계발형 인간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무한경쟁의 상황에 놓이면서 인간 본연의 것들은 주머니 속에 접어둡니다. 경쟁상황에서 남을 무너뜨리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 최면을 겁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하나둘 하이드로 변해갑니다.

*편집자주 : 이 칼럼의 전문은 알투스에서 펴낸『죽음의 계곡』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연재된 칼럼은 옆 링크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eroun.net/author/bryu)


아무도 떠나지 않기에, 누구도 떠나지 못한다.

불안과 절박함으로 가득한 죽음의 계곡을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서른살 경제학]의 저자 유병률은 경제사에 그 답이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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