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rt style="green"]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이상한 상식이 전 세계에 ‘이상한 나라의 경제’를 구축했다. 이상한 상식은 결국 이 이상한 경제 체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상한 나라 안에 있을 때는 그 나라가 얼마나 이상한지 깨닫지 못한다. 숲 밖으로 잠깐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내려다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alert]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토끼 한 마리가 조끼에서 시계를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모습을 본다.
“늦었네, 늦었어” 하며 토끼는 뛰어간다.?그런데 앨리스는 그 장면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나중에야 토끼가 조끼를 입은 것도, 시계를 보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한 장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약 한국이 100명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면, 이 마을 사람들은 어디서 어떤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까?

이 마을 사람들 가운데 취업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59명이다. 28명은 정규직으로 취업해 살고 있으며, 14명은 비정규직이다.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가 17명이다.


그런데 정규직 가운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안정적인 상장 제조기업에 다니는 정규직은 단 1 명이다.?부가가치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내는 제조업 599개 기업을 살펴보면 그렇다. 매출액 상위 2000개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넓혀 봐도, 정규직은 3명에 지나지 않는다.

599개 기업에 대규모 수출을 하는 한국 대표 기업들은 다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것도 5년 이상 안정적으로 부가가치를 낸 알짜 기업들이다. 2000대 기업이면, 우리가 흔히 이름을 거론하는 웬만한 업체까지도 모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경영이 한정적인 중견 중소기업들이 대부분 들어가 있다.

사진출처:Flickr>wili_hybrid
우리는 모두 한국 대기업을 응원했다. 정부는 수출 대기업을 돕는 정책을 수십 년 동안 써왔고, 소비자도 이 나라 기업의 제품이라면 달려가서 먼저 사줬다. 개미투자자들은 그 기업들의 주식에 쌈짓돈을 묻었다. 경제 뉴스는 그들이 세계시장에서 휘날리는 태극기 이야기로 뒤덮였다.

그 1등 기업들은 끊임없이 외쳤다. 우리가 잘되어야 마을 전체가 잘 살게 된다고.
정부와 경제학자들이 맞장구를 쳤다. 대기업이 수출을 해서 돈을 벌어오면, 그게 자연스레 사회전체로 흘러간다고.

단, 그 혜택을 받아내는 것은 개인 책임이다. 무한 경쟁 시대이고, 살아남는 것만이 모두의 과제다. 그걸 못한다면 못한 사람이 게으르고 무지한 것이다.?그래서 모두가 그 대기업들처럼 혁신하고 경쟁하려 노력했다.

밤이고 낮이고 부지런히 일도 하소 자기계발도 했다. 더 오래 일했고, 경제 공부도 더 많이 해서 더 밝은 눈으로 재테크도 하고 일자리도 구하고 소비하려고 노력했다.

결과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눈부시게 성장해 글로벌 기업이 됐다.

그런데 나머지는 모두 힘들어졌다.


2011년 삼성전자의 매출은 164조 원, 영업이익은 16조 원이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전체 매출은 180조 원, 영업이익은 18조 원이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실적이다.
한국 중앙정부 한 해 예산이 326조 원 규모인데, 공무원 인건비나 사회복지 관련 지출 같은 경직성 예산을 빼고 나면, 10조 원가량만 전략적으로 집중해 투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사실 마음먹고 전략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윳돈은 한국 정부보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많다.

반면, 평균적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팍팍하기 이를 데 없다. 현재는 빠듯하고, 미래는 불안하다.
쥐꼬리만큼 늘어난 수입은 금세 더 커진 지출과 더 오른 가격에 파묻히고 만다.

조금만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는 불안은 점점 커진다. 과로도 재테크도 경쟁도 우리를 불안과 공포로부터 구하지 못했다. 기업은 눈부시게 성장했는데, 개인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우리는 99명이 1명의 경제를 자신의 경제로 착각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경제에서 주인공은 1명뿐이다.?나머지 99명은,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는 1명을 열심히 응원하는 관객이 되어버렸다. 주인공은 풍요를 누리지만 관객들은 고단하다.

사진출처:Flickr>wili_hybrid
우리가 알고 있던 경제 상식의 많은 부분은 사실 이상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제학은 우리에게 ‘시장에서는 모두가 이기심을 추구하면 된다’고 가르쳤다.
이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가장 큰 효율성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조정해 배분하기 때문이다. 좋은 뜻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면 ‘비효율’이 생긴다고 한다. 정부가 정책을 써서 개입한다거나 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니 닥치고 이기적으로, 이익만 추구하며 행동하라는 것이다.
유사 이래 모든 종교와 정신적 지도자들은 우리에게 착하게 살라고 가르쳤는데, 경제와 관련해서만은 그래서는 안 된다.

또 경제학은 경쟁이 좋은 것이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가장 극심한 경쟁이 가장 높은 효율성을 가져온다는 이야기다. 협력은 친구들끼리나 하는 것이지, 경제 세계나 기업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서로 도우며 함께 잘사는 게 좋다는 게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경제 부문에서만은 최대한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한 상식은 대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야 모두에게 좋다는 이야기에서 정점을 찍는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직원들과 협력업체들에게 흘러내려가며 부를 나누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단 부자가 많이 벌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가르침도 있다. 지갑을 열어 소비를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말 대기업이 번 만큼 일자리를 창출했는지, 부자가 지갑을 열어 부가 분배되었는지는 누구도 입증하지 못했다. 편중은 좋지 않고 균등한 게 좋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상식이다. 하지만 경제에서만은 편중이 좋다는 이상한 상식을 우리는 갖고 있었다.

이런 이상한 상식이 전 세계에 ‘이상한 나라의 경제’를 구축했다. 이상한 상식은 결국 이 이상한 경제 체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하나의 파티가 끝나면 새로운 파티가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새로운 파티를 준비하고 거기에 참여하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 몇 가지가 있다.

??시장만능주의 경제 질서는 왜, 어떻게 대부분의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었을까?
??그렇게 모질게 창출한 부는 모두 어디로 가 있을까?
??이 질서는 정확히 어떤 위기를 맞아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경제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은 어떤 부분이 틀렸던 것일까?
??낡은 질서가 무너진 뒤, 새로운 질서가 생겨날 희망은 있는 것일까?
??위기 이후, 우리가 새롭게 익혀야 할 경제 문법은 무엇일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토끼 한 마리가 조끼에서 시계를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모습을 본다.
“늦었네, 늦었어” 하며 토끼는 뛰어간다. 그런데 앨리스는 그 장면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나중에야 토끼가 조끼를 입은 것도, 시계를 보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한 장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상한 나라 안에 있을 때는 그 나라가 얼마나 이상한지 깨닫지 못한다. 숲 속에서는 숲의 모양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숲 밖으로 잠깐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내려다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사실을 살펴보고 나서, 새로운 파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새로운 파티의 주인이 되려면 어떤 문법으로 경제를 읽어야 하는지를 순서대로 살펴보려고 한다.

(*편집자주 : 이 칼럼은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전문은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어크로스 펴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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