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피해자들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의원에게 전달할 ELS 피해자들의 탄원서를 정리하고 있다. 2024.01.30./자료사진=뉴시스
홍콩 ELS 피해자들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의원에게 전달할 ELS 피해자들의 탄원서를 정리하고 있다. 2024.01.30./자료사진=뉴시스

이로운넷 = 남기창 기자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한 홍콩 H지수 주가 연계 증권 사태와 관련해서 금융 당국이 배상 기준안을 발표했다.

금감원이 지난 11일 발표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에 대한 배상안의 골자는 처음 투자를 했거나 고령일수록 더 많은 액수를 배상받을 수 있게 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홍콩 ELS 상품 투자자들은 이름만큼이나 어려운 배상안에 어렵다는 불만과 함께 투자금 대비 배상액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여기에 더해 문제는 금융사들이 과연 이 기준을 순순히 따르겠느냐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은행들이나 피해자들이나 관련 소송이 다수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가 크다. 관련 비용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배상기준은 각각 다르다. 이날 금감원이 발표한 배상안은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이 종합적으로 반영되도록 했다.

먼저 은행들이 무리하게 상품을 판 사실이 확인됐을 경우, 투자자가 고령이거나 금융지식이 없었을수록, ELS에 처음 가입했을수록 높은 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여러 차례 투자했거나 손실보다 누적이익이 크다면 받을 수 있는 배상액을 차감하도록 했다.

판매사 책임이 100%라면 원칙적으로 손실금 전액을 배상받을 수 있지만 금감원은 투자자 대부분이 20%에서 60% 수준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번 분쟁조정 기준안은 억울하게 손실을 본 투자자가 합당한 보상을 받으면서도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예컨대, 80대의 초고령 투자자가 5천만 원짜리 ELS 상품에 가입했을 경우, 은행이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면 70%를 배상받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반면 통상적인 금융지식이 있는 30대 고객의 경우, 비슷한 상황에서 45% 수준을 배상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즉각 반발하는 모양새다.  일부 매체들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 배상액이 0%에서 100%까지 라는 전망도 내놨다.

길성주 홍콩ELS피해자단체위원장은 "일방적으로 판매사 쪽의 입장에서 두드러진 배상안 기준이라고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금융사들도 배상안을 따르지 않고 소송으로 맞대응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홍콩지수 ELS피해자모임과 금융정의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회원들이 서울 감사원 앞에서 '홍콩 ELS 사태 관련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02.15./자료사진=뉴시스
홍콩지수 ELS피해자모임과 금융정의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회원들이 서울 감사원 앞에서 '홍콩 ELS 사태 관련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02.15./자료사진=뉴시스

"이해했다고 말하세요."

가입 당시 "(아버지는) 가입 당시 94세이셨으며 보청기 착용의 치매 초기 단계인 인지장애이셨습니다. 은행원이 시키는 대로만 서류 작성을.."

불완전 판매 논란이 있었던 홍콩ELS 펀드의 실상이 공개되자 귀가 잘 안 들리는 94세 노인에게 펀드 가입을 권유하면서 대답을 강요하기도 했다는 피해자들의 실상이 공중파 방송 등에서 공개됐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금융 취약계층을 상대로 약탈에 가까운 영업을 벌였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판매한 은행들의 책임이 있다고 짚은 셈이다.

홍콩 ELS 상품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9조 원 가까이 팔렸다. 금감원은 은행들에 40% 이상 손실을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손실 배상이 최소한 2조 원 이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상품 판매당시 H지수는 12000 안팎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5000선까지 추락하면서, 지난달까지 만기가 도래한 2조 2000억 원 중 손실금액은 1조 2000억 원이 넘고 올해에만 6조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투자업계에서는 조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물론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다룰 수 있지만 구속력이 없어 결국에는 민사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이러다보니 법률서비스 시장이 크게 열려 변호사와 로펌 등이 한 몫 단단히 챙길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11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홍콩 H지수 ELS 검사결과 및 분쟁조정기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03.11./뉴시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11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홍콩 H지수 ELS 검사결과 및 분쟁조정기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03.11./뉴시스

이복현 "홍콩 ELS 사태, 피해 보상하되 '자기책임 원칙'은 살려"

이복현 금감원장은 "억울하게 손실을 본 투자자가 합당한 보상을 받으면서도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심사숙고해 마련한 점을 주목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홍콩 ELS 사태 검사 결과 금융소비자보호법에 위반한 다수의 불완전판매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일부 판매사들은 ELS 손실 위험이 예상되는 시기에도 판매 한도를 관리하지 않거나, 성과평가지표(KPI)를 통해 판매를 독려해 불완전판매를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번 배상안에 따라 대표사례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조정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금융위원회와 함께 ELS 등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이 원장은 판매사를 향해 "이 배상안에 따라 자율적인 배상(사적화해)를 실시해달라"며, "판매사의 고객피해 배상 등 사후 수습 노력은 과징금 등 제재 수준 결정 시 참작할 방침"이라고도 했다.

이 원장은 "배상이 원활히 이루어져 법적 다툼의 장기화 등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최소화되도록 판매사와 투자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처럼 금감원 수장이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제재 등을 언급하며 은행권을 압박하는 모양새로 보인다. 과징금 감면 등의 일종의 '당근'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당국의 조정안 제시에 피해배상 비율 문제를 두고 은행과 상품 가입자 간 대립은 피할 수 없어 보이는 것도 문제다.

가입자 단체는 시중은행을 상대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연속 개최할 예정으로 전해지며 시중은행은 태스크포스(TF)·로펌 등을 통해 배상액 추정 및 법리검토에 들어갔다. 

이번 사태가 결국 법정 소송전으로까지 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다만 일각 업계에선 시중은행이 막대한 사회적 비용 등을 고려해 조정안을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가입자들은 당장 오는 15일 NH농협은행 본점을 시작으로 릴레이 집회를 예고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가입자들의 주장은 조정안에서 제시한 판매자 귀책사유 적용 비율이 크게 낮다고 보고 특히 은행들이 고의로 위험성을 알리지 않고, 손실이 없다고 속여 판매했다는 주장이다.

은행권은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대신 내부 회의 및 대형 법무법인과의 논의를 통해 전체 배상 규모와 이에 따르는 법리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현재 업계에선 자율배상 시 평균 배상 비율은 약 30%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른 배상액은 1조~2조원 수준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과거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F) 사태 때와 다르게 상품구조엔 문제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은행들이 기본배상 비율을 적용받는 데 불만도 제기한다.

특히 불완전판매에 대한 법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의 자율배상은 경영진과 이사회의 배임 책임 문제로 불거질 수 있어 이를 경계하는 분위기다.

이러다 보니 이미 주요 시중은행들은 주요 대형 로펌과 수십억 원대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케이씨엘의 김미경 변호사는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은 개별 금융회사가 판매자들에게 자율적으로 배상을 결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을 내놓은 것으로, 시중은행들은 개별적 법률검토를 통해 위 분쟁조정기준안의 적용 여부, 위 분쟁조정기준안의 적용 기준 및 방법 등을 정하여 배상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김 변호사는 <본지>에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은 법률 검토를 위해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배상을 받는 투자자들 역시 배상액의 산정 방법 등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관련 소송이 다수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설상가상으로 또 하나의 뇌관도 도사리고 있다. 홍콩ELS불완전판매에 대한 증원사의 책임이다.

은행들을 중심으로 배상안 발표가 나자 금융권 중 5대 시중은행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는 가운데 증권사에 대한 책임도 존재하는 데 있다.

이번 금융당국의 배상안에는 홍콩 ELS상품 판매의 전체의 18.1%에 달하는 증권사의 책임소재와 배상안이 빠져있다. 

최근 증권사에서도 원금을 보존하고자 하는 투자자에게도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홍콩H지수와 연계한 주가연계증권을 가입하도록 운영하는 등 불완전판매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증권사의 경우 불완전판매 이슈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개별 사례별로는 위반 사항들이 확인된 셈이다. 

은행뿐 아니라 증권사를 통해 판매한 홍콩ELS 상품에 대해서도 배상이 불가피해졌다는 얘기다. 

상품 이름만큼이나 복잡해진 문제 해결을 위해선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해 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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