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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사진=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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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김재현(전 산림청장, 건국대 교수)

나는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후원회원이다. 홍범도 장군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 채 후원회원이 되었다. 그러던 중 방현석 작가의 장편소설 <범도>를 접하게 되었다. 바로 직전에 읽었던 책이 전 세계의 정세를 다루는 팀 미샬의 '지리의 힘 1, 2권'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을 선택했는데 결코 가벼울 수 없었다. <범도>가 무겁게 다가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홍범도 장군이 살았던 시대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때의 상황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홍범도 장군이 살았던 시기는 조선 말기에 태어나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와 세계대전의 소용돌이가 일었던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다. 그는 그때그때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과 당시에 소속된 조직에서 자신의 입장과 가치를 지켰고, 그것은 많은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관철하는 가치가 무엇이었을까? 이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개인적인 관심사였다. 작가는 홍범도 장군의 삶의 기저에는 크게 포수의 원칙, 삶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새로운 나라에 대한 희망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독자도 책을 읽고 나서 앞에서 열거한 세 가지 관점에서 홍범도 장군의 일생을 바라보고자 한다.

먼저 홍범도 장군에 있어서 포수의 원칙은 전투의 원칙이다. 여기에는 냉철한 상황판단과 용맹함이 가장 크게 요구된다. 범을 잡은 포수에게 붙여지는 범포는 최고의 사냥꾼으로서 인정받는 것이며, 단순하게 사격술이 좋은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형지물에 대한 이해와 호랑이와 마주쳤을 때의 냉철한 판단과 용기를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기본적 자질을 갖춘 홍범도 장군은 대한제국의 군인이 되어 전술훈련을 받게 됨으로써 협력과 전략적 대응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후 국내외에서 이루어진 많은 항일투쟁의 전투에서 훌륭한 야전사령관직 수행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봉호동전투나 청산리전투에서 위대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도 포수의 원칙에서 체득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두 번째로 홍범도 장군의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우고 신뢰하고 사랑함으로써 결집의 힘을 발휘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장군께서 포수 시절에 만난 사람, 군인 시절에 만난 사람, 종이를 만드는 조지소에서 일하면서 만난 사람, 의병 활동에서 만난 사람, 독립군 시절에 함께 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관통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이나 직위에 관계없이 자기 소신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며 사람에 대한 존중과 그들에게서 끊임없이 배우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포수 시절에는 신포수에게, 군인 시절에는 훈련도감인 정태신 파총과 백무현에게, 갑신정변 때는 차이경에게, 조지소에서는 여러 직능의 장인들에게, 의병활동을 함께한 포수들에게, 독립군 활동을 함께한 동지들을 서로 존중하고 신뢰함으로써 작은 힘을 모아 큰 힘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홍범도 장군이 작은 힘을 모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약자의 편에서 깊은 인간적인 교감을 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백무현과 백무아, 김수협과 그의 아들, 금희와 은희, 안중근 의사 그리고 함께한 수많은 포수들과 상호 존중하고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전략과 리더십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관계한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공감하고 존중하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홍범도 장군의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오늘날에도 아니 미래에도 존경받는 리더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인 것 같다. 소위 머리 속은 차갑고 냉철하지만 가슴은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가장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는 시대적 상황으로 가장 연모했던 여인과 함께 할 수 없었고, 먼발치에서 서로의 안녕을 빌어줄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고, 심지어는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다. 부인과 큰아들 그리고 둘째 아들을 차례로 보내야 하는 그 심정은 누구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상상하지 못할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도저히 아픔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싸워야 했던 이유는 지켜야 할 나라가 있고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할 나라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홍범도 장군에게 나라는 어떤 의미일까? 홍범도 장군에게는 지켜야 할 나라와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할 나라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켜야 할 나라는 임금과 양반이 주인인 나라이고,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할 나라는 순박하고 나약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백성의 나라로 생각한 것 같다. 홍범도 장군은 대한제국의 군인으로서 임금과 양반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고, 의병활동 과정에서는 양반을 중심으로 한 의병부대에 편입되어 그들의 규칙에 따라 항일투쟁을 하였다.

그러나 임금과 양반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싸우는 방식도 싸우는 목적도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어서 많은 한계와 희생이 따르게 된다. 아마도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어떻게 보면 홍범도 장군이 우리나라를 떠나 만주와 러시아를 거점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던 이유도 임금과 양반이 주인인 나라에서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국땅에서 계속해서 싸워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꿈꾸는 나라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주와 러시아에서 항일투쟁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구성을 보면, 신념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미 신분이나 성별의 차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새로운 이념적 갈등과 국제사회의 이해관계로 인한 흰색 편과 붉은색 편으로 나뉘어지는 새로운 갈등이 존재했고, 그는 그 사이에서 다시 혼돈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도 분명한 것은 조선 반도를 지키는 것이 모든 것의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막연하게 꿈꾸는 것은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서는 그것을 공화주의 국가로 이야기한다. 

홍범도 장군은 안타깝게도 자신이 바라던 세상을 이루지 못하고, 1943년 10월 25일 카자흐스탄의 극장수위와 정미공장 일꾼으로 일하다 돌아가셨다. 해방을 보지 못하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그들을 그리워하며 한 많은 생을 마감하셨다. 그가 이루지 못한 세상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홍범도 장군이 항일투쟁 과정에서 소련과 협력한 부분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는 그의 살아온 인생 전체를 통찰하지 않고, 부분적 선택을 잣대로 그의 처절한 삶을 재단하는 것이다.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는 것이 이것이었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 과연 홍장군보다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였을까? 아마 절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홍범도 장군의 선택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책상머리에서 이념적 잣대로 그가 선택한 것에 대해 비판만 하지 말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만약 홍범도 장군이 해방 이후에 자신의 입지를 위해 이념적 선택을 하였다면, 여기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평범한 노인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홍범도 장군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남긴 말이 여운으로 남는다. "나는 어떤 소설도 나 혼자서 쓴 일이 없다. 나와 함께 이 소설을 쓴 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나는 그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이 소설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썼다."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가 13년 동안 자료를 조사하면서 등장하는 사람들과 무수한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것을 시간과 공간을 입체적으로 조합해서 구성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와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공감하고 끼어들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의 회원인 것이 뿌듯하다.

*이 서평은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웹진에 공동게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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