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03.07./자료사진=뉴시스
서울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03.07./자료사진=뉴시스

이로운넷 = 남기창 기자

오늘(8일)부터 간호사도 심폐 소생술이 가능해진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확대돼 응급 약물 투입도 허용된다. 수술 부위 봉합과 수술 보조 등은 전담 간호사에 한정해 허용된다.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우려와 기대가 엇갈린다. 명확한 역할 분담 없이 대체 인력으로 취급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간호협회는 논평을 내고 "의사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현재의 의료 체계 개편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간호사들은 의료 현장에서 암암리에 해오던 일을 명확하게 정리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의사협회는 특정 분야의 전문의만 할 수 있는 위험한 시술까지 포함돼 현장에서 절대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고 발생 시 최종 책임을 병원장이 져야 한다고 명시한 점도 의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의료공백이 심화되자 전날(7일)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불법 논란이 있었던 간호사 업무와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마련해 8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현행 의료법상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제한된다. 검사, 진단, 치료, 투약 등에 대한 의료적 판단(의사결정) 자체는 의사의 고유 업무다.

전공의 파업 대책 중 하나로 '의료지원인력(PA) 시범사업' 논의가 진행되자 간호업계에서는 냉소와 기대감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정부와 의사의 강 대 강 대치에 "간호사가 이용만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하께 "의사 중심의 의료체계 개편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우려의 골자는 의료공백을 이유로 추진되는 시범사업의 결과 간호사가 비상상황 시 대체 인력으로 취급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과 주먹구구식으로 업무를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이 "진료지원 간호사는 시범사업을 통해 전공의 업무 공백을 메우고 법적으로 확실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언한 데 이어 복지부가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발표했다.

비판을 의식한 듯 복지부는 의사의 전문적 판단이 있고 난 이후에 의사의 위임 또는 지도에 따른 행위는 간호사가 수행 가능하다고 봤다.

복지부는 시범사업 보완 지침에 의료기관장이 간호사 업무 범위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주요 진료과와 전담간호사 등의 참여하에 간호부서장과 반드시 협의하도록 했다.

따라서 이번에 98개 의료행위를 조사해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를 구체화 했다. 우선 간호사의 숙련도, 자격(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일반간호사) 등을 구분해 업무 범위를 설정했다.

복지부는 전담간호사를 특정 분야, 특정 업무(기술)를 훈련받은 간호사로 규정했다. 사실상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표현을 꺼리는 PA(Physician Assistant, 진료지원 인력) 간호사를 말한다.

전문간호사는 최소 3년 이상의 해당 분야 임상 경력을 갖추고 2년 이상 대학원 석사과정(전문간호사 과정)을 수료한 후 복지부 장관이 실시하는 전문간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간호사다.

복지부는 진료행위를 조사해 간호사 행위 가능 여부도 정했다. 특히 세부 행위마다 간호사 자격별 수행 가능 여부가 다르다.

예를 들어 심전도·초음파 검사, 단순 드레싱(일반·시술 상처·단순 욕창 등), 중심정맥관 관리(혈액채취), 응급상황 심폐소생술, 응급 약물 투여 등은 모든 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는 위임된 검사·약물의 처방을 할 수 있고 진료기록이나 검사·판독 의뢰서, 진단서, 전원 의뢰서, 수술동의서 등 각종 기록물의 초안을 작성할 수 있다.

반면 전문의약품 처방, 전신마취, 사전의사결정서(DNR) 작성, 배액관 삽입, 대리 수술(집도) 등은 자격을 불문하고 간호사가 할 수 없도록 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명시적으로 금지된 행위 또한 제외된다. 금지 행위엔 프로포폴에 의한 수면 마취, 사망 진단, 간호사의 독자적인 척수마취 시술 등이 포함된다.

협의가 이뤄진 업무 외의 업무 전가·지시도 금지된다. 관리·감독 미비로 인한 사고가 날 때 최종적인 법적 책임(행정적·민사적 책임, 형사상 양벌 책임)은 의료기관장이 받도록 했다.

병원은 간호사 배치를 위한 근거를 문서로 만들어야 하고 교육·훈련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의료기관장이 간호사에게 업무를 추가 지시하는 경우에는 자체 보상을 해야 한다.

복지부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 검토위원회'를 구성해 현장 질의에 대응할 예정이다. 시범사업 적용 기간은 보건의료 위기 '심각' 단계부터 별도 공지가 있을 때까지다.

향후 시범사업에 대한 모니터링을 거쳐 제도화도 추진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6~12월 의료계 각 단체가 참여하는 '진료지원 인력 제도개선 협의체'를 가동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진짜 의료대란은 지금부터라는 말도 나온다. 정부가 대화를 통한 해결의 의지가 없고 의사들도 물러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전임 정부 때부터 이어진 민감한 이슈다. 공공의료와 필수의료에 따른 의사 정원이 절실하다는 이유에서지만 의사들의 사익과 충돌하는 이슈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의사들을 '반개혁 기득권 세력'으로 내몰고 있다.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더니 의사들의 저항을 간호사를 동원해 막겠다는 심산이다. 야당에선 '총선용 이슈'라는 비판이 따른다. 정부는 일단 총선을 넘기고 보자는 계산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만약 정부가 양보해서 숫자를 줄이는 정도로 합의를 한다고 해도 '의사=사익추구집단'이란 여론 몰이를 통해  비대면 진료 확대와 PA 간호사 법제화 등에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이래저래 환자만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여 큰일이다. 정부는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 등에는 "응급실 진료는 접수 순서가 아니라 의료진이 판단하는 중증도 순서"라는 안내문이 붙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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