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마다 ‘난방비 폭탄’이 문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임차인을 위한 새로운 난방비 대책이 등장했다. 정책·입법연구센터 공익허브가 지난 해 말 제안한 ‘임대주택 에너지효율등급표시제도’는 임차인을 위한 에너지복지 정책이다. 노후 임대주택에서 추위에 시달리며 고액의 난방비까지 지출해야 하는 임차인의 처지를 고려해 만들어졌다.

'임대주택 에너지효율등급 표시제' 정책제안서 표지 [사진=공익허브 제공] 
'임대주택 에너지효율등급 표시제' 정책제안서 표지 [사진=공익허브 제공] 

에어컨·냉장고 살 때 확인하는 ‘에너지소비효율등급’을 임대주택에도 적용한다. 현재 상당량의 전기를 소비하는 제품은 에너지효율등급을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한다. 생산자가 고효율 제품을 개발하도록 촉진하고, 소비자는 소비전력을 예측해보고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따라 강제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의 원리와 효과를 임대주택에 적용한 것이 ‘임대주택 에너지효율등급 표시제도’이다. 임대차 계약 시에 해당주택의 에너지효율등급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임차인은 에너지 효율이 극도로 낮은 주택을 피하거나, 임대차 계약 체결 전에 임대인과 주택 수선에 관한 사항을 조율할 수 있다.

가전제품 에너지소비효율등급 표시 [이미지 출처= 한국에너지공단]
가전제품 에너지소비효율등급 표시 [이미지 출처= 한국에너지공단]

임대주택 에너지효율등급표시제도는 임대인에게 주택의 냉난방 효율을 개선할 유인을 제공한다. 소유와 이용이 분리된 민간임대시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주택개량이 이뤄지기 어려운데, 에너지효율등급을 표시함으로써 임대인이 자발적으로 노후주택을 수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공익허브는 에너지효율등급표시제도와 함께 노후 임대주택을 대상으로 한 에너지효율개선 지원사업을 병행한다면 임차인의 난방비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영국의 EPC 인증서 예시 [이미지 출처=gov.uk]
영국의 EPC 인증서 예시 [이미지 출처=gov.uk]

공익허브가 제안한 임대주택 에너지효율등급표시제도는 영국·일본·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영국에선 주택을 임대하거나 매매할 때 EPC(Energy Performance Certificate) 서류를 필수적으로 보유해야 하고, 주택 중개시장에서 EPC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EPC 서류에는 해당 건물의 에너지효율등급과 함께 에너지 요금이 얼마나 나올지 예측할 수 있는 정보가 표시되어 있으며, 에너지효율을 개선하는 방법 또한 제시되어 있다. 일본 또한 ‘건축물 에너지 절약법’을 개정하면서 판매·임대가 이뤄지는 모든 건축물에 에너지 절약 성능을 표시하도록 했다. 독일에선 주택 에너지효율등급 표시제도가 정착되어 세입자가 집을 구할 때 에너지효율등급이 하나의 선택 기준이라고 한다. 

국내에도 건축물의 에너지효율등급을 인증하는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만, 인증 의무대상 건축물의 범위를 매우 좁게 설정하면서 인증제가 자리잡지 못했다.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등급 인증을 받은 주택은 전국 약 4000천호에 불과하다. 

임대주택 에너지효율등급표시제도는 현재 국회에서 입법 발의를 위한 법안 검토 중에 있다. 공익허브가 발행한 정책제안서 내용을 토대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복지재정위원회가 법안을 만들었다. 공익허브의 조성빈 연구원은 “현재 정부의 난방비 대책은 취약계층의 에너지 요금을 지원하는 정책에 치중되어 있는데, 에너지효율등급 표시제도를 통해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개선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변 복지재정위원회 위원장 이동우 변호사도 “입법안이 하루빨리 발의되고 통과되어 임차인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복지가 실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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